아마도예술공간
2026년 9월 11일 ~ 2026년 10월 18일
심동수의 비디오들은 안정적인 화면과 사색(思索)하는 내면을 품는다. 한 쇼트 한 쇼트 정성스레 촬영(때로 수집)한 화면에서는 그가 대상으로 삼은 세계를 성실하게 마주하고 이를 정연하게 담아내고자 했던 의지를 볼 수 있다. 텍스트는 독백이나 서간체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그 자신이 이해하고자 했던 대상에 가닿기 위해 계속해서 고민했던 솔직한 마음도 읽을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영상을 보고 읽어 내는 일은 작가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그래서 어떤 질문을 품고 있는지를 따라가 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더군다나 그가 소재로 삼는 것이 이미지의 생산과 재현, 역사적 사건의 기억과 기록 같은 깊은 심도의 문제라면 관심과 눈길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비디오들을 여러 물리적 경로와 단계를 거쳐 도착하는 “Surface Mail(해상 및 육상 선편 우편)”에 비유하는데, 이는 작업에서의 기억과 이미지들이 여러 표면과 기준을 통과하는 과정을 드러낸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성 아래 작업은 크게 두 가지 결로 분화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미지에 대한 비평적 인식을 드러내는 〈Fine-grained〉(2026), 〈Damned stability〉(2018)와 사건이 기억되고 기록되는 방식을 성찰하는 〈Untitled〉(2026), 〈M-I-59T〉(2022)가 그것이다. 또한 이 작업들은 각각의 과거와 현재를 서로 비춤으로써 그 기간 작가의 시선이 변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그럼에도 연관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들여다보도록 한다.
비디오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어떤 이미지를 뷰파인더에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Damned stability〉에서 만날 수 있다. ‘빌어먹을 안도감’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이 작업은 빔 벤더스의 영화 〈도쿄가(Tokyo-Ga)〉(1985)가 모티브였고, 작가는 이 영화의 플롯과 기법, 촬영 장소도 충실히 따라가는 한편 비켜나가려 노력하며 1980년대와는 달라진 또 다른 세계를 담아낸다. super 8mm로 기록한 서울 풍경을 뒤로 하고 비행기를 타고 떠난 온 도쿄에서 지하철, 열차 등을 이용해 여러 곳을 방문하는 경로가 보여진다. 도쿄 거리와 인파를 포착하는 시선과 함께 신사, (super 8mm 네거티브) 필름 현상소, 도쿄 타워, 기타 카마쿠라의 오즈 야스지로의 묘를 방문하고, 도쿄 밤거리의 미디어적 풍경을 제시하며 작업은 끝을 맺는다. 그가 기억하는 도쿄는 촬영된 것, 편집된 것으로 기록되는 한편의 영상이 되었을 뿐이지만, 이미지로서의 대상을 찾기 위한 배회가 헛되지 않음을, 새로울 것 없는 풍경에서도 낯섦과 신선함을 포착해 내며 이 여정에 대한 자전적인 이유를 명시한다.
근작 〈Fine-grained〉는 이미지 생산과 전송의 기술적 방법과 조건에 관한 단상을 (과거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멀어진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친근하지만, 심통을 부리듯 건넨다. 하지만 이 작업은 이미지의 생산자로서 자기 반영적인 질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과거(기억)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되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해야만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이미지는 몸을 바꾸어야 하며, 그 자신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잘 이행해야 할 뿐만 아니라 (AI나 클라우드 스트리밍 시스템 같은 새로운 규약이나 이미지 생산 방법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등 이미지의 본질은 갖가지 현상 속에 가려진다. 하지만 이 작업은 이미지가 짊어져야 할 본질로서의 무게 대신 체념의 정서를 바탕으로 그 자신의 운명을 반조하게 한다.
작가는 2021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에 대한 탄흔 조사 과정 일부를 우연히 촬영하게 된다. 이 탄흔 자국은 그가 1980년 5월의 광주를 마주하게 한 계기였고, 옛 전남도청이 다시 복원되던 2026년에 이르기까지의 두 작업 〈M-I-59T〉, 〈Untitled〉를 생산하게 한다. 두 작업은 모두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마주하는 한편, 탄흔 조사가 이루어진 곳이자 새롭게 변모한 옛 전남도청 건물의 내외부와 그 주변의 현장을 담아낸다. 그 자신이 보았던 탄흔의 흔적과 감각했던 현장을 드러내기 위해 그의 카메라는 대상을 매만져 보려고 하면서도, 유령처럼 주위를 배회하거나 부감하고 관망하며 더 멀어지기도 하는 등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시점을 오고 간다.
〈M-I-59T〉는 5.18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이 사건을 알아가기 위해 (당시 미국의 비공개 문서와 같은) 사료를 들여다보고, 당시의 기록 사진을 마주하며, 기록으로 남은 것들로부터 나름대로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 것이다. 한편으로 윤상원 열사의 모습을 새겨내는 판화가 이윤엽의 작업 모습에 밀착하면서 기록이 새겨지는 방법에 대한 우회적인 시선도 담아낸다. 작업은 가려져 있던 역사적 흔적을 마주한 한 개인으로서 그 무게에 가닿기 위한 심리적인 고민뿐만 아니라 그 흔적을 어떤 식으로 재현해낼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시점도 제시한다.
〈Untitled〉는 〈M-I-59T〉의 후속작으로, 조사를 끝마친 탄흔들이 기록되는 방식을 들여다보고, 옛 전남도청이 복원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개관 전후 도청 주변의 추도식 풍경과 재현된 기념관의 모습과 인파들을 함께 담아낸다. 작가는 조사를 마친 탄흔들에 번호가 붙여지고, 그것의 위치가 도면에 고정되고, 가시화된 증거가 됨으로써, 기록이 다시 기억을 작동하게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기록된 방식이 그 사건의 모든 변모를 말해줄 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 또한 그날의 풍경과 공기가 시간이 흐른 후 다른 모습의 풍경을 생산하고 있음을, 지금 현장의 모습을 통해서 과거는 언제나 현재화된 모습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음도 드러내 보인다.
두 작업은 탄흔 흔적이라는 가려져 있던 사건의 실마리에서 출발하지만, 5월의 광주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그 기억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후세대로서 공적 기록과 기억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중점을 두고, 긴 시간 대상에 천착하며 자기 이해와 해석을 작업으로 옮긴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물론 그렇기에 그 역사의 본질을 추적하는 것에는 거리를 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작업 안에서 사회나 정치적인 소재를 외양으로 두르거나 이미지가 재현되는 방식을 비판하는 작업들을 경유한 후, 자신이 마주한 대상의 깊이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모습을 솔직하게 직조해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비디오들에서 작가는 자신의 고민 혹은 질문에 대해 섣부르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맞닥뜨린 대상을 섬세하게 따라가 보는 관찰자와 같이 자기의 입장을 전개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가치 판단을 유보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기억과 이미지에 대한 문제를 좇아가면서 분류되고, 정의되고,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이외의, 이미지의 외부 혹은 기억과 기록의 외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과 함께 그것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었다고 명시적으로 정의하기보다 그 여정을 제시함으로써 누구든 그 여정에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큐레이터: 신양희
참여작가: 심동수
디자인: 김영삼
전시전경: CJY ART STUDIO (조준용)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6 시각예술창작주체(공간)
평론: 황지원
설치 도움: 김동진, 이상현
좌대 제작: 그린 레벨
미디어: G.H렌탈, 명성미디어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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