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트러사이트 제주 한림
2020년 6월 18일 ~ 2020년 7월 8일
쓸모 있을 때 우리는 마음 한 켠이 뿌듯하고 안도감이 든다. 특히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에게 ‘쓸모’란 더욱 중요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일상을 돌아 보면 딱히 쓸모 없지만 나를 위로해주는 것, 길 바닥에서 주웠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전환되는 그런 것들이 있다. 각자의 마음에 와, 닿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앤트러사이트’는 쓸모를 잃고 방치된 옛 전분 공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공간의 보존’이라는 가치 전달과 더불어 방문객에게 어떤 ‘미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예술과 닮았다.
신예선은 바람을 거스르지 않는 공간을 짓는다. 그것은 벽이지만 기댈 수 없고, 서로를 투과한다. 스톤김은 일상에서 경험한 숭고함과 스스로의 모순을 포착했다. 최성임은 창작활동의 본질을 탐구하며 두 개의 기둥을 세운다. '쓸모를 잇는 시간'은 미적 체험, 그 쓸모에 대해 관객들과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신예선, <희미한 벽>, 견사, 아크릴, 양면테이프, 가변설치, 2020
“창 너머 거대한 나무가 잘려나간 후 오래도록 상실감을 느낀다. 나는 정말 이것을 귀하게 여겼다. 태풍이 그 나무의 잔가지들을 모두 솎아냈을 때 나는 속이 후련했다. 나무도 묵은 때를 밀어버린 것처럼 홀가분 했을 텐데... 이웃들에게 그같은 감정을 쏟아냈으나 동의를 얻지 못한 것에 서운함이 여전하다.
집 근처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던 공간은 그 시간만큼 흔적을 새겼다. 공간 속 식민지 시대의 동력 장치는 시간을 회상시킨다. 바닥 돌 틈으로 올라온 초록은 여름에 들어서며 무성해지고 이 퇴색한 용암 위에 초록의 덮개를 깔았다. 안은 바깥을 불러들이고, 인공적인 것은 야생의 것에 매료된다. 곰팡내 나는 오래된 집은 새 카펫을 위한 낯선 무대이다. 삭막한 땅 위 노쇠한 공간은 풀과 나무를 들이고 나는 다시 그 안에 희뿌연 벽을 세운다. 벽은 집을 위한 최소한의 단위이다. 원래 있던 집의 서까래는 내 희미한 벽을 지지해 주는 기둥이 되고, 누에가 뽑은 탄력 있고 광택 나는 분비물은 이 골조에 기대어 벽을 차곡차곡 늘려간다.
천창의 햇빛은 하늘거리는 벽을 지나친다. 햇빛은 다시 집 속의 집, 그 안의 풀을 키운다. 공간은 안과 밖을 반복하고, 이 반복은 복제가 아닌 차이가 있기에 생명을 지녔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가득한 이 공간에서 나무에 대한 향수에 동의를 구한다.” (신예선 작가노트)

스톤킴 <작업의 역설> 사진, 렌티큘러, 150 × 100 ㎝, 2020
개인적으로 오감의 정보가 분주하게 사방에 존재하는 낮보다는 오감을 어느 정도 내 스스로 제어 할 수 있는 밤을 좋아한다. 낮은 다른 어느 것보다 시각적 정보가 많고 그것들로 인한 잡음들이 나를 산만하게 하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외출 땐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꼭 쓰고, 눈은 어느 한 부분이나 내 눈에 띄는 시각 요소에 집중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산만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나 보다.) 그런 고로 내 집의 모든 창문은 암막 시트지 처리를 해 놓았다. 낮에도 깜깜한 밤 같이 말이다. 지금의 집 주변은 그야말로 회색 도시다. 사방엔 새로 공사중인 빌라들과 아파트 단 지 그리고 내부순환로 고가도로가 떠억하고 집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농담처럼, 보이는 색의 80퍼센트는 “그레이-색이다.” 그러다 뜻밖에 일상의 숭고함을 마주 하게 됐다. 창밖에서 비춰지던 강렬한 주황색을 대면한 그 순간은 십여 년 전 마크 로스코의 무 지막지하게 큰 페인팅을 마주했던 기억을 소환하였다. 알 수 없는 압도감에 움직일 수 없었던 그 때의 순간을 여기 한국, 내 집 창문에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장면에 놀란 마음에 창문을 열었다. 그리곤 실망감에 급히 닫아버렸다. 그것은 신축 빌라 공사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를 막기위해 가설된 폴리에틸렌 가림막이었다. 일상의 숭고함을 연출해 준 사물이 고작 빳빳 하고 인공적이고 삭막한 공사장 먼지 가림막 플라스틱 천 쪼가리라니. 결국 내 기억의 소환을 이 끌어 낸 트리거는 그 플라스틱 천의 본질을 다른 방식으로 포장해 버린 내 집의 창문이었다.
남은 양파가 싱크대 밑의 서랍 안에서 싹을 틔우는 것을 발견한 순간, 이 양파의 처리에 대한 고 민을 하게 된다. 싹을 틔우기 전까진 그저 식량이지만 녹색의 싹이 손가락만 하게 자랐다면 그것 은 생명체로 인식하는 기묘한 논리를 가지고 있는 나는 그것을 키우기로 결정했다. 크기에 맞는 컵을 찾아 양파를 넣고 몸통의 절반까지 물을 붓는다. 일조량까지 생각해 창 문틀에 놓는다. 생명 체를 살려냈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미래에 벌어질 일에 대해선 일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 날수록 양파의 싹은 줄기가 되고 쑥쑥 자란다. 그러다 진동하는 양파 냄새와 겉잡을 수 없이 자 라버린 줄기를 견디기 힘든 지경이 돼 버렸고, 처리를 고심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가차없이 쓰레기 봉투에 담아 버려버렸다. 이 일련의 태도가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행해지자 자기 반성을 위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일련의 경험들은 내가 고민하는 개인적인 예술의 의미와 그것을 실행하는 행위의 의미를 상기하 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작업을 생산하는 방식과 그것에 소모되는 시간들 그리고 생산되어진 결과 물의 향방을 역설적으로 압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리고 작가로서의 입장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수많은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많은 질문에 대한 답 은 아직까지는 “모른다” 이며 답을 내는 것이 아닌 그 질문을 통한 작용 그 자체가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스톤김 작가노트)

최성임, <두 줄기> 황동 파이프, 아크릴, 면사, 10×10×290 ㎝, 10×10×270 ㎝, 2020년
“작업 전반에 걸쳐 기둥을 오랫동안 만들었다. 그 기둥은 가로막히지 않고 공간을 투영하고, 가볍고, 주변에 흔들리고, 거대하고 스펙타클하지 않고 사소한 수많은 겹을 가진 느낌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토목이나 교회 건물의 확고한 혹은 불변해보이는 기둥이 아닌 집 마당의 빨래대나 식물의 지지대, 걷기보조장비 등으로부터 주로 영감을 받았다. (…)
시각적으로 거슬리지 않게 해야하지만, 보조역할을 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 어렸을 때 강낭콩을 심으면서 싹이 나면 줄기가 타고 올라갈 막대기를 꽂았던 일, 양양가는 길 복숭아 밭 농작물의 지지대들, 빨래 양에 따라 늘었다 줄어드는 빨래대도 생각났다. 육중하지 않은 존재감이 주어 뒤의 부사어처럼 보조 장치 역할을 하던, 유연하고 가볍게 그래서 상상을 더할 수 있었던 기둥들의 이미지를 가져오고 싶었다. 아마도 그것들에서 살아있는 다리나 팔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최성임 작가노트 중에서)
작가와의 대화
2020년 6월 26일(금) 10:30
김대균(건축, 착착스튜디오 소장), 박남희(미술평론), 장유정(전시기획, 성북문화재단 미술팀), 조숙현(미술평론, 아트북프레스 대표)
참여작가: 신예선, 스톤김, 최성임
기획: 박민희
영상: 마음의시력(강건)
출판: 아트북프레스(조숙현)
후원: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화예술재단
쓸모를 잇는 시간 공식 페이지
http://www.facebook.com/timeto0000
영상포스터 링크
ver1. https://youtu.be/kvnQlsR49Jc
ver2. https://youtu.be/8Y83R-ccn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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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564
운영시간
월요일 09:00 - 19:00
화요일 09:00 - 19:00
수요일 09:00 - 19:00
목요일 09:00 - 19:00
금요일 09:00 - 19:00
토요일 09:00 - 19:00
일요일 09:00 -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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