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디에이
2025년 5월 1일 ~ 2025년 5월 10일
한 번은 그림 앞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건 나도 그릴 수 있겠는데?" "대체 이게 왜 이렇게 비싸?" 아주 오래되고 전형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지만, 정작 누구도 그것에 직접 답하려고 하진 않는다. 어쩌면 아무도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작 오즈(Isaac OZ)는 그 질문에 의외로 간단하고 명쾌한 방식으로 응답한다. "저는 그림의 무게를 재고, 그에 해당하는 금 시세로 가격을 정합니다." 그가 금을 선택한 이유는 이렇다. 예술의 가격이 종종 감정, 명성, 평판 같은 추상적이고 가변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반면, 금은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통용된 비교적 신뢰받는 ‘가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금 시세 또한 변동성이 있지만, 아이작 오즈는 그 변동성조차 미술계의 관습이나 현실 경제의 흐름을 반영하는 지표로 본다. 그 보편적 기준을 작품 가격에 적용함으로써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술의 가치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금이라는 상징적 물질을 가치 기준으로 삼은 선택은, 물감이라는 재료가 금과 등가의 가치를 갖는 순간 예술이 물질을 가치로 바꾸는 연금술로 작동한다는 그의 작업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아이작 오즈는 그림을 '그리는' 대신 '구성'한다. 마치 오케스트라가 작곡가와 연주자, 지휘자의 협업으로 완성되듯, 아이작 오즈의 그림은 혼자가 아닌 팀에 의해 ‘composed’ 된 결과물이다. 실제 제작 방식은 꽤 단순하다. 반듯한 캔버스 위에 물감과 미디엄을 얹고, 그 재료의 순수한 무게를 잰다. 그리고 그 무게에 해당하는 금의 시세를 작품 가격으로 환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단지 새로운 가격 책정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작 오즈는 그림의 가치가 왜 얼마인지, 어떻게 정해지는지를 명확히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감정이나 평판 같은 추상적인 기준이 아닌, 누구나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가치를 측정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는 우리를 대신해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왜 어떤 그림은 수백만 원이고, 어떤 그림은 몇천만 원일까? 우리가 경험하는 예술의 가격은 과연 객관적인가? 그 물음 끝에 도달한 방식이 바로, 금이라는 시대 보편의 가치를 척도로 삼는 것이었다. 물감이라는 전형적인 재료로 그림을 만들고, 그 그림이 금에 상응하는 가치를 가진다는 순간, 예술은 비로소 물질을 가치로 바꾸는 연금술적 행위가 된다.
그의 화면은 정말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법한' 이미지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몇 가지 튜토리얼을 수행하면 누구나 제작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린다'보다 '만든다'는 단어를 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을 누가 그렸느냐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묻는 순간, 예술의 ‘저자성’이라는 오랜 신념은 조용히 해체된다. 흔히 ‘대작 논란’으로 거론되는 몇몇 사례들도 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이작 오즈는 미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팀이자 시스템이고, 퍼포먼스이며, 예술이 무엇으로 구성되고, 얼마만큼의 무게 혹은 가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요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이다. 이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따지기보다는 이 그림에 어떤 가치가, 어떻게 책정되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연금술처럼 만들어진 이 작품의 가격은 책정이 아니라, 측정되었습니다. 시세에 맞춰서요."
아이작 오즈의 작업은 회화로 감상되는 동시에, 그 제작과 가치 산정 방식 자체가 작업으로 이해된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물감을 얹고, 무게를 재고, 금 시세를 적용해 가격을 산정하는 이 일련의 과정은 단순히 눈으로 감상하는 회화를 넘어, 예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가치를 얻는가를 묻는 하나의 실험이다. 이러한 접근은 1960년대 개념미술의 대표 작가인 솔 르윗(Sol LeWitt)의 태도와 닮았다. 르윗은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대신, 작업 지시서를 작성해 다른 사람이 따라 만들도록 허용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아이디어 그 자체였고, 그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있는 구조적 설계였다. 하지만 아이작 오즈는 아이디어를 구조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가치로 전환하는 방식까지 설계했다. 그는 회화를 그리고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고 실행하는 방식의 프로토타입을 제시했다. 그래서 이 작업은 단 한 명의 작가가 아닌, 팀이자 시스템, 그리고 반복 가능한 프로토콜로 작동한다. 이러한 점에서 아이작 오즈는 미술의 저자성에 대한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고, 개념미술, 퍼포먼스, 시스템 기반의 창작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술은 이제, 창작자가 아니라 구조에서 태어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구조가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다면, 예술은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문현철)
아이작 오즈 Isaac OZ
Based in Seoul, Korea
아이작 오즈는 이승환(Originator), 김유정·김지명(Developers), 김효정·전소희(Performers)로 구성된 아티스트 그룹이다. 대중음악에서는 프로듀서, 작곡가, 가수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업하며 고도의 분업과 화학적 시너지를 통해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영화감독 역시 작품의 정체성을 독점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을 이끄는 연금술사에 가깝다. 이처럼 여러 예술 분야에서는 분업을 통한 창작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유독 동시대미술에서만은 여전히 'I(나)'—즉, 개인 작가의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신화가 강하게 작동한다. 여기서 말하는 ‘I’는 단순히 자기를 지칭하는 ‘나’를 넘어, ‘identity(정체성)’의 첫 글자이자, 프로이트가 말한 성격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인 ‘id(이드)’의 기호로도 읽힌다.
아이작 오즈는 이러한 'I'의 신화를 넘어서기 위한 프로젝트다. 철저한 분업과 협업을 기반으로, 이들은 작가 개인의 자아와 본능을 지우고 새로운 형태의 예술적 정체성을 제안한다. 나아가 ‘작가’라는 호칭 안에 이름을 브랜드처럼 구성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스템에 저항하면서도 전략적으로 그 틀 안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선택한다. 우리는 더 이상 독립된 ‘자아’나 ‘주체’로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은 철저히 ‘상호주관적’이다. 상호주관성이란 타인과 타자, 세계와 우주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 방식을 의미한다. 아이작 오즈는 바로 이 상호작용의 흐름 안에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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