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수아트센터
2024년 4월 12일 ~ 2024년 5월 18일
분리의 해체와 가능성의 조립
1. 조립의 시작
‘앗상블라주(Assemblage)’는 집합, 번역, 배치 등을 뜻하는 단어로, 미술에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평면을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기법을 지칭하거나, 혹은 주변의 일상적인 사물을 재조합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2차원과 3차원을 자유롭게 오가기 때문에 단일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앗상블라주(Assemblage)’는 단순한 형식과 외양의 변화가 아닌, 기존의 의미를 전복시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2018년 출발한 <AVS: 과학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이하 ‘AVS’)은 과학과 예술의 다양한 결합 방식을 통해 동시대 사회 현상을 다루고, 미래 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올해로 <AVS>가 5회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앗상블라주 Assemblage: 조립된 세계⟫는 과학과 예술이 왜 연결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 새삼스러운 질문은 오늘날 ‘융복합’이라는 상투적인 이름으로 두 세계의 만남이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닌 시대에, 이제 우리가 과학과 예술을 어떻게 직조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은 논리적, 이성적, 객관적이지만, 예술은 비합리적, 감정적, 주관적 상상이라는 편향된 시각 때문에 이 둘은 표면적인 관계에 머무르기 쉬운 한계가 있다. 다만, 이 근대적 이분법은 더 이상 무용하다. 세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고, 기존 질서는 재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앗상블라주 Assemblage: 조립된 세계⟫는 과학과 예술이 서로가 서로에게 뒤얽히는 상호작용을 통해, 우리에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선을 제안한다. 이것은 단순히 장르의 경계 짓기를 거부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 예술의 차이를 사유하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서로 교차할 수 있는 지점에서 어떤 ‘새로움’과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는가에 관한 질문이다.
고등과학원(KIAS) 과학자 박창범, 이필진과 예술가 강지윤, 무진형제, 박민하, 조충연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위에서 언급한 ‘앗상블라주(Assemblage)’ 개념을 적용하여, 과학과 예술 두 영역의 협업체가 전시라는 매체에서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 시도한다.
2. 조립 과정
⟪앗상블라주 Assemblage: 조립된 세계⟫는 과학자/예술가/큐레이터가 연구실/작업실/김희수아트센터에서 오갔던 수많은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2023년 10월 첫 만남 이후,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탐구하며, ‘왜’와 ‘어떻게’로 시작되는 질문과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가령, 과학은 왜 우리의 일상과 자연현상을 설명하려는 것인지, 과학 이론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립되는지, 한편 예술가는 어떻게 세계를 재현하고, 창작은 어디서부터 출발하는지 등을 ‘어렴풋하게’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미궁에 빠지거나, 뿌연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만남이 거듭되고 이야기가 축적되는 과정에서 아주 가느다란 실오라기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실오라기의 형상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발견했던 의외의 점은 과학과 예술의 작동 방식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과학적 발견이 항상 정확한 인과 관계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연과 불확실성이 개입된다는 점에서 예술의 생산방식과 닮았고, 특히 과학자와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대하는 시선/태도가 흡사했다. 과학의 수많은 질문이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들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는 계기를 마련하듯이, 예술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거나 생각하지 못한 점을 질문하여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들면서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수식으로 가득한 과학 언어와 이미지로 표상하는 미술 언어 사이에서 비록 처음에는 아무것도 예견할수 없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했다.
3. 조립 모양
김희수아트센터 입구에서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램프를 따라가면, 오른쪽 벽면에 낯선 문장들이 보인다. 전시장까지 이어지는 텍스트는 박창범과 이필진의 이야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작가들 작업의 출발점, 혹은 중요한 단서로서 협업체들이 공유한 시간을 담고 있다. 로비에는 강지윤과 이필진이 주고받은 이메일과 박창범이 무진형제의 작품을 향한 시선을 담은 글이 있다. 과학자의 연구논문과 학술발표 자료에서 가져온 수식과 이미지 자료는 새로운 시공간에서 하나의 기호로서 작동한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던 과학자들의 ‘말’은 휘발되지 않고, 예술가들의 작품에 스며들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강지윤과 이필진은 ‘보기’에 관해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시각 예술가의 ‘본다’는 행위는 과학자의 ‘인지한다’는 말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과학의 존재 방식은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은 막연한 실체에 가까워지기 위한 과정이 아닐지. 강지윤은 우리가 볼 수 있는/없는 영역 혹은 예측할 수 있는/없는 것을 동시에 제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서 의도된 엇나감과 흐릿함은 두 세계 사이에서 누락된 것일 수도, 혹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존재의 이면일 수도 있다. 앞면의 스크린 공백을 통과하여 뒷면의 벽에 희미하게 보이는 형체, 그리고 초점이 선명하게 맺힌 나머지 부분을 우리는 동시에 보고 있지만, 둘 다 분명 이미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건물 입구 쪽 공간과 전시장 내부에 떨어져 설치된 석고 캐스팅 작품은 한 번에 전체를 볼 수 없는 양자물리학의 구조와 연결된다.
무진형제는 현미경을 구입하여 일상과 주변을 100~800배까지 확대하여 관찰하기 시작했다. 박창범과 나눈 대화 중‘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수사적인 표현이 실제로 ‘과학적 사실’이라는 것을 듣게 된 순간부터였을까.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가족을 상실한 사적인 경험을 죽음과 연결된 보편적 정서와 떼어내고, 박창범이 다루고 있는 세계와 교차하여 미시와 거시를 구분하는 이분법을 무너뜨린다. 무진형제가 이번 작업을 시작하면서 떠올렸다던 루카치(Georg Lukacs)는 「소설의 이론」(1998)에서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 사이의 ‘단절’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이것은 작가들이 과학과 예술의 분리를 재배치하고, 박창범이 ‘두 쪽 난 세상1’을 원래 하나였던 것으로 회귀시키고 싶어 하는 마음과 궤를 같이한다.
박민하가 지속해서 다뤄온 힘의 구조와 작동 방식은 박창범의 우주론을 만나 확장하였다. 박창범은 최초의 은하 형태를 연구했고, 박민하의 작업은 미지의 영역, 이를테면 선사시대의 기원이나 인간이 가보지 않은 행성 등의 관심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박창범이 최근 연구에서 다루고 있는 우주의 제5원소 가능성을 모티프로 작업을 전개했다. 인간의 관점으로 해석한 우주의 개념과 관측 불가능한 무차원의 존재를 과학에서 이미지로 구현하기 위하여 과학자가 지시어를 입력하는 과정을 작가는 흥미롭게 지켜봤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해 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상태를 다양한 이미지의 몽타주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조충연의 작업은 이필진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나왔던, 세계의 모든 물질이 ‘파동(wave)’으로 구성되었다는 양자역학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비과학인이 해석 불가능한, 이필진이 직접 낭독한 수식과 강연은 노이즈가 되어 새로운 시공간에서 공명하며, 파동의 개념을 구조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AI로 영상을 제작하는 동시에 1930년대 스타일의 고전 기계들을 소환하여, 과학기술의 진보를 기술 낭만주의 시대 배경과 대조함으로써, 이것이 오늘날 어떤 ‘감수성’을 자극하는지 질문한다.2 선형적인 시간을 벗어나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기말의 정서를 소환하는 시각과 소리의 결합은, 근미래에 더 가속화될 새로운 물질적 조건의 등장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술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증표를 찾아낸다. 공간을 확장하여 징표를 찾아낸다.
이 모든 상상력을 기호화하여 인간의 주어진 조건을 가늠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가의 상상력을 과학하는 마음이라 표현하고 싶어진다.
물론 예술가의 상상력이 초과되거나 부족할 때는 실패한 작품이 된다.
이때의 실패는 작품의 실패이지, 예술가의 실패는 아니다.
예술가는 실패를 무릅씀으로써 또 다른 진화를 하기 때문이다. 과학도 그러하다.
나는 과학을 좋아하지만, ‘사실’을 알려주는 냉철함 때문이 아니라,
우선 ‘가설’을 세울 줄 아는 모험심 때문에 좋아한다.3
-김소연, 「상상력-‘미지와 경계’를 과학하는 마음」 중.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작용하고, 예술과 과학은 그 경계에서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것을 가져와 그들의 고유한 언어로 우리에게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닐까. 세계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유동적인 존재일 것이다.
시인 김소연이 예술과 과학, 두 세계를 절묘하게 표현한 글이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과학자의 말은 울림을 주는 ‘시(試)’와 다름없었고, 예술가의 작업 과정은 질문을 거듭하며 완성되는 실험 같았다. 이번 협업 과정은 과학과 예술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확신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불편함 없이 긍정한다’는 의미에 가까울 것이다. 이 행위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감각하고, 세계에 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앗상블라주(Assemblage)’ 형식을 통해 새롭게 ‘조립된 세계’는 과학과 예술을 부단히 횡단했고, 여전히 그 사이에서 부유한다. 이번 전시는 익숙한 풍경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질문하려는 시도이다.
김선옥
1. 박창범이 무진형제의 작업에 관해 쓴 「두 개의 창공을 보며」(2024) 전문은 로비에서 볼 수 있다.
2. 조충연 작가노트 참고.
3. 김소연, 「상상력-‘미지와 경계’를 과학하는 마음」, 『웹저널 크로스로드』 통권 62호, 2010년 11월, http://crossroads.apctp.org 2024. 1. 15.
참여작가
예술가 X 과학자
강지윤 X 이필진
무진형제 X 박창범
박민하 X 박창범
조충연 X 이필진
운영
경영관리부 조정현 부장, 진윤희 대리, 김정은 대리, 강수미 주임
예술사업부 윤정혜 팀장, 김선옥 책임 큐레이터
기획: 김선옥
코디네이터: 이진선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힉
공간디자인: 김연세
영상장비: 올미디어
공동주최
수림문화재단,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콘텐츠진흥원, 고등과학원
협력
한국예술종합학교, 고려대학교의료원
출처: 수림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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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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