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로젝트 서울
2025년 5월 20일 ~ 2025년 5월 31일
오롯한, 그 자체로 타는 (혹은 무엇도 태우지 않는) 불
열화상 카메라로 포착되는 낮은 온도, 차게 식은 것, 우울blue을 떠올리게 하는 가라앉은 색인 파랑은 의외로 일상 속에서 ‘불꽃의 색’으로도 흔히 볼 수 있다. 이 에너지, 불은 뜨거워질수록 백색을 거쳐 백청색, 청색으로 이어지는 빛의 스펙트럼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뜨겁다고 한다. 가장 흔한 것이자 가장 뜨거운 것으로서 푸른 불꽃은 삶의 일부다. 엄소완, 장새샘의 빛도 이와 같다. 이미 연소되었거나 연소되기를 바라는 일상적 관계의 부침. 이들의 과정은 수행적 태도와 ‘다스리기’의 가치를 찾고 혼란스러운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시도다. 엄소완은 상상적인 내면의 세계를, 장새샘은 보다 몸에 근거한 재현을 추구하며 삶의 균형과 그 근거가 되는 것을 담아낸다. 이미 한차례 감정의 격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푸른 불꽃만이 남는다.
엄소완은 ‘비보’ 개념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룬다. ‘비보’는 보완과 조화를 추구하는 풍수지리의 주요 개념이다. 작가는 고지도, 특히 천하도라는 관념적 지도의 형태를 빌려 내면의 체계와 심상을 시각화한 공간을 그려 왔다. 전체 화면으로 크게 구획된 공간 사이, 혹은 그것을 넘어서며 작가가 추구하는 바 구체적인 의미를 담은 패턴으로 비보하는 것이다. 실용적, 직관적인 기호의 현대 지도와 달리 보다 정신적인 차원에서 자연과 가치를 담아내는 데 중점을 두는 작업에서, 방해말에 아교를 섞어 덧바른 질감은 거친 지형으로 나타난다. 정도를 달리한 푸른 색감에서 고통은 이미 없고 차분한 중도만이 있다. 천하도 등에서 나타난 해와 달과 같은 원형의 연장에서,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기호에 이르기까지. 근작은 고지도의 형태에서 더 나아가 작가가 적극적으로 기준한 내면의 질서를 기하학적 구성으로서 반영하는 듯하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자연의 원리는 결국 내면세계의 은유다. 이러한 의도는 구획된 부분 위에 개별적 의미가 담긴 작은 드로잉에서 강조되며, 가장 옅은 빛, 물색의 화면은 해 뜰 무렵 세로로 긴 창에 비친 아침의 빛을 연상케 한다. 특히 <보이지 않는 질문이 형상이 되었다>에서 나타나는 콜라주나 (연결되지 않는 여러 부분이) 교차하는 방식의 공간 분할은 ‘물’의 흐름으로 이어져 하나의 우주로 재탄생한다.
장새샘은 양모를 겹친 펠트로 멍들고 상처 난 피부를 만든다. 작가는 이전 작업에서 선으로 이루어진 명상적 화면을 자기-수행적인 태도로 그려냈다. 이후 모섬유 작업으로 전환하며 시도했던 ‘에고새’의 의미, 즉 내면의 탐구라는 차원으로 행했던 상상적 새 만들기의 연장에서, 근작은 작품의 의미와 작업 방식 양면에 걸쳐 더 연결되는 지점을 가진다. 양모를 겹겹이 올려서 닦고 다시 그 위에 올리는, ‘피부’를 만드는 과정들. 그렇게 겹쳐진 천의 겉면은 붉고 푸르게 피가 비치는 멍든 상처 같기도, 나이 들어 늙고 헤진 주름 같기도 하다. 반복되는 과정과 수반되는 감각을 담은 피부는 단순한 재현의 측면을 넘어 더 내밀한 ‘나’의 실재, 내장의 반영이다. 양모가 주는 편안함 내지는 따뜻한 감각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업은 안정을 넘어서고자 하는 것 같다. 오래되고 거친 피부는 하나의 넓은 화면으로 제시된다. 그 피부에는 여러 순간의 중첩이 있다. 그렇게 만든 피부의 이름은 <조각 A Piece of Me>으로, 과하게, 집착적으로 묘사된 피부 위의 덩어리들과 제목이 전하는 의미로 인해 (수동적이나) 공격적인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탯줄로 지은 시>는 탯줄이 가지는 필연적인 관계성(어머니-자식)을 일차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겹친 양모를 또다시 겹치고, 겹겹이 말아 이어가며. 그렇게 만들어진 줄을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 아마도 끝나지 않을 지리한 수행의 과정 끝에는 언젠가 정리될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괴로움. 가깝게는 가족, 더 넓게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의 관계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는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가 협업하여 제작한 책 <마음 엮음>에서 더 내밀하게 드러난다. 시각화라는 정제 과정 이전의 언어/텍스트는 중도에 대한 삶의 태도를 더 가감없이 전한다. “이 푸른 빛은 어디서 왔을까, 누구에게 물어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몫이 있는, 이 자조와도 같은 말은 진실로 그것을 지나는, 지나온 사람의 증언이다. 두 작가에게 남은 푸른 빛은 그렇게 타오른 불꽃이자 담금질하여 다시금 단단해진 시퍼런 금과 같다.
글 손하늘
참여작가: 엄소완 장새샘
출처: 레이프로젝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2:00 - 18:00
수요일 12:00 - 18:00
목요일 12:00 - 18:00
금요일 12:00 - 18:00
토요일 12:00 - 18:00
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