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프로젝트 씨오
2026년 10월 17일 ~ 2026년 11월 14일
아트프로젝트 씨오(Art Project CO)는 오는 10월 17일부터 11월 14일까지 임순남, 윤석원, 김그림 3인이 참여하는 기획전 《엔트로피의 정원(The Garden of Entropy)》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생성과 소멸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열역학 개념인 엔트로피를 통해 조망한다. 그리고 존재가 피어나고 흩어지는 변곡점에서 발현되는 회화적 질서를 탐구한다.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하나의 계(系)가 지닌 무질서의 정도를 뜻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고립된 계의 엔트로피는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모인 에너지는 흩어지고, 세워진 것은 허물어지며, 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 곧 시간의 방향이 된다. 피어난 모든 것은 언젠가 시들고 태어난 모든 것은 결국 소멸한다는 자연의 섭리는, 이 법칙이 생명의 세계에 드러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술의 맥락에서 엔트로피는 쇠락의 언어에만 머물지 않는다. 에너지가 흩어지며 하나의 형태가 다른 형태로 옮겨 가는 변모의 찰나, 곧 소멸이 또 다른 생성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가리킨다. 이번 전시의 정원은 바로 그 순간들이 피고 지는 자리다. 이곳에서 소멸을 향해 가는 자연의 섭리와 그것을 기록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맞부딪치며 새로운 질서가 빚어진다. 세 작가는 각기 다른 조형적 실천으로 유기체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영속적 가치를 화면 위에 교차시킨다.
임순남은 동시대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포착한 형상을 정지시키고, 확대하고, 분절하며 회화로 옮겨 왔다. 그가 오랫동안 주목해 온 것은 하나의 존재 안에 쌓인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의 간극이다. 이번 출품작의 열대 식물에서 그 시간은 식물의 신체 위에 고스란히 새겨진다. 위로는 새 잎이 푸르게 돋고 아래로는 시든 잎이 처진 한 그루의 식물은 생장과 쇠락이 동시에 진행되는 살아 있는 신체다. 작가는 잎과 줄기를 넓은 붓의 단호한 면으로 쪼개 각진 평면의 기하학적 질서로 재구성한다. 그 면들은 다시 줄기를 따라 뻗고 휘어지는 유기적 흐름으로 이어진다. 본래의 초록을 떠난 보랏빛과 자줏빛, 푸른빛의 색채는 이것이 식물의 재현이 아니라 물질과 붓질이 빚어낸 '회화적 사실'임을 드러낸다. 그의 식물은 자라남과 시듦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순간에 머물며, 흩어지려는 형상을 회화의 결합력으로 붙든다.
윤석원은 오랫동안 생성과 소멸,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삶의 시간을 그려 왔다. 효용을 다한 관상식물의 멈춘 시간을 그린 〈마른 식물〉 연작(2017~)을 거쳐, 2021년 〈빛과 물질〉 연작에 이르러 그의 시선은 사물이 아니라 사물을 드러내는 빛 자체로 옮겨 간다. 정밀하게 묘사한 형상을 수직·수평의 붓질로 다시 흩트리는 그의 화면에서, 이미지의 붕괴와 회화의 물질성은 하나로 겹친다. 이번 출품작에서 그 빛은 시간의 무게를 입는다. 하루의 끝과 계절의 경계에서 빛은 느리고 무거워지고, 그 빛을 받은 나무는 본래의 색과 윤곽을 내어주며 벽과 공기, 물결 속으로 스며든다. 그러나 흩어짐이 끝은 아니다. 잎을 버린 가지는 그 흐릿한 빛 속에서 다시 새잎 낼 채비를 한다. 형상을 흩트리는 붓질이 소멸의 시간이라면, 흩어지는 빛의 무게를 붙드는 그리기는 다시 생성의 시간이다.
김그림은 한라산과 파타고니아, 시베리아의 고산지대를 오르며 마주한 식물과 숲의 감각을 회화로 옮겨 왔다. 혹한을 견디려 식물이 스스로 길러낸 털은 그의 화면에서 수없이 반복된 붓질의 결로 쌓여, 눈으로 만지는 듯한 촉지적 표면을 이룬다. 이번 출품작에서 그 털결은 산의 능선이 되어 푸른 호수를 감싸 안는다.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산등성이 사이로 맑은 물빛이 고이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마른 껍질을 뚫고 봉오리가 돋으며 꽃잎이 서서히 열린다. 식물인 듯 동물인 듯 모호한 형상들은 희미한 빛의 윤곽을 두른 채 어둠 위로 떠오른다. 그것은 생명이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 미분화된 어둠에서 질서가 태동하는 경계의 순간이다. 흩어진 감각과 기억을 한 올 한 올 엮어 가는 그의 회화는 소멸의 흐름 한가운데서 다시 피어나는 생명의 질서 그 자체다.
피어난 것은 시들고, 시든 자리에서 다시 새잎이 돋는다. 생성과 소멸은 서로를 밀어내는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을 이루는 자연의 섭리다. 임순남의 식물 위에서 생장과 쇠락이 함께 흐르고, 윤석원의 빛 속에서 형상은 흩어진 채 다음 계절을 준비하며, 김그림의 어둠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동한다. 회화 역시 이 섭리의 일부다. 흩어지는 시간과 지각의 파편을 그러모아 화면 위에 질서를 세우는 일은 소멸을 거스르려는 몸부림이 아니다. 소멸을 끝까지 응시하며 그 안에 깃든 생성의 기운을 기록하는 일이다. 《엔트로피의 정원》은 언젠가 시들어 사라질 존재들이 그럼에도 피어나는 순간을 마주하며, 회화가 유한한 생을 기록하는 가장 끈질긴 방식임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다.
전시는 11월 14일까지 이어지며, 개막일인 10월 17일(토)에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오프닝 리셉션이 진행된다.
참여 작가: 임순남, 윤석원, 김그림
출처: 아트프로젝트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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