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루프
2020년 6월 12일 ~ 2020년 7월 2일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
2018년 8월 6일 새벽 4시 12분, 대전 소재의 한 물류센터에서 일용직 노동자 김모 군(23)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망의 원인은 감전. 김모 군은 근무가 끝나갈 무렵 작업장 바닥 물청소를 지시받았다고 한다. 이미 누전 상태였던 컨베이어벨트에 물과 그의 몸이 함께 닿아버렸고, 열흘 뒤 숨을 거뒀다. 사고가 일어난 날, 그 계절은 꽤나 무더웠을 테다. 오민수는 퀭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휘젓는 선풍기 앞 빠르게 몸을 움직여 일하는 일꾼들의 모습, 그 눅진하고도 차가운 기계 표면의 날선 충격에 까맣게 타버린 새파랬던 몸을 생각했다. 그의 개인전 《전기는 흐른다 Electricity is Running》는 이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작가는 당시 작업 혹은 사고 현장을,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죽음의 과정과 순간을 사운드 설치와 이를 왜곡, 굴절시키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재구성한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어둑한 분위기 속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7개의 스피커 모듈을 마주한다. 스피커를 감싸는 금속 상자는 빛을 날카롭게 반사시킨다. 스피커 출력부 앞으로 파란 원반이 모터 회전축에 매달린 채 자리하고 있다. 모듈에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찰나, 일제히 작동을 시작한다.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터의 동력은 파란 원반에 전달되고, 이는 시계추의 반복 운동,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의 움직임과 째깍거림을 흉내 낸다. 이때 모든 시계침은 역방향으로 회전하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사고가 일어난 ‘4시 12분’에서, 12분을 거슬러 사고 직전의 순간으로 타임워프를 시도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치 레퀴엠을 연상시키는, 끔찍하게 느리고 소름끼치는 음원이 재생된다. 이어 사운드 퍼포먼스를 펼치는 7개의 스피커 모듈은 각자 물류센터 내 노동자의 역할을 도맡는다. 물품 박스의 송장 바코드를 스캔하는 ‘삑삑’ 소리를 쉴 새 없이 내지르다가도, 이내 박스를 옮기는 바쁜 발걸음이 바닥과 부딪히는 마찰음을 낸다. 작업장의 중간 관리자 정도로 추측되는 이의 단말마 외침도 들린다. 당최 힘내라는 독려인지 핀잔인지 모를 그의 말소리는 선풍기 바람에 썰려 나간다. 흔히 ‘물류센터 알바의 하이라이트는 상차’라고들 하지 않던가. 바코드 삑삑거림, 농구 코트 위 선수처럼 점점 격렬해지는 발소리, 박스를 집어던지고 쌓고 무너지는 파열음이 온데 뒤섞인다. 노동 강도가 고조되며 ‘번-아웃’되는 일꾼이 생기듯 속도를 높이던 모터마저 삐걱댄다.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잠시 고요를 되찾지만, 곧장 서걱대는 빗질 소리가 들려온다. 먼지를 쓸어 담고, 바닥에 물을 뿌리며 청소한다. 온갖 먼지를 머금은 채 소용돌이치는 물이 하수구로 휩쓸려 내려간다. 오민수가 시간을 되돌린 물류센터에서는 다행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박스를 분류하고 적재하고 상차하는 와중에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그는 비참했던 죽음을 무마해보려는 것일까? 그런데 왜 하필 장송곡을 들려주는 것일까? 오민수는 날카롭고 뭉툭한 소리가 교차하는 자신의 작품을 예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애도’의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위로하는 노래를 부르되, 그 죽음을 재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 그가 만들어낸 한없이 과격한 사운드와 기계적 움직임은 비극적 사건을 상기시키고,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파국을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앞서 바라봄’의 경험은 단순히 물류 노동 현장의 시스템을 향한 경고만은 아닌 것이다.
한편 오민수는 이번 작품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물리적 운동을 적극 활용한다. 작품의 주된 매체인 전기와 소리는 모두 파장을 통해 전파되는 에너지다. ‘감전사한 노동자’라는 내용과 ‘전자기술 기반의 작업 방식, 음파를 분절시킨 감각’이라는 형식을 ‘에너지와 파장’이라는 키워드로 적절히 엮어냈다. 약 24분가량의 재생시간 동안 지속되는 사운드도 다소 과격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편집 기법을 통해 소리 파장을 변환, 왜곡시킨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전자기술 기반의 작업을 하는 오민수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오류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수십 차례 거친다. 때문에 오작동과 오류를 일으키는 부분이 어디인지 치밀하게 파악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끝까지 찾아낼 수밖에 없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작가로서 그가 ‘노동 현장’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주제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첫 개인전 《후진하는 새벽》(2019)에서 보여준 고장난 설비와 파손된 상품이 비대해진 물류 시스템의 필연적 오작동을 증명했다면, 이번 전시 《전기는 흐른다》는 그 필연적 현실 속에서 희생되는 노동자 개개인을 조명한다. 오민수는 자신과 자신의 작품이 그러하듯, 우리의 사회와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오류를 직시하고, 갱신하기를 기원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오늘날 고장 난 노동 현장에서 죽어간(갈) 모든 노동자를 애도하는 단막극이자, 그곳의 압축판이다. / 조현대
참여작가: 오민수
큐레이터: 조현대(아트인컬처 에디터)
협업: 조민현(사운드), 장영민(테크니션)
도움: 김현진, 양현민, 정진하
후원: 서울문화재단
Special Thanks to 후니다킴, 아트ENG 유병선 사장님
* 본 전시는 인스턴트루프에서 진행하는 2020년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사업 12번의 밤 /12nights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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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스턴트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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