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20년 1월 8일 ~ 2020년 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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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길을 잃었던 적이 있다. 낯선 타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국의 땅에서 소통의 부재 속 길을 잃었다.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수단인 언어의 부재를 마주하면서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수단’의 상실을 경험했다.
Ex nihilo; Something out of nothing. 그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생겨난 무언가. 세상이 창조된 ‘그 자체’의 손길이 살아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매일의 풍경 안에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과 소망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내게 또 다른 형태의 관계의 매개체가 되었다. 이 순간은 나로 하여금 ‘epiphany’를 경험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가장 유효했던 소통의 방식이 분절되었을 때 나는 감각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높은 건물들이 빽빽하게 즐비해 있는 서울의 풍경 속에서는 더 이상 새롭게 유효한 소통이 어렵다는 것. 이 불가능성을 넘어서기 위해 나는 마음을 기댈 풍경들을 찾아다녔다. 귀중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우연한 순간들을 수집하며 꿰매고 엮었다. 이 시도들은 대체물이지만 그 자체로도 완결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백을 메꾸고자 하는 시도들. 관계의 재생 가능성은 보다 일상적이고, 단순하지만 숭고한 차원에서 엿보인다.
그 지점들을 이곳에 나열하고자 한다. 풍경과 하나 되어 가는 폐수영장, 무심코 놓인 생명, 나른한 오후의 빛, 곧 땅으로 사라질 꽃잎들이 수북하게 쌓인 바닥, 바람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나뭇잎의 춤사위, 손 떼 묻은 오래된 것, 잠깐이면 사라질 수면의 몸짓. 그림의 출발점은 기억이다. 우리는 기억하는데 서툴다. 우리의 마음은 난처하게도 사실적이든 감각적이든 중요한 것들을 잘 잊어버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그림을 통해 그것을 증거한다. 가시적 이지 않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갖는 순간들에 대한 증언, ‘증거하기’라는 회화의 오래된 책무를 떠올리고자 한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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