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1년 2월 16일 ~ 2001년 4월 8일
로댕갤러리에서는 올 해의 첫 전시로 <원경환 : 흙의 인상>을 개최한다. 흙이 지닌 물성을 탐구하는 중견작가 원경환은 도예에서 출발하였지만 일반적인 도예 개념에 따른 용기 제작보다는 순수한 조형세계를 탐구하는데작업의 목표를 두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도자 예술에 있어 필수적인 작품 크기 제한이나 소성(燒成)등으로부터 탈피하고 그것을 변용하여 새로운 창조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다.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현대적인 공간인 로댕갤러리에서 펼쳐지는 그의 흙 작업(Clay Work)은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알수있는 기회이다. 한편에는 공간을 압도하는 기념비적인 설치작품이 생흙의 질감과 결합하여 유희와 관조의 공간을 만들고, 다른 편에서는 먹빛을 띈 흑도가 쇠나 나무와 어우러져 음양오행의 의미를 찾는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전시의 주제는 역시 흙의 인상이다. 이 전시를 통해 인간과 가장 가까운 자연인 흙에 대해 사유하고 흙이 지닌 미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990 년대 이후의 근작들과 현장 설치 작업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번 개인전은 1980 년대초반 일본 유학시절부터 시작된 작가의 탈장르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세계를 조명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흙의 인상이라는 작가의 주제는 한 없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흙을 통해서 미래를 보는 작가의 노력이 이번전시를 계기로 다시 평가되기를 바란다.
흙의 인상: 원경환의 작품세계
원경환은 흙의 물성과 미감을 세련된 감각과 현대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는 도예로 출발하였지만 일반적인 개념의 용기 제작보다는 탈공예적이고 조각적인 형태의 오브제 도예나 생흙을 이용한 설치 작업 같은 순수 조형 세계를 지향한다.
그의 이러한 경향의 작품 활동은 1980년대 초반 부터 형성되었는데, 모두 흙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도예와 조 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장르 적이 고 실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 번 전시는 1990년대 이후에 전개된 그의 두 가지 성격의 작품 세계를 종합적 으로 되돌아보는 의의를 갖고 있다. 첫번 째 방에 전시된 검은 빛깔을 띤 흑도 오브제 작품들은 고대의 토기 나 기와 등을 굽던 원시적인 흑도소성(黑陶燒成)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써 물과 불의 결합, 그리고 가마에서의 그을음으로 빚어진 흙의 질감과 표정을 강조하 기 위해 철이나 나무 등 다른 재료가 결합되어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들을 토생금(土生金), 목극토(木克土) 등으로 명명하여 음양오행 (陰陽五行)의 상생(相 生) 과 조화(調和)의 원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있다. 두 번째 방은 생흙을 바 른 설치 작품으로 구성된다. 수직적인 상승감을 주는 흙 기둥의 표면 질감과 방 한 쪽 전면 유리벽을 점토로 바른 뒤 건조한 흙의 자연스런 균열감은 미묘한 흙 의 물성을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조형요소이다. 작가는 흙과 불의 예술인 도예 로 부터 흙과 빛, 그리고 공간까지 결합하여 표 현의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의 흙 설치작업은 문명에 의해 가리워 진 흙의 원형적인 미감을 현대성 과 대비 또는 조화시키며 흙에 대한 인식과 사유를 새롭게 한다.
흑도소성법과 오브제 도예
흑도소성(黑陶燒成)법은 일명 ‘꺼먹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선사시대의 토기류나 전래의 떡시루, 기와 같은 물건을 만들 때 사용하 던 원시적인 소성기술로 연료인 장작에서 생기는 매연이 태토(胎土)에 흡착되 어 검은 빛을 띠게 되는 방법이다. 이 기술의 특징은 유약으로 태토를 덮어버리 는 것이 아니라 심한 환원소성에 의해 생기는 매연으로 태토를 검은 색채로 감 추면 서도 흙의 느낌이 살아 있다는데 있다. 가마의 구조와 점토의 선택에 따라 부분 적으로 회색, 적색, 황적색 등 다양한 점토의 발색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오랜역사를 지니고 있으나 소성방법의 발달로질 높은 도자기류가 등장하 면서 그 맥이 끊겼다.
원경환이 만드는 흑도 오브제 작품은 성형과 건조를 거친 후 850℃ 이상의 온도 에서 초벌 구이를 거쳐 일정한 강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한 후 재벌구이(600℃) 에서 매연을 입히게 된다. 특별히 검은 색깔의 표면을 강하게 생성해 내기 위하 여 작가는 생솔가지와 같은 덜 마른 나무 외에도 폐타이어를 넣어 태 우기도 한 다. 그의 흑도 오브제 작품은 조각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기하학적 기본형태인 원형, 입방체 또는 원통형을 조형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또 점토 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재료를 같이 결합 또는 병치시키기도 한다. 점토와 철을 결합한 <토생금(土生金)> 연작은 상생(相生)의 의미가 있고, <목극토 (木克土)>는 상극(相克)의 의미가 있다.
원경환희 흙설치 작업
원경환이 생흙을 설치하여 작품을 시작한 것은 1988년부터이다. 철망 위에 흙을 붙인 설치 작업을 통해 그는 도예의 틀에서 벗어나 열린 의미에서의 순수 조형작가로 나서게 된 것이다. 현장에서의 흙 작업의 주된 이미지는 흙이 마르면서 갈라지는 균열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흙의 표면은 마치거북의 등껍질이나 가뭄에 드러난 논바닥 같이 변한다. 유리창에 바른 흙표면의 틈새로 스며드는 빛의 밝기는 전체적으로 어두운 흙의 공간을 아늑하면서도 미묘한 관조와 명상의 공간으로 이끌고 있다.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현대적인 건축물인 로댕갤러리에서의 전시를위해 제작된 <흙의 인상>과 <대지의 내부>는 불규칙한 평면의 질감들과 기하학적이고 모뉴멘탈한 구조물들이 어우러져 연출해내고 있는 유희와 관조의 공간이다. 고대 신전의 열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사각의 흙기둥 설치 작업은 곧게 뻗은 수직의 상승감과 단순한 형태의 반복이 주는 강한 힘으로 인해 종교적이면서도 명상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5미터 높이의 기둥 18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이루는 열 사 이를 지나는 관람객은 기둥에 바른 흙의 표정과 균열감을 통해 편 안함과 더불어 원초적인 유희 충동을 느끼게 된다. 현대 문명에 의해 가리워지고 감추어진 흙의 모습을, 바로 그 현대 문명의 상징인 빌딩처럼 솟은 흙 기둥의 숲에서 만나게 되는, 원시와 현대가 대비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흙의 인상>이 흙의 표면적 균열감을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전시장 한 면의 10미터 높이 전면 유리창에 점토를 바른 작업인 <대지(大地)의 내부>는 흙의 안에서 바라보는 균열감을 느끼게한다. 흙이 갈라진 틈새로 파고 드는 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흙의 인상을 바꾸어 간다. 밝은 대낮이 되면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를 뚫고 들어 오는작은 빛들의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하며, 흙 기둥과 함께 조성된 풍경은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중세 성당의 성스러움을 연상시킨다.
원경환의 흑도 오브제 작품은 조각적인 특징을 가진다. 그들은 기하학적 기본형태인 원형, 입방체 또는 원통형을 조형적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또 점토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재료를 같이 결합 또는 병치시키기도 한다. 점토와 나무를 결합한 <목극토(木克土)>는 문자 그대로 ‘나무가 흙을 이긴다’는 상극(相克)의 의미이지만 결국 나무는 흙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것이므로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상생과 조화의 원리를 상징하고 있다. 나무의 줄기를 횡단면으로 자르고 그것을 다시 반으로 갈라 흙과 병치시킨 이 작품은 상징적이면서도 작가의 재치를 보여준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흙에 정착하여 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000년 경인 신석기시대부터이다. 이때부터 인간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함으로써 흙과 땅을 터전으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위가 넓고 밑이 뾰족한 원추형의 이 작품은 신석기시대부터 만들어진 토기의 원형적인 형태를 연상하게 한다. 흙의 점성과 가소성에 의해 인류는 건축물의 재료인 벽돌이나 기와,그리고 생활의 도구인 질그릇을 만들어 사용했던 것이다. 그런 원시적인 소성 단계에서 사용되었던 흑도소성법을 이용한 원경환의 오브제 작품은 검은 빛깔과 기하학적인 단순한 형태가 결합하여 강한 힘을 발산하고 있다. .

미술사적 문맥에서 오브제(Object)란 본래 사물이 그 상태 그대로 작가의 태도나 의도, 개념 등에 의해 예술적 컨텍스트로 인입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도예에서는 종래의 기물이 그 용도나 개념을 탈피하여 표현의 맥락에서 다루어지는 것을 말한다. 즉 물레 성형에 의해 그릇이 될 것이 형태 변화에 의해 도구적 맥락에서 이탈됨으로써 그것은 오브제 조형이 된다. 이 작품은 흑도소성기법을 이용한 오브제 작품이다. 흙이 지닌 가소성을 이용한 원통형의 기하학적인 추상형태의 조형작업으로 무유소성에 의해 마치 토기의 표면과도 같이 흙 본래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흙의 색깔을 흑색으로 바꿔주는 묘미가 있다. 기능을 배제한 탈공예적이고 비공예적인 조형지향적 경향은 현대도예의 한 특징이다.

원경환은 점토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재료를 쓰기도 한다. 다른 재료를 같이 결합 또는 병치시켜 흙의 느낌이 대비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점토에 철·나무 등을 결합한 작품들을 <토생금(土生金)>, <목극토(木克土)>등으로 제목을 붙인 것을 보면 그의 사고가 동양의 철학적 원리인 오행사상(五行思想)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긴요한 물(水)과 불(火)에서 시작해서 생활 자재인 나무(木)와 쇠붙이(金)를 거쳐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흙(土)에 이르고 있는 오행상생(五行相生)의 원리를 그의 작업에 견주어 보면 점토(土)에 물(水)을 이겨 빚어 낸 형상을 불(火)로 구운 뒤에 나무(木)나 쇠붙이(金)를 결합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오행의 다섯 가지 재료를 현대미술 조형의 재료로 담아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5. 화분처럼 생긴 원통형의 흑도 오브제에 두꺼운 철봉을 식물처럼 만들어세운 이 작품은 마치 흙 위에서 자라고 있는 쇠로 된 나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음양오행의 사고에 바탕을 둔 이 작품 토생금(土生金)은 문자 그대로 ‘흙이 쇠를 낳는다’는 상생(相生)을 의미한다. 작가는 점토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 나무 같은 다른 재료를 결합하여 작품을 제작한다.

전시장 바닥에 펼쳐진 131개의 부정형의 흑도 오브제 군집은 비슷비슷한 형태를 동어반복적으로 늘어놓아 강한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설치 작품이다. 커다란 조약돌, 검은 공룡의 알, 자루, 베개 등을 연상시키는 오브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크기와 형태, 빛깔에서 각각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 집단 속에서도 내밀한 표정으로 존재의 개성을 간직하고 있는 개체와 군집과의 관계를 상징하고 있다고 하겠다. 흙의 가소성을 이용한 조형, 흑도소성으로 빚은 빛깔, 그리고 현장설치라는 3요소가 결합된 작
품이다.

마치 고대의 토템 폴 혹은 신전의 열주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사각의 흙기둥 설치 작업은 곧게 뻗은 수직의 상승감과 단순한 형태의 반복이 주는강한 힘으로 인해 종교적이면서도 명상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5미터높이의 기둥 18개가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열 사이를 지나는 관객은 기둥에 발려진 흙의 원초적인 빛깔과 균열감을 통해 편안함과 더불어 인간의 원초적인 유희 충동을 느끼게 된다. 현대 문명에 의해 가리워지고 감추어진 흙의 모습을 바로 그 현대 문명의 상징인 빌딩처럼 솟은 흙 기둥의 숲에서 만나게 되는, 원시와 현대가 대비되면서도 공존하고 있는 작품이다.

<흙의 인상>과 더불어 전시장 한 면의 10미터에 가까운 높이의 전면 유리창을 점토로 바르는 작업은 연인원 100명과 3톤의 점토가 소요된 역사에 가까운 작업이었다. <흙의 인상>이 흙의 표면적 균열감을 제시하고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은 흙의 내부에서 바라보는 균열감을 느끼게 한다. 흙이갈라진 틈새로 파고 드는 빛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면서 흙의 인상을 바꾸어 간다. 대낮이 되면 마치 무성한 나뭇잎들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작은 빛들의 하모니를 연출하기도 하며, 흙 기둥과 함께 조성된 풍경은 마치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중세 성당의 성스러움과 명상적이면서도 관조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도예라는 장르를 뛰어 넘어 흙이 가진 표현력을 극대화시키면서 마침내는 흙과 불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도예의 영역을 흙과 빛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출처 : 플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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