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터사이드
2021년 12월 3일 ~ 2021년 12월 13일
유현오와 임재영은 얼굴을 촬영했다. 인간의 얼굴은 모호하고 낯선 사물로 다가온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유하도록 강요하는 사물, 이른바 우연히 맞닥뜨리는 기호에 해당하는데 기호란“무엇인가를 통해 다른 무엇을 나타낸 것”이다. 기호는 관조의 대상이 아니라 사유가 시작되도록 정신을 자극하는 대상이다. 구체적인 대상의 흔적을 여전히 간직한 이 기호는 어느 부부의 얼굴이고 남녀의 초상이자 난해한 존재들의 초상이다. 유현오는 50~60대 부부의 초상을, 그들이 구체적인 생활공간, 거주공간을 배경으로 담고 있다면 임재영은 젊은 남자와 여자 얼굴 혹은 상반신만을 흐릿하고 애매한 상태에서 보여준다. ‘꿈과 현실의 교차와 모호성’을 지닌 얼굴을 보여주고자 하는 이들은 재현의 도구인 사진을 이용해 한쪽은 그것의 극한적인 실재성을 다루되 언캐니하게, 다른 한쪽은 추상적이며 색채에 기운 표현으로 다루면서도 가시성 너머의 것을 건드려주는 선에서 다루고 있다는 인상이다.‘바닐라스카이’란 전시제목은 ‘노을이 붉게 물들기 전에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이나 하늘의 일부가 황금빛으로 물이 드는 시간대에 나타나는 하늘’을 지칭하는 동시에 꿈과 현실 사이 애매한 경계를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인간의 얼굴을 낯설게 다루거나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현실의 얼굴에서 출발해 그로부터 묘하게 피어오르는 기운을, 보이지 않는 차원의 것을 긁어내려는 듯하다. 부부를 대상으로 한 사진은 너무 강렬하고 진하게 다가오는 피사체의 형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흐릿하고 지워진 채 색채로 감싸여진 얼굴은 포착할 수 없는 존재의 경험이 자욱하게 퍼져있다.
얼굴은 자신의 외면과 내면 모두를 보여주는 경계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얼굴, 표면을 통해 그 이면을 떠올려보거나 상상한다. 시각적 대상이 아닌 얼굴 속은 얼굴 표면을 통해서만 유추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는 얼굴은 다분히 사회 속에서 조율, 관리되는 기호다. 그래서 들뢰즈는 얼굴과 머리/ 대가리를 구분한다. 그에 의하면 얼굴은 사회적 기호이고 머리는 생물학적인 자리다. 들뢰즈는 오로지 머리만이 진정한 주체(자신)에 속한다고 말하면서 얼굴이 사회와 부단히 연동된 것이라면 머리는 이와는 다른 차원에 속한다고 한다.“머리는 표상이 부재하는 기표인 탓에 타자에게 낯설고 심지어는 자신에게조차 낯설다.”는 것이다. 이처럼 머리는 한 개인의 무의식적인 욕망, 어둡고 눅눅한 침묵, 도저히 알 수 없는 사연과 내력, 상처와 아픔, 어떤 트라우마와 연관된다. 알다시피 트라우마란 그 이유를 알 수도, 치유할 수 도 없는 일종의 존재론적 상처를 지칭한다. 인간의 얼굴을 대상화한다는 것은, 본다는 것, 재현한다는 것, 사진적 대상으로 다룬다는 것은 트라우마를 지닌 얼굴, 머리와 대면하는 일일 것이다. 그 얼굴, 머리는 과연 재현될 수 있을까?
유현오는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어느 부부를 촬영했다.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것과 낯설고 어색한 것과의 끊임없는 조율과 타협의 다이내믹한 과정”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부부의 관계성을 다루고자 한다. 사람의 육체는 일종의 욕망하는 기관들이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여러 관계들을 조직하며, 그러한 관계들을 통해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구조들을 탐색하고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또 때로는 파괴한다. 부부관계 역시 하나의 육체가 자신의 욕망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회관계들 속으로 뻗어나가는 곳이며 또한 역으로 사회의 여러 가지 힘과 권력 그리고 이념과 상징들이 스며들어오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섭외한 중년의 부부는 그들 주거지인 특정 공간(실내와 자연)을 등지고 다소 부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들 시선은 일치하지 않고 어긋나있거나 화면 바깥으로 새어나간다. 둘은 손을 잡고 있거나 팔짱을 끼는가 하면 어색하게 무릎위로 두 팔을 올려놓고 있다. 일반적인 기념사진과 달리 이들은 가능한 표정을 배제하고 의자에 앉아 덤덤히 부부관계로 살아온 생의 이력을 자신들의 얼굴과 손으로 방사하고 있을 뿐이다. 정방형의 중형필름 카메라에 플래쉬를 사용하여 촬영한 관계로 사각형 틀 안에 버겁게 들어찬 이들의 몸과 광을 내는 얼굴과 손, 그리고 질감과 광택으로 빛나는 옷은 선명하고 강렬하게 꿈틀댄다. 반면에 배경은 까무룩 하게 어두워지며 뒤로 물러선다. 불현듯 우리 앞으로 튀어나오는 이 존재감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인상적이고 그만큼 강한 시각적 존재감을 안긴다. 그것은 현실계로부터 이 인간들을, 부부를 옴팡지게 도려낸다. 작가는 이들이 결혼, 가족이라는 성城 속에서 과연 행복한가를 질문한다. 사진 속에는 이들의 삶이 전개되는 장소가 흩어져있다. 그 공간 안에서 그들은 잠시 멈춰서있다. 부자연스럽고 경직된 포즈를 취한 이들은 카메라를 응시한다. 두 사람 중 하나는 렌즈를 피해 외면하고 있다. 둘은 여기까지 오랜 시간을 이 공간에서 함께 해왔지만, 결혼이란 제도를 유지해오면서 버텨왔지만 불가피하게 남녀의 차이에 따른 갈등과 좀처럼 메꿔지기 힘든 여러 틈을 만들어왔을 것이다. 그런 알 수 없는 관계의 상처나 갈등, 봉합의 흔적들이 이들의 얼굴과 손 그 어딘가에 박혀있을 것만 같다.
임재영은 흐릿하고 지워진 얼굴을 보여준다. 사진이 지닌 기계적 재현이라는 특성이 깔끔이 지워져 있다. 분명하고 견고하며 딱딱한, 명료한 가시성을 지닌 것들은 없다. 모든 것들은 모호하고 애매하다. 재현적인 사진이 아니라 다분히 비재현적, 탈재현적인 사진이 되었다. 여기서 시선은 부단히 방황하고 정처 없이 흐른다. 다만 몽환적이며 흔들리는 색채와 인물이 안개처럼 번진다. 모든 형태란 임의적이면,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며, 형태의 정확성이란 것도 시간에 따라서 드러나는 것이다. 채색 역시 여러 가지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며, 확고부동한 사실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빛과 그 반사광의 결과일 뿐이다. 사진 또한 결정론적이고 주체에 의해 주제가 주어진 그런 사진이 아니라 보는 이들에 의해 다채롭게 해석되고 다양한 시각에 의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열린 텍스트다. 이 사진은 결정적인 형태나 이미지를 제시하는 재현적인 사진이기 보다는 다만 흐릿하고 몽환적인 색채만이 가득한 사진이미지, 탈재현적인 사진으로 읽힌다. 보는 이들은 이 모호한 흔적을 단서 삼아 상상력을 동원해 감상할 것이다. 사진이란 그 자체로 완결되거나 결정된 것이 아니라 텍스트에 불과하다는 인식, 모호하고 중첩되며 복수의 텍스트라는 그 텍스트의 모호성, 복수성, 흐릿함 등을 모호한 윤곽선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작가는 “꿈의 세상에서 그에겐 얼굴이 없다. 그리고 꿈속엔 그녀가 있다. 그녀는 얼굴이 여러 개다. 그녀는 얼굴이 사라진 그를 사랑한다. 얼굴의 부재 너머로, 더 강렬하고 ,더 확실하게 그의 내면을 응시한다. 얼굴이 사라진 그 자리에 무엇이 있을까…나는 보는 이가 꿈의 그녀가 되어 얼굴이 사라진 이들을 바라봤으면 좋겠다…얼굴의 부재가 또 다른 눈을 뜨게 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임재영이 보여주는 인물은 거의 감지할 수 없이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마는 환영처럼 보인다. 베일에 쌓인 듯 정체모를 얼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명확한 형태를 갖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고 겹쳐있고 떨고 있을 뿐이다. 사라지려는 얼굴, 지워지는 얼굴, 꿈에서 본 듯한 얼굴이기도 하다. 얼굴을 잃는다는 것은 그 존재를 상실하는 것과 동일하다. 얼굴을 지운다는 것은 그것을 익명의 존재로, 무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다. 사라진 얼굴, 뭉개진 얼굴은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움을 안겨주고 그 얼굴은 인간의 것에서 배제된다. 우리는 저마다 타인이 자신이 얼굴을 고이 간직하기를 바랄 것이다. 망막과 가슴 안에 감추듯 보존하기를 열망할 것이다. 그러나 얼굴은 곧바로 휘발되어 버린다. 어느덧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이름은 물론 얼굴조차 희박해져갈 때 그 누군가의 존재는 내게 부재한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얼굴이 지워졌기에 오히려 우리는 다양한 상상과 상념 속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너무 선명하고 너무 강력한 표식이 없을 때 오히려 눈들은 자유롭게 비상한다. 사진 속의 흐린 얼굴은 자꾸 사라져 버릴 것만 같다. 어렴풋하거나 모호하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로 그와 유사한 수없이 많은 다양한 얼굴들을 떠올려주게 하는 매개나 통로가 되게 한다. 기계적으로 대응된 사진이 해내지 못하는 무한한 영역으로 보는 이의 시선과 마음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참여작가: 유현오, 임재영
기획: 이선민
글: 박영택
출처: 얼터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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