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드서울
2016년 4월 7일 ~ 2016년 4월 17일
‘글 쓰는 사진가’로 불리는 윤광준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는 생활 밀착형 예술인이다. 음악과 여행, 글과 사진을 병행하는 그는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소리의 황홀』 『윤광준의 생활명품』 『마이 웨이-윤광준의 명품 인생』 등의 대표 저서가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단연코 ‘사진’이다.
‘파버 카스텔’ 255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서울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팔레 드 서울’에서 열리는 전시는 1980~90년대를 견뎌낸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포장되지 않은 흙 길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 털모자에 양복을 걸친 사내가 신은 흰 고무신, 휑하니 뚫린 강남대로, 그리고 그 길을 달리는 자동차 포니 한 대……. 많은 사진가들이 기록이란 사명감으로 사건에 매달렸던 시대에 윤광준은 유독 ‘사람’을 다루었다. 작가는 그 시간 속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던 낡은 흑백필름을 꺼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의 기억을 되살린 이유는 하나. 시대를 비춘 거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불과 한 세대 전 사람들의 표정은 고단했으나 희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체념하기엔 할 일이 너무 많았던 시대, 가난했으나 서로를 돌아볼 여유는 외려 넘쳤던 시대, 산 자의 부끄러움이 절망으로 번졌던 시대, 힘을 모아 민주화를 이끌어낸 모두의 자부심이 영광으로 다가온 시대, 부끄러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는 보통사람들의 자화상들이 새삼 건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흑백 필름의 아련함을 디지털의 힘을 빌려 원래의 아우라로 복원시키고 싶었던 작가에 게 다행히 5천 만 화소를 자랑하는 최신 카메라가 있었다. 작가는 그 카메라로 손바닥
만 한 크기의 필름 사진을 재촬영 했다. 수 없는 반복적인 테스트를 거쳐 마음에 드는 사진 톤으로 최종 프린트까지 수개월의 시간을 전시에 바쳤다. 작고 낡은 필름사진은 흑백의 느낌을 오롯이 간직한 채 1200×1800, 1120×770의 크기로 전시장에 걸리게 되었다. 우리가 탄복해 마지않는 그의 세련된 안목은 반복의 연마로 얻어진 것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시간을 묻히지 않은 완성은 없다고. 과거를 기억하는 ‘스토리텔링’과 디지털의 새로운 방식을 결합시킨 윤광준의 사진은 ‘헬조선’으로 불리는 2016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넌지시 일러준다. 어제는 오늘이 되고 오늘은 내일을 여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4월 7일부터 17일까지
작가노트
바로 엊그제 같은 일들을 헤아려보면 까마득한 옛날의 한때였음을 알게 된다. 기억은 뒷걸음치고 시간만 앞으로 달아난다. 둘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것이다. 퇴행의 다른 징조마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멈춰서 뒤를 돌아다보아야 한다. 지나간 시간을 딛고 선 지금이 더 소중해진 탓이다.
1980~1990년대 대단할 것도 그렇다고 부끄러울 것도 없는 한 시대를 산 보통사람들의 모습은 당당했다. 굵은 덩어리로만 남았을 집단기억의 사건들은 하나 둘이 아니다. 군부독재를 밀어낸 시민들의 6•29 선언과 88 올림픽이 우선 떠오른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 보려는 위대한 백성들의 노력은 한 번도 멈춘 적 없다. 모두 청년 시절 벌어진 일들이다. 드러난 사실 속에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는 진실을 찾아보고 싶었다. 사진이 나의 몸짓이다. 기회와 희망, 불안과 혼동으로 엇갈린 세월을 사는 이 땅의 사람들에서 희망을 보았다. 시대의 주인공에게 보내는 애정은 당연하다.
당시 세상을 사진으로 몽땅 담아볼 기세로 살았다. 휴전선에서부터 마라도의 최남단까지 한반도 남쪽은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전국은 연일 새로운 변화의 대처와 반동의 사건들로 소란스러웠다. 사진 찍는 이들의 상당수가 시대의 기록이란 사명감으로 여기에 매달렸다. 나는 사건이 아닌 ‘사람’을 다루고 싶었다.
펼쳐진 삶의 모습은 켜켜이 쌓인 퇴적층마냥 두터웠다. 이들과 만나고 사진 찍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자 경계가 풀렸다. 낯선 이를 친숙함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이번에 전시된 사진들이다. 이야기가 없는 삶이란 공허하다. 때론삶의 모습에 나의 감상을 더해 이야기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사진 또한 삶의 보편
성에 뿌리를 둔 이야기란 속내의 접근이다.
불과 3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은 현재와 화합하고 불화한다. 생긴 모습과 표정이야 다를 게 없다. 입고 있는 옷과 주변 배경이 달라졌음을 주의하기 바란다. 언젠가 보았을 친숙한 장소와 사람들은 낯선 나라의 풍경처럼 다가온다. 시시콜콜한 흔적들마저 시간이 의미의 조각들로 바꾸어버린 마법이다.
포장되지 않은 흙길엔 한복을 입은 사람들마저 등장한다. 북한 무장공비의 복장과 혼동되는 우체부의 제복은 또 어떤가. 털모자에 양복을 걸친 사내는 흰 고무신을 신었다. 혼잡하기로 악명 높은 강남대로 주변은 휑하니 뚫렸다. 건물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 큰 길엔 포니 자동차 한 대만 달린다. 과거 생활방식의 관성이 유지되고 채 들어서지 못한 도시 기반의 흔적들이다.
시대를 함께 살았으니 당연히 알고 보았다고 믿었다. 기억은 불충분했다. 당시 사진의 또렷한 디테일로 대조해본 희미한 기억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스쳐 지나가 버린 삼십 년 전의 모습을 끄집어낸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실재했던 기억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과거와 벌어진 일들은 현재의 관심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지난 시간은 죽었지만 읽어낼 사람은 끊임없이 태어나지 않던가. 낡은 이야기와 사진이 채 말하지 못한 내용들이 있을지 모른다. 모든 텍스트가 다시 읽혀져야 할 이유가 있는 것처럼. 어제는 오늘이되고 오늘은 내일을 연다.
출처 - 갤러리팔레드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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