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동사진미술관
2017년 5월 3일 ~ 2017년 5월 14일
무엇을 벼려 낸다거나 조각을 한다는 것은 예술 행위거나 주술적인 혹은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 동굴의 벽화나 부조, 조각상들은 아주 한가했거나 손재주가 많거나 자연(신)에 대한 경외심이나 복을 비는 염원에서 시작한 것들이다. 그 중 어떤 것들은 숭고한 아름다움의 자태가 수려해서ㅡ석굴암의 불상 등- 뛰어난 예술 작품 이상의 감동을 준다.
그런데 여기 윤길중이 대상으로 삼은 석인은 사대부의 묘지 앞에 세워 둔 석상을 촬영한 것이다. 이것들은 무인(武人)을 표현한 무인석과 문관(文官)을 상징하는 문인석으로 처음엔 왕릉의 수호물로서 중국 진나라 때 시작하여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그 모습을 나타낸다.
그런데 윤길중은 남아 있는 석상 중에서 고려 말이나 초선초기의 중국영향을 받은 정형화된 석상보다는 실제 사람의 모습을 닮고 있는 석인에게 많은 흥미를 느끼고 그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이 석상들은 그 주인의 계급이나 권력, 재산 등의 형태에 따라 차이가 있는가 하면 만들어진 시기에 다라서 다양한 형태를 이룬다.
시대가 바라는 세태에 따라 노인의 모습에서 청년의 모습으로, 복두공복(幞頭公服)에서 금관조복(金冠朝服)으로, 화려한 장식에서 실제 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바뀐다. 이들은 왕가나 사대부의 묘지가 많은 경기도지역이 대부분이었으나 중부지역과 영 호남지역에서도 발견되었다. 700여 곳의 묘지에서 1500점 정도의 석상을 촬영했으며 이것들의 얼굴을 모아 퍼즐을 맟추는 형식으로 천인상(千印像)의 석상을 한데 묶어 신비한 얼굴의 도표를 만들기도 했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500년 전의 사대부 묘지 앞에 세워진 석상에 관심이 없으며 아예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석인은 조선시대 권력층에서 이루어왔던 묘지 형식의 한 단면이 아니라 한 시대의 거시적인 문화며 생활의 단층으로 역사적 증거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어떤 세도가였다 할지라도) 한 묘지를 지키는 단순한 석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시대가 바라는 얼굴(형상)은 어떤 것이며 오늘에 이르기 까지 풍상을 겪으며 남아 있는 석인의 모습은 이제 그들 묘지의 주인을 위한 장식이 아니라 석상 바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석인은 어떤 염원의 도구가 아니라 표상 그 자체의 의미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금관조복을 한 사대부의 근엄한 모습, 주인을 결사적으로 지키겠다는 호위무사의 모습, 사람 좋은 선승의 모습, 꽃을 들고 심부름을 가는 동승의 모습으로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세월을 이겨온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존재의 이유가 되고 있으며 우리 선조들의 격식과 품위와 해학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윤길중은 전통 한지가 가지고 있는 포근하고 품격 있는 재질을 대상에 안착시킴으로서 또 다른 사진의 완성미를 보여준다. / 서학동사진관 김지연
작가와의 대화 5월6일 4시
출처 : 서학동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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