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디에이
2022년 4월 15일 ~ 2022년 5월 21일
«LEAVE, LEFT»는 사라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1999년, 세상이 ‘세기말 종말론’으로 들썩이던 그때 작가는 처음으로 ‘멸종’이라는 단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세간의 걱정과 기대와는 다르게 인류는 아무렇지 않게 2000년을 맞이했고, 이후 멸종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고수하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 작가의 세계도 사람과 사건, 그리고 감정과 생각이라는 무수한 점들로 채워지며 하루하루 팽창했고, 한껏 부풀어 거대해진 자신의 세계가 어느새 임계점을 향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보살필 겨를도 없이 더하고 채우기 바빴던 청춘의 끝자락에서 비로소 들춰본 내면의 민낯은 함부로 입어 헤지고 낡아버린 옷자락처럼 작은 바람에도 힘없이 울었다. 세상과는 별개로 혼자만 점점 사라져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작가는 미디어 속의 동물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하나같이 사랑스러웠다. 서로를 위하고 보호하는 모습은 마치 부모의 품에서 느낄 법한 안온함을 경험하게 했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위로이자 치유였다. 하지만 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인류의 이기심이 채워지는 만큼 그들의 터전은 비워지고 있었다. 비단 동물뿐 아니라, 현재 우리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다. ‘세기말 종말론’ 이후 약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멸종’이라는 프레임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우리 곁을 지켜주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받은 위로와 치유는 사라지지 않은 정도로 짙게 남아있다. «LEAVE, LEFT»는 사라지는 것들로부터 남겨진 것에 관한 이야기다.
주로 크고 작은 점과 선을 더하며 색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작업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겹겹이 쌓아 올린 색들을 긁어낸 스크래치 방식의 작품을 선보인다. 작품의 소재 또한 작가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인물이나 상황을 묘사하던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 점점 사라져가는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활용하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는 단순히 소재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그간 작가가 선보였던 작품관의 환기를 의미한다. 또한, 겹겹이 쌓아 올린 물감을 긁어내는 과정은 오랜 세월 견고하게 다져진 아름다운 자연이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모습과 닮았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물감들이 날카로운 나이프에 의해 깎이고 파이며 떨어져 나갔지만, 화폭을 채운 동물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아무리 긁어도 형태는 남는다. 그것은 삶의 흔적과 다름없다.
참여작가: 윤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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