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룸8
2026년 10월 1일 ~ 2026년 10월 17일
미지의 세계로*
* 글 제목은 윤영호 작가의 작품 〈미지의 세계로〉에서 차용하였다
박정원 페이지룸8 디렉터
윤영호 작가는 현실과 맞닿은 채 작동하는 무의식 속 미지의 세계를 회화로 표현한다. 작가는 미지의 세계를 “푸른 숲”으로 명명하며 현실과 이상, 실체와 환영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교차하는 경계 지점에서 느끼는 감각을 이미지로 구현한다.
2013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2016년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윤영호 작가는 초기작에서 내면의 감정과 에너지를 추상적으로 표출하는 미술적 방법에 집중했다. 그러나 2020년경부터 작가가 고전 문학과 철학, 클래식 음악 등에서 받아들인 공감각적 소재들이 그의 화면을 구상으로 이끌었다. 이를테면 밤의속성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쇼팽의 ‘녹턴(Nocturne)’은 윤영호 작가의 밤 풍경으로 재해석되었다. 이것이 그의 첫 구상 작업에 해당한다. 이후 윤영호 작가는 대기와 자연 그리고 천체 등 누구나 보고 있지만 인간적인 감정과 불안으로 인해 자각하기 어려운, 순수한 감각의 기원을 찾아 나선다.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 17점을 제작 순서대로 살펴보면 작가가 가고자 했던 방향을 함께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의 서사에서 작가 개인의 작품 세계가 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와 반대로 윤영호 작가는 6년 전 추상에서 구상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그 배경에는 ‘녹턴’이라는 곡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태원과 해방촌 등 실재하는 서울의 장소들이 밤의 시간과 맞물리면서, 음악으로부터 파생된 공감각이 형상을 얻을 수 있었다. 형상의 유무로 구상과 추상을 나누고 작업의 변곡점을 구분할 수 있지만, 사실 작가의 최근작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색채 대비와 서정적인 감수성은 초기 추상 회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실체 없이 부유하던 감각이 형체를 지닌 대상에 투영되면서, 마침내 우리가 볼 수 있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작가가 이번 전시의 모티프로 삼은 단테의 『신곡』이 지옥과 연옥, 천국의 경계를 넘어서며 인간적 갈등 끝에 진정한 자신을 찾는 서사로 엮여 있는 것과 같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환경이 바뀌면서 작업의 주제 의식이 짙어지고 소재가 뚜렷해짐에 따라 제작 기법 역시 전환기를 맞았다. 그 시간을 거치며 캔버스에 묵묵히 그려 나간 형상이 켜켜이 쌓여 층위가 생긴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고 여러 세기를 건너온 단테의 여정에 함께한다.
그 여정은 1년여간 그린 ‘방랑자의 시선’ 연작을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수면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1인칭 시점으로 그려지고, 어스름한 새벽이나 밤으로 보이는 푸른 풍경 속에 연달아 등장한다. 반면 시점이 전환되면서 자의식을 지닌 〈나무의 시선〉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후 ‘방랑자의 시선’은 수평선으로 나뉘는 실제 풍경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수채화 〈보팅 호수〉로 이어진다. 마치 꿈에서 깨어나거나 공상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감정은 〈푸른 숲에 머물다〉에 잠시 깃든다. 잔잔한 밤 풍경 오른쪽 한켠에 사람의 실루엣이 자리해 있어, 부재한 실체와 여전히 남은 기억이 공존한다. 작품의 제목처럼 작가가 그 풍경 속에 한동안 머물며 마주했을 잔상을 상상해 본다. 그 머문 시간은 시공을 초월해 환영과 실체가 경계 없이 오가는 중에도 끝내 남는 것을 향해 멈춰 선, 『신곡』의 연옥과 같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미끄러지듯 제자리로 돌아오면, 그곳에 증표처럼 이미지가 남는다.
이러한 여정 끝에 작가의 화면에 자리한 푸른 숲은 불타거나 어둠에 휩싸인 채, 몸을 던져 건널 수 있는 저 너머의 공간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작가가 그 안에 작고 반짝이는 알레고리이자 메시지를 미술적 방법으로 다듬어 남길수록 푸른 숲은 점점 생생해진다. “우리는 푸른 숲을 향해 나아간다”라는 문구에서 전해지는 긍정적인 방향성은 이미지 자체에서도 비롯될 뿐 아니라 작가가 구현하는 표면 질감과 색채 그리고 화면 구성에서도 나온다.
한편 〈메멘토모리〉와 〈미래를 내다보는 유리구슬〉은 단테의 『신곡』 서사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작품과 작품 사이를 잇는 내러티브에 쉼표를 찍어 전시의 흐름을 잠시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두 개의 달과 폭포〉는 캔버스 두 개를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세상으로 상정해 결합한 작품이다. 천국의 첫 번째 하늘이 달의 하늘이라는 『신곡』의 모티프를, 두 개의 하늘에 뜬 달로 변주하고, 이를 두 세계를 잇는 폭포와 강의 물길로 풀어낸다. 이때 두 세계는 각각 천국과 연옥을 상징한다. 푸른 주조색은 작품마다 채도를 달리하지만, 하늘과 물 그리고 배경 등에 사용되면서 개별 작품들이 ‘푸른 숲’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한다.
작가는 유화 물감과 아크릴 물감, 먹, 페이스트 등을 활용해 표면의 질감과 색채를 만들고, 상상 속 풍경의 시간대와 그림자를 구현한다. 이러한 표면 처리 방식은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배가한다. 〈불타는 숲을 바라보는 남녀〉에서 불과 대비되는 하얀 두 줄기 폭포, 〈푸른 숲을 뛰어 가는 남녀〉에서 펄감을 더해 표현한 초승달의 미세하고 은은한 빛, 마침내 열린 듯 탁 트인 하늘과 굴곡진 대지가 대비되는 〈미지의 세계〉의 요철과 노이즈가 그 예이다.
『신곡』의 지옥편 첫 장면은 단테가 인생의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반면 연옥편에서 지상 낙원의 신성한 숲은 울창하고 푸르며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고, 어두운 숲과 대비된다. 푸른 숲이 이렇게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상징이기에, 윤영호 작가의 푸른 숲은 유토피아이기보다는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 즉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현실과 다른 질서로 작동하는 공간에 가깝다.
어둠과 빛이 혼재하는 〈녹턴〉은 마치 폭풍전야처럼 작가의 푸른 숲에 대한 서막을 알리는 것과 다름없다. 단테의 『신곡』을 통해 윤영호 작가는 예술에 대한 신념과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균형감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넌지시 내비친다. 작가가 제안하는 ‘푸른 숲’은 길을 잃은 방랑자의 숲이자 안내자 베르길리우스의 숲이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이를 위한 숲이다.
참여 작가: 윤영호
주최 및 주관: 페이지룸8
글: 박정원
디자인: 오렌지슬라이스타입
사진: 양이언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K-Art 청년창작자지원사업
출처: 페이지룸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8:00
수요일 11:00 - 18:00
목요일 11:00 - 18:00
금요일 11:00 - 18:00
토요일 11:00 - 18:00
일요일 13:00 - 18:00
휴관: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