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피앤킴
2023년 9월 5일 ~ 2023년 10월 14일
지난해 겨울, 작가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후 국립의료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40일간의 투병생활 동안에 그는 끊임없는 예술 혼을 불태우며 약 500여 점이 넘는 작업을 남겼다. 입원 중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병원의 환자용 수저 종이봉투, 구내매점에서 구입한 과자상자, 테이크아웃 종이컵 캐리어, 메모지 등 일상 재료들을 캔버스 삼아 자유분방한 드로잉을 그려냈다. 스프링 노트와 드로잉 북에 빼곡히 그린 드로잉들 틈에 병상에서 느낀 작가의 소회도 종종 살펴볼 수 있다. “아직도 그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손을 풀기 위해 그리지 않으면 퇴보하니까 그릴뿐이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순간에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느껴지는 한편, 예술을 향한 불굴의 창작욕구와 상상력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 이후 드로잉 작업에 더 몰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팬데믹이 시작되던 2020년 3월 27일을 기점으로 산책 중 틈틈이 그렸던 드로잉부터 병상 중 습관처럼 그렸던 드로잉까지 약 2만 점에 달하는 작업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해왔다.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드로잉 작업들을 감상하는 재미를 느껴보길 바란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40일간의 병상 중 그려온 창의적인 드로잉 작업들을 선보인다. 또한 전시 오프닝인 2023년 9월 5일에는 작가가 입원 중 비몽사몽 간 꿈속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 체 게바라와 함께하는 퍼포먼스가 준비되어 있다. 언어와 구술, 이미지의 상관관계를 엿볼 수 있는 신체를 이용한 퍼포먼스로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전위적인 아티스트
작가는 사춘기 중학생 시절 이상(李箱) 김해경(1910-1937)의 문학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전위예술을 접했다. 1977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3학년 재학생이었던 그는 당시 ‘이벤트’를 이끈 ‘S.T그룹’에 참가하게 되면서 본격적인 미술활동을 시작하며 전위예술에 눈을 뜬다. 1980년대 행위미술계의 주요 작가로 활동한 그는 한국 행위예술의 개념과 이론을 구축한 실천 기수로 한국미술사에 족적을 남긴다. 그는 1990년에 ‘로즈 셀라비여, 왜 재채기를 하는가’라는 글로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비평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비평가이자 기획가로 활발한 활동을 이온 그는 2009년에 페이스북 계정을 열고 여러 가지 예명을 가진 작가로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소위 부캐가 트렌드가 될 것을 예측했던 마냥 그의 예명은 왕치, Pajama Jun, Han Q, SoSo, RT 등 100여 개에 달한다. 2009년부터 시작된 수많은 예명을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는 현재도 끊임없이 부캐를 생성하며 정체성 탐구에 열중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자아 정체성의 확장이야말로 과연 전위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크리큐라키스트(*윤진섭이 직접 만든 단어로 critic비평가, curator기획자, artist예술가를 조합한 말이다.)로 명명한 그는 7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가로서 교육가로서 전시기획자로서 비평가로서 총체적인 삶을 살아왔다. 작가의 삶 자체가 비평가, 작가, 기획자 등 여러 분신들이 혼재되어 있으므로 창의적이고 재기 발랄한 발상이 곳곳에 침투되어 행동으로 표출된다. 그는 자신의 이런 행위에는 전복적인 사고가 똬리를 틀고 있다고 말하며, 기성의 틀에 박힌 제도나 관습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 평상시 작가의 사유를 점유하고 있어 어떤 사안을 만날 때 이는 곧바로 행동에 옮겨진다고 말한다. 전방위적인 예술 태도가 그의 삶과 예술세계 전반에 걸쳐 깊숙이 스며들어 내재화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혼자 놀기와 전위(Avant-garde)
2010년 11월 22일, 작가는 지하철 구로역에서 내려 문래예술공장으로 걸어가던 중 보도 옆 화단에서 발견한 이름 없는 삽자루에 부러진 삽(Broken Shop)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는 문래예술공장에 도착 후 작가들에게 부러진 삽(Broken Shop)에 사인을 부탁하거나 포즈를 취하여 사진으로 남겼다. 그는 페이스북에 [Broken Shop]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온라인상 친구들을 모았으며, 이후에도 부러진 삽(Broken Shop)의 신부인 삽날을 주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이렇듯 작가는 주위에서 흔히 지나칠 수 있는 물건들을 줍거나 얻어 작품의 소재로 삼는다.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폐품은 창의적인 작품으로 재탄생되거나 유희적인 퍼포먼스의 소재로 활용된다. “사물의 진리는 폐물에서 가장 잘 읽혀진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처럼, 버려진 사물은 내게 늘 말을 건넨다고 작가는 말한다.
1970-80년대 작가의 이벤트는 ‘몸’을 활용한 관객 참여적이고 언어유희적인 놀이적인 성격의 퍼포먼스로 평가받는다. 그는 어린아이의 눈과 마음으로 호기심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일상의 재료와 결합해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작가의 일상은 순간순간이 작업의 연속이다. 매일 먹는 아침 상차림을 사진으로 남기고, 전시장을 가던 중 주운 풍선으로 우스꽝스러운 셀카를 남긴다. 병상 중에도 그저 휴지통에 버려질 수 있는 주변의 일회용 소품들이 그에게는 반짝이는 예술 작업의 재료가 된다.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그의 드로잉은 작가의 몸짓이자 예술을 향한 끊임없는 열망의 표출이기도 하다.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그는 예술이 곧 삶이자 삶이 곧 예술인 일관된 태도를 보이며 예술의 즐거움을 몸소 실천하는 작가다.
참여작가: 윤진섭
출처: 갤러리피앤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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