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25년 6월 27일 ~ 2025년 7월 27일
아마도예술공간에서는 6월 27일(금)부터 7월 27일(일)까지 권은비, 김덕희, 안성석, 오로민경, 오민수, 이수진이 참여하는 기획전 《의존하는, 의존하지 않는》을 진행한다. 이 전시는 자본주의의 운동 원리 중 협업과 분업을 주제로 한 것으로, 전시는 조각의 물질과 형태의 확장으로서 빛, 열, 소리, 움직임 등을 조형 방법으로 삼는다. 특히 전시는 조형과 설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기술이나 동력을 매개로 하여 자본주의적인 협업과 분업이 가진 모순을 포착한다.
주제: 자본주의적 협업과 분업
인간은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이상, 사회와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왔다. 그러므로 인류가 무리를 이룬 이래로 서로가 의존적인 관계가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지금도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이루며 살아간다. 크든 작든 협업과 분업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업이나 분업이 특수한 생산양식의 하나로 규모화되고 만연화된 것은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다. 고대나 전근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대규모로 모이는 일은 예외적이었고, 분업이 있더라도 지금처럼 인간이 부분화되지도 총체성을 잃지도 않았다.
자본주의가 되면 우선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바뀌게 된다. 자본 축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공장, 철도, 항만, 도로 등 대규모 사업이 일어나면서 협업이 일상화되고, 대공장과 작업장에 모인 사람들의 일이 세분화되면서 분업이 가속화된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일한다는 점에서 시설이나 원료 등 노동수단과 노동대상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에게도 적용된다는 점이 문제적인데, 활동 범위에 훨씬 미달하는 작업 공간,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시설 등 이윤을 위해서 인간이 절약되는 것이다. 또한 대공업의 기계의 협업과 분업 아래 노동자 자체가 부품화되고, 여성과 아동 노동까지도 이윤을 짜내는 도구가 되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은 기계에 의해서 작업장으로부터 점차 축출되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사고와 죽음은 다반사로 일어났다. 오늘날 3차 산업혁명,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보통신 기술 발전과 새로운 기술 적용을 낙관하나 노동자들의 모습은 결코 과거와 단절되지 못한다.
노동자들이 모여 일하는 협업과, 그 노동의 집합 안에서 부분이 되는 모든 분업은 노동자들이 연합한 결과다. 그러나 자본주의 아래 이 모든 협업과 분업은 자본이 없다면 시작되지 못할 불가능한 것으로, 결국 모든 노동은 자본의 능력으로 현상한다. 이때 자본의 운동이 주체이므로 인간의 객체화, 사물화는 필연이다. 그러므로 산업 현장에서의 해고, 사고, 죽음 등은 자본의 관점에서는 결코 문제 되지 않는다. 자본에게는 노동자들의 어떤 상태나 상황도 잉여가치(이윤)를 얻는 수단이자 자본 축적의 계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자율적이며 자발적으로 모이고 분할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위적이며 강제적인 방식으로, 무정부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소집되고 해체되며, 개인의 희생이야말로 발전의 근거가 된다.
이처럼 인간의 위상이 거꾸로 선 세계에서는, 개인들 또한 우호적으로 관계 맺지 못하고 서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남이 아니라면 내가 해고되어야 하고 내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 남이 있고, 같이 일한다 해도 정규와 비정규 등으로 서로는 서로를 갈라친다. 자본의 경쟁이 인간 또한
경쟁으로 내모는 것이다. 각자는 타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뿐더러 알려 들지 않고, 직업의 귀천이 없다면서도 돈을 많이 버는 일은 대우한다. 또한 농업, 공업, 상업 등 각각 산업 분야는 대립적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각 산업 내부에서도 제각기 다른 생산물을 생산하기에 본질적으로 대립이 있다. 그러나 사회를 고립된 면면이 아닌 전체로 본다면, 사회가 배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없다. 또 생산 활동에서도 사람들은 자기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도 서로는 서로에게 의존하고 기대어 있다. 물론 그것이 자본의 운동으로 현상하지만.
인간이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필연이다. 자본주의가 인간들의 총체적인 관계를 투명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체제라 하더라도 인간은 고립된 생산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생산력의 올바른 사용과 발전을 위해 인간이 인간의 개념을 가지는 일은 중요하다. 지금의 체제가 인간의 우호적인 관계들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가를 반성해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형: 내재된 것과 외화된 것
주제에 접근하기 위한 각 작품들의 소재는 다채롭게 드러나지만, 사회적인 협업과 분업이라는 상(想)에 기대어 자본주의의 모순을 형상화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작가들은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관찰하고, 자본주의가 가진 폭력성이나 부조리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산재 사고 노동자들에 대한 애도 방식을 고민하고,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고 연대의 순간을 희망하며, 자본주의적 시간과는 다른 인간적인 교환에 대해 상상하는 등 자본의 운동 아래 놓여 있는 세계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을 응시한다.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사물과 조각이 운동하는 감각으로 치환한 이수진은 온실과 옥외 공간에 보이지 않는 시공간의 교류를 만들어 낸다. 작가는 자연과 도시, 비물질과 기술, 비인간과 인간 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다매체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번에도 자신의 방법론을 적용하되 전시의 주제와 조우를 시도한다. 작가는 수공업장, 대공장, 현대의 첨단공장 내부의 시설, 기계, 도구가 돌아가는 소리에 노동자들의 반복된 노동 또한 포함되어 있음을 포착하고, 작업장 내의 집기나 부품에서 순환하는 구조도 발견한다. 이러한 요소를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물과 기계음, 시공간의 경계를 흩어뜨리는 색감, 기하학적 조형물을 제작해 견고한 시스템에 내재해 있지만 드러나지 않았던 순환과 흐름을 공간화한다.
안성석과 김덕희는 자본주의의 불합리성뿐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직면하고자 하는 의지, 연대의 순간을 희망하는 조형을 제시한다. 안성석은 자신의 주변인뿐만 아니라 사회적 참사와 같은 문제에 온정의 시선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폭력이나 불합리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을 잘리거나 훼손되고 버려지는 신체로 표현해 온 바 있다. 〈세계의 균형〉은 후자의 문제의식과 이어지는 것으로, 이 영상에서도 뭉쳐지고 흩어지는 몸들은 구조의 부분으로, 여기서 개인의 고유성은 소멸한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반응은 〈바깥으로 나가서 확인해 봐야겠어요〉를 통해 작가의 태도로 표명된다.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직접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는 움직이는 서치라이트 빛에 투영되는데, 이는 카메라의 눈을 빌려 자기와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기록해왔던 작가적인 태도와도 연결된다.
김덕희의 〈레퀴엠〉, 〈캐논〉은 두 공간에 표현된 서로 다른 조형으로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나타낸다. 작가는 철이나 시멘트와 같은 재료로 만든 조각이 열을 품도록 설계하여 공간에서 열의 흐름을 감각하도록 하거나 증류수가 기화하는 순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작업 등 열에 관한 작업을 다수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파라핀 왁스와 석고 캐스팅을 통해 인간의 죽음이나 고통, 슬픔과 같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에서 파라핀 왁스 기둥이 선형적이며 예측가능한 세계를 해체하려는 하나의 방법론이었다면, 〈레퀴엠〉은 자본주의의 파괴성을 드러내는 조형이다. 작품의 검은 기둥은 열에 의해 서서히 내려 앉으며 내부를 드러내는 구조를 품고 있다. 수직적이며 점차 무너져 갈 〈레퀴엠〉과는 대조적으로, 〈캐논〉에서는 바닥에 낮게 깔린 파라핀 왁스에 손조각이 여리게 묻혀있어 다가올 온기들을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넌지시 드러낸다.
산재 사고 노동자에 대한 애도는 권은비와 오민수의 작품으로 나타난다. 자본, 국가, 재난, 식민, 여성, 생태 등 현실 문제에 관심을 두고 다매체로 작업해오던 권은비는 최근 조각적인 설치와 서사적인 사운드로 노동자를 위한 애도로서의 기념비를 제작했다. 이번 〈새로운 천사의 알레고리〉는 조각과 움직임, 빛과 어둠, 실재와 환영이라는 조형적인 요소만으로도 아름답지만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형상화한다. 오민수의 조형에서 주로 나타나는 기계 장치는 노동자들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 있는 기계로부터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품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에 의한 것이다. 작가에게 산업 현장의 전기, 기계, 소음 등은 단순한 재료를 넘어서 노동자의 상태와 상황을 표현해주는 재료였다. 최근에는 강한 물성을 넘어 천을 재료적 소재로 실험하는 중으로 〈손가락들〉도 이런 작업의 일환이다. 천은 노동자의 신체 일부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약한 재료이지만 감싸 안음과 마주침의 감각을 불러내는 기제로 작용한다. 전시 공간 1, 2층에 나뉘어 설치된 〈손가락들〉은 각기 다른 시간에만 작동함으로써 사라진 존재의 현존과 부재를 암시한다.
자본주의의 속도와 운동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사유는 오로민경의 작업으로 나타난다. 작가 작업의 작고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조형의 근거들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 특히 사회의 낮은 곳, 아픔이 있는 곳 등 힘든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하고자 하는 작가적 태도와 연결되어 있다. 〈선물, 선물 시간 가게〉는 사회의 아픔과 접촉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과 기록으로부터 시작한 것이지만, 작가는 여러 이야기로부터 자신이 품고 있던 마음을 연결된 조형으로 표현한다. 작업에서의 글, 작은 불빛, 소리, 진동, 오르골, 모빌 등의 부분들은 서로를 일으키고 촉발시키는 내재적인 힘이자, 현실에서도 그런 힘들이 생성되기를 희망하며 연대의 모습을 예시한다.
작가들은 자신에게 내재해 있던 조형 언어를 토대로 자본주의의 개념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의 방식으로 현실의 모순을 응시하고, 현실의 여러 요소를 쪼개고 해체하는 동시에 흩어지고 떨어진 것들의 연결성을 만들어내는 등 반성하는 조형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간취한다. 또한 작품들은 각자의 형상으로, 서로 관여하는 모습을 드러내기에 전시의 주제와 조형의 연결이 자의가 아니라 필연임을 드러내 보인다.
기획: 신양희
참여 작가: 권은비, 김덕희, 안성석, 오로민경, 오민수, 이수진
디자인: 마카다미아 오
후원: 서울문화재단 (2025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프로젝트)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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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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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 월요일,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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