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파도
2022년 12월 28일 ~ 2023년 1월 10일
풍경의 꺼풀을 한 겹씩 걷어내면
추운 겨울이 되어 지난 여름날의 산책을 되돌아본다. 차가워진 공기 탓에 무더웠던 날의 감각을 떠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다. 여름에 시작하여 가을에 끝나기까지, 이경민과 임성희는 한 달에 한 번의 산책을 함께했다. 이번 전시에서 두 사람은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의 경험을 그린 그림이 서로 교차하는 방식을 실험한다. 몸 어딘가에 남아있는 계절의 감각을 끄집어내어 각자가 회화를 다루는 방식으로 지난 산책을 돌이켜본다.
두 작가는 몸으로 받아들인 풍경을 그린다. 걸으며 마주하는 빛과 색의 미세한 진동은 눈보다는 몸으로 발견되는 법이다. 둘은 관찰자의 위치에 있기보다는 ‘나’와 풍경 사이 경계가 흐려지는, 눈으로 잡아둘 수 없는 몸의 감각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후덥지근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목욕하는 참새의 날갯짓, 푸른 하늘과 초록 나무의 대비되는 색에서 움직임을 살핀다. 그리고 몸으로 읽어낸 그날의 풍경에서 몇 가지 것들만 남긴다. 마치 여러 장의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장면을 만드는 셀 애니메이션의 투명한 필름을 하나씩 분리하듯, 작가의 몸을 거친 풍경은 한 겹씩 그 층을 걷어낸다.
둘은 이렇게 걷어낸 층을 가지고 몸으로 느꼈던 풍경의 부피감을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여기서 말하는 부피감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숨겨져 있는 두께를 가진다. 투명한 층에 그려진 선들이 그림 위로 한 겹 한 겹 쌓이는 것을 상상해본다. 두 작가는 또렷한 선을 하나씩 올려 몸의 기억을 복귀시킨다. 이렇듯 풍경에서 추출된 잔상은 다시 작가의 몸에 의해 눈에서 손으로 캔버스 위에 옮겨져 조합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부분에는 산책하다 나눈 대화가 묻어있기도, 흔들리는 나뭇잎의 움직임과 바람의 방향이 캔버스 위에 조각조각 남아있을 것이다. 이렇게 풍경의 꺼풀 너머에 보이지 않던 감각이 캔버스에 얹어진다.
특히 두 작가의 작업에는 풍경에서 느낀 서로 다른 속도의 시간이 두텁게 올라간다.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 작업과 다른 형식을 사용해 시간을 표현한다. 이경민은 과거 < 매일의 꽃 >(2021)과 < 구름의 경계 >(2020~)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듯이, 축적된 매일의 시간을 이어 긴 시간의 흐름을 만든다. 작은 움직임에서 선을 하나씩 떠내어 그림에 붙여 올리는 방식은 지속되는 일상의 시간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한지에 그린 여러 장의 그림을 캔버스 위에 배접하는 방식을 취해 겹겹이 쌓이는 시간을 보여준다. 반면 임성희는 한 손으로 낚아채는 빠른 순간의 시간을 남긴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점멸하는 모습을 포착하듯 캔버스 위에 남긴 반짝이는 도상은 찰나의 움직임을 잡기 위한 노력처럼 보인다. 하나의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눈을 옮길 때 발생하는 속도감을 중요하게 여겨온 그는 이번 작업에서 캔버스 안에 분할된 풍경을 중첩시켜 그 안에서의 속도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두 작가 모두 고정된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풍경에서 점차 다른 풍경으로 옮아가는 시간을 각자의 속도로 이어간다.
몸으로 느낀 풍경을 회화로 옮길 때, 이경민과 임성희는 평면의 캔버스에 투명한 부피를 얹어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분명 산책하며 나누었던 그날의 대화와 감정도 그들의 그림 안에 보이지 않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차츰 따뜻해지는 날이 오면 두 작가가 이 전시의 풍경을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보게 될지 궁금해진다.
참여작가: 이경민, 임성희
서문: 김재연
디자인: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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