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가변크기
2019년 6월 13일 ~ 2019년 6월 28일
이고운의 첫 개인전인 <OO.OO>는 회화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함축한 제목이다. 알파벳 O, 숫자 0, 한글 ㅇ의 형태 사이에서 표류하는 이 제목의 의미는 특정한 상태로 고정되어 읽히기를 거부한다. 이는 회화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도 유사한다. 0이라는 숫자가 음과 양의 체계 가운데에서 어떠한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작가의 회화 또한 구상과 추상 사이를 유영한다.
작가는 그동안 물감을 쌓아올리고 색과 형태를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왔으며 이 고민은 풍경을 소재로 하였을 때 극대화되었다. 풍경은 저마다 개성을 지닌 풀, 꽃, 나무, 돌 등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구상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이를 인식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추상화 되기도 한다. 이러한 진자운동은 풍경이 시간, 상황, 인식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구조를 지니기 때문이다. 즉, 풍경이 한 주체가 인지하는 시공간의 단면이라고 할 때 풍경은 고정불변의 틀에서 벗어난다.
풍경의 속성은 작가가 생각하는 회화와도 상통한다. 회화는 물감과 붓이라는 물질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구성되나 물감의 농도, 혼합, 갈라짐, 확산 등에 따라 변수와 불확실성을 그 안에 지닌다. 작가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 이 불확실성을 들여다보는 것이 자신의 작업이라고 언급하면서 그 긴장감을 즐긴다고 고백한 바가 있다.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두터운 물감이 겹쳐지면서 작품은 물질성을 구축한다. 그러나 동시에 마르는 시간, 대기의 온도와 습도, 작가의 순간적인 인식과 판단에 따라서 결과물은 예측하기가 어려워진다. 심지어 작품이 완성되고도 작품은 계속해서 관객의 인식 속에서 변화한다. 이러한 회화의 특성은 개별성과 보편성 사이를 오고가는 풍경과 유사하다.
작가는 구상과 추상 사이, 팽팽한 끈의 긴장감을 풍경으로 표현하는 기민함을 지녔다. 비교적 초기작인 <자라나고 불어난>에서는 어디엔가 존재할 법한 상상의 풍경을 구상해냈다면 <물불>에서 다른 속성의 풍경을 결합하였다. 작가는 이때부터 다른 성질의 자연물들, 가령 물과 불을 뒤섞어 경계를 확장하는 과정을 시도한다. 반면, <땅의 이야기>와 같은 경우에는 작업을 진행할 때부터 캔버스의 모든 방향을 활용하여 제작하였다. 이에 따라서 관객은 풍경을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흐르는 결에 따라 조형성을 상상한다. <가만히, 땅바닥>, <가만히, 섬>, <가만히, 절벽>와 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인체에서 풍경의 미감을 발견한 순간을 관객에게 제안한다.
이고운의 회화는 특정한 소재를 중심에 두지 않고 회화의 성질을 다루는 최적의 방법을 고민해왔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관객들 또한 정형화된 풍경이 아닌 전시 제목의 O와 같이 미적으로 열린 가능성을 지닌 풍경을 감상하기를 기대한다. / 큐레이터 박유진
출처: 공간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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