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SP
2024년 5월 29일 ~ 2024년 6월 29일
갤러리 SP는 이샛별 작가의 개인전, «글리치 파라다이스 (Glitch Paradise)»를 5월 29일부터 6월 29일까지 개최한다. ‘글리치 파라다이스’는 디지털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발생하는 글리치(Glitch)와 인류의 염원이 담긴 지상낙원(Paradise)을 합성한 제목으로 작가가 그림에서 구현한 낭만 속의 불길함을 함축한 말이다. 일찍이 작가는 «녹색 파국 (Green Catastrophe)»(2013), «인터페이스 풍경 (Interface Scenery)»(2014), «레이어 스케이프 (Layerscape)»(2022) 등의 개인전들을 통해 여려 겹의 시공간이 교차된 회화를 공개해 왔으며, 풍경 이면에 가리어진 사회의 비극과 현실의 폐단을 주제로 다룬 바가 있었다. 이전의 그림들에서 작가는 거시적 관점으로 세계의 풍경을 조망했다면, 동일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낭만과 유쾌의 광경 속에 존재의 위태로움과 불안이 은닉된 상태를 보여주면서도 세계의 위기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확립해 가는 개인들의 서사에 초점을 둔다.
전시장에서 관객들은 이모지의 얼굴을 한 초상화, 픽셀 단위의 균열이 화면 상에 잔존하는 풍경화 등을 관람하게 될 것이다. 출품작들은 표면상 익살스러운 인물과 화려하고 신비로운 풍경을 드러내지만, 이들은 분절된 레이어들과 픽셀들이 응집한 외양을 하고 있어 금세 와해될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이처럼 레이어 간의 단차를 다듬지 않고 구별된 단위로써 화면을 이루는 양상은 2021년 ‹레이어 스케이프(Layerscape)› 시리즈로부터 연장된 표현법이다. 코로나 펜데믹 시점에 그려졌던 ‹레이어 스케이프› 시리즈는 컴퓨터 창과 흡사한 기하학 색면들이 풍경 위로 겹겹이 쌓이고, 인물의 얼굴이 픽셀 단위로 해체된 모습 등의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해체적이면서도 구축적인 장면 구성과 이미지 편집은 물리적 접촉이 불가능했던 상황 속에 작가가 사유한 현실의 상태를 빗댄 풍경이었다. 당시, 사회 기능의 오작동을 목도하며 일상의 공백을 온라인 활동으로 메꾸어야 했던 경험은 작가에게 ‘대안적 풍경’을 회화로 구현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의미를 상실하거나 인적이 사라진 장소의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재조합한 풍경은 구체적인 지명이나 장소를 가리키는 풍경화(Landscape)가 아닌, 모색된 터전이자 동시에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레이어 스케이프(Layerscape)’로 봉착이 되었다.
‘글리치 파라다이스’는 ‘레이어 스케이프’ 안에서 벌어지는 미시사들로, 무너진 터전 속에서 소외된 타자 및 비인간이 인간으로 자립해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펜데믹 이후의 현실계를 은유화한 세계관에서 작가는 본연의 모습을 상실한 채 디지털의 잔상과 이모지가 몸체의 일부를 이루는 인물들을 그림 속에 출현시킨다. 익명과 개성이 공존하는 인물들의 초상화인 ‹이모지휴먼›(2024) 시리즈, 복합적인 출처로 조합된 인간들이 어우러진 ‹홀리휴먼›(2024) 등, 작가는 문화적 체계가 와해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정의와 범주가 불명료해진 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에서 어긋난 사람들은 주로 도시가 아닌 자연 속을 누비는 것을 전시장 곳곳에서 목격할 수가 있다. ‹기슭의 버추얼 그린›(2024), ‹세계의 봄은 우리의 분해로부터 다시 돌아온다›(2024)와 같은 그림에서 등장인물은 와해된 자연 속에 내던져 있거나,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로 분해하고자 한다. 이는 파괴된 보금자리에 대한 고찰에서 비롯한 풍경화로 작가는 몽환적으로 표현된 디스토피아를 통해 오늘날에 남겨진 상흔을 살핀다.
환영 같은 세계를 지나 작가는 조작된 이미지로부터 오늘의 일상을 되짚어 본다. 글리치가 화면 곳곳에 편재하고 있는 ‹쏴아 쏴아›(2024)는 마주하는 해변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웹상의 떠돌던 이미지로부터 왔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연상되는 파도 소리와 기계적 잡음이 하나의 소음으로 전해지는 듯한 이미지는 지금의 현실이 현실로 현현하지 못할 위기를 암암리에 전한다. 이처럼 «글리치 파라다이스»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현실, 즉 이미 출현했으나 재구성될 현실을 짐작해 볼 자리로 마련되었다. 주체와 타자,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혼잡하게 뒤섞인 환각의 세계에서 관객들은 눈앞에 도달하지 않는 붕괴의 위기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립해보려는 인간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글 양기찬
참여작가: 이샛별
출처: 갤러리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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