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로젝트 서울
2024년 12월 17일 ~ 2024년 12월 28일
씌우거나, 걷어내거나 – 기억 너머를 대하는 태도
베일에 싸인 어떤 것을 왜 구태여 드러내는가?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 예민하고 취약한 것을 다룰 때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선별을 거친 선택의 문제이자 태도의 가름으로 이어진다. 가리기 위한 베일은 그 이면에 무엇이 있음을 확신케 하지만 정작 잡히지는 않는다. 그 반투명한 매개는 이면을 적절히 가리면서도 부각시키는 도구적 쓰임으로 기능하며, 어떤 ‘효과’ 자체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이시아는 기억과 순간이라는 고정적이지 않은 것의 연상을 의도적으로 가리며 정서를 부각시키고, 이주혜는 일반적으로 가려져 있는 식물의 암술을 드러내어 생명과 취약함을 다시 말하고자 한다.
이시아는 순간적인 기억의 장면들을 시적으로 그려낸다. 형체와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추상적인 기억과 같은 순간을 그려내기 위해 작가는 내면의 공간을 만들고 찰나가 풍경이 될 장소를 만든다. 그리고는 감성이 주는 이미지를 형상보다는 색감으로, 작품 각각의 이미지가 아닌 군집을 이루었을 때의 전경을 상상하며 시각적 효과를 구현한다. 주로 설치 작업을 하던 작가에게 회화는 자신 앞에 실재하는 구체적인 장면으로서가 아닌,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기반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있던 장소에서 떨어져 이미지가 되는 과정에서, 순간에서 찾아낸 ‘그 때’는 다시 한 꺼풀 덮인다. 이미 가려진 것들을 한 겹 더 가리는, 온전하지 못한 이미지들은 뿌연 대로, 그렇지 않은 것 역시 뿌옇게 만들어버리며 정서만이 투과한다. 공기 중의 수증기나 구름과 같이 말이다. 이런 애매모호함, 불특정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기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끔 그 정서의 폭을 일반으로 넓힌다. 입자들에 접근했을 때, 모호함은 비로소 이미지에서 벗어나 색과 질감으로 정서를 감각하게 하기 위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내면의 번역으로서 지워지는 것들에 대한 멜랑콜리(<Formula of Melancholy>(2024)), 뿌연 숨의 화면(<I thought it was over>(2024))으로 나타난다.
이주혜는 꽃의 암술에서 섹슈얼함을 포착, 다양한 조형을 실험한다. 작업의 소재를 보고 있으면 스스로의 기억에서 작품을 끄집어낸 것에 가까워 보인다. 어린시절 실제 암술을 마주하고 느낀 충격은 식물의 생식 기관에 대한 근원적 탐구로 이어졌다. 작가는 기관들을 덮는 무언가를 걷어내고 자신이 느꼈던 생경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생명)에 대한 충격을 전한다. 암술과 암술을 구성하는 작은 구성(물)은 형태 자체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생명의 탄생과정이 아름답게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아니듯이, 이미지는 모든 생명(의 탄생)과 원초적인 에로티시즘의 은유로 기능한다. 한편 근작 <Ovary #3>(2024)은 시리즈의 연장에서 플라타너스 나무의 절반을 얇게 떠내는 방식으로 조각한 것인데, 기존 연작보다 크기를 훨씬 키우면서 Ovary(씨방)의 형태를 보다 디테일하게 파고든다. 꽃잎 안쪽에 위치한 암술은 흔히 감춰진 것으로 생각되지만 반대로 암술이 꽃잎들로 감싸 독립적으로, 스스로 보호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이해된다. 이런 시도는 가려지는 것에서 가리는, 보호하는 것인 주체로 자리하게 함으로써 인식적 전환을 가능케 한다. 최근 재료 면에서도 새로운 실험을 하는 이주혜의 또다른 신작인 <암술>(2024)에서 투명한 유리의 물성은 이전 작업들의 연장에서 생명의 상징이면서 어딘가 차갑고, 독자적으로 서 있는 형상임에도 취약해 보인다. 이처럼 작가는 인식 이면의 에로티시즘의 저변에 대한 이미지적 시도를 지속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이시아, 이주혜의 작업을 보게 되면 가려진 것이 결국 핵심임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상태, 그때의 감각과 기억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투명해지거나, 혹은 완전히 드러나거나. 그것은 표현의 문제라기보다는 작가에게 있어 그렇게 ‘존재’하는 것에 가깝다. 각자가 보는 시선의 낙차는 필연적으로 이런 번역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어떤 것을 전하기 위해 최대한 정확하게 번역하는 것. 그러나 번역의 과정에는 언제든 오독의 가능성이 도사린다. 작가를 거쳐 덮이거나/드러난 이미지는 베일 너머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내는 잔상과도 같은 기억 뒤편의 풍경이 되어 나타난다. 보이지만 닿은 적 없고, 닿은 것은 그것이 아니듯이.
글 손하늘
1. 이시아 작가노트
참여작가: 이시아, 이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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