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
2023년 3월 4일 ~ 2023년 4월 1일
작가 노트
2022년 12월 16일, 베를린에 있는 한 호텔의 거대한 원통형 수조가 깨졌다. 급작스러운 폭발, 펑 깨지는 소리, 터져 나오는 물줄기가 한꺼번에 펼쳐진다. 물줄기를 뚫고 공기를 헤엄치니 생전 느끼지 못한 바람이 비늘에 쓸린다. 유영하며 추락한다. 온몸에 유리 파편이 박히고 불이 붙은 듯 뜨거운 희열이 차오른다.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태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롭게 채우고 싶을 때. 그러면 나는 어떤 세계를 상상한다. 그 어떤 법칙도 필요하지 않은 세계가 있다. 강자도 약자도 없고 삶과 죽음, 빛과 어둠도 없다. 물질도 정신도 없다. 부재의 시공간에 당신과 내가 합쳐진 상상이 피어난다. 나에게 빈 대지(종이나 천)는 상상이 실현되는 땅이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면 어떤 형상이 나타나고 그것을 무엇이라 칭하면 “그 무엇”이 마음껏 될 수 있다. 소소하면서도 오만하며 약속된 답이 없는 그림의 성격이 재미있다.
물감을 흘리고 뿌리고 찍고 문지르는 등의 우연적인 표현기법으로 배경을 만들고, 그 효과에 기대어 종이를 잘라 붙이고 드로잉을 얹어나간다. 의도하지 않은 형상에 곡선과 점을 채워나가면 작은 생명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제각각 가시, 섬모, 더듬이, 날개, 뿔, 지느러미를 달고 있고 모공과 기공을 통해 포자, 씨앗을 퍼뜨린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몸 안팎의 작디작은 기관으로 연결되어 삶을 공유하고 있다는 상상은 아름답고도 낭만 어린 착각이다. 나는 기어이 착각에 빠져 그림으로 생의 감각을 살려내는 하루를 이어가고 싶다.
환상적인 재앙을 꿈꾸며
글: 최새미
지하철을 타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 나는 그 누구의 눈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으며, 또 그 누구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설사 했다 하더라도 그건 핸드폰 속 영상을 시청한 것이었다. 또는 핸드폰 너머 지인에게 던진 말이었고, 들었다 하더라도 그건 이어폰을 통해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였다. 그렇다. 나는 옆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고 옷깃을 스치면서도, 그들과 그 어떤 것도 나누지 않았다.
내 자신을 지켜라. 그건 이 시대의 기조이다. 그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나를 꽉 붙들어 매야 한다. 누가 내 조각을 가져가지 않도록, 내가 계속 나일 수 있도록. 되도록 저 넓은 광장에는 나가지 말아야 한다. 저곳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 인파에 떠밀려 서로 몸을 부대끼다 보면 꿈꾼 적 없는 소란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는 이 그림에서처럼, 뭐가 우연이고 뭐가 의도된 건지 모르게 될 거다. 더 이상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너인지 구분할 수 없을 거다. 이 세상에서 그건 피해야 할 사고이자 막아야 할 재앙이라고들 한다.
이곳에 놓인 그림들은 그 뜻밖의 재앙이 벌어진 장면을 그린 풍경화이다. 불어닥친 소용돌이는 너와 나를 구분하지 않고 집어삼키고 너와 나 사이에 더 이상 여백은 없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네 겨드랑이 아래에라도 파고들어야 하고, 너는 내 더듬이 끝자락이라도 붙잡고 늘어져야 한다. 그러다가 너와 나는 본 적 없는 형태로, 혹은 어디서 본 것 같은 모양으로 합쳐진다. 그 모습을 붙잡아 놓았으니 이곳의 그림들을 초상화라고 할 수도 있을까. 하지만 눈도 귀도 입도 없는, 그 요상한 형태를 단순히 기록해 놓은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움직임이 중요했다. 처음에는 등 떠밀려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기이한 몸뚱이를 가지고 저 스스로 움직인다. 포자를 날리고 유충을 뿜어내기까지 한다. 겉으로 보기에 그 움직임은 무질서해 보이고 규칙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바라는 바는 명확하다. 이들은 주변에 닿으려 한다, 타자에 접촉하려 한다. 한번 시작한 것은 쉽사리 멈춰지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이 되어 버린다. 직접 나서서 어깨를 부딪치고 옷깃을 스치면서 서로에게 달라붙는다. 그 어떤 것이든 너와 나눌 것이다. 그만큼 나를 잃어버릴 것이고, 그만큼 변화할 것이다. 직접 재앙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 스스로 재앙 그 자체가 되는 것, 그게 이 세계의 규칙이다.
이쪽 세상에서는 나를 지켜야만 일상을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저쪽 세상에서는 나를 잃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만큼 두 세상은 극명하게 다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로 그렇지도 않다. 이쪽의 나는 때때로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 때문에, 또 저쪽의 나는 스스로를 버림으로써 또 한 번 더 자신을 지켜내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서로의 세계를 동경한다. 나의 충동은 저 그림 안쪽에 있고, 저들의 욕망은 내가 서 있는 곳에 있다.
오늘도 나는 나 자신을 잃어버리기를 꿈꾼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환상을 결코 놓아버릴 수 없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전시장을 떠나고, 작가는 또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참여작가: 이유진
후원: 오! 재미동, (사)서울영상위원회,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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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11:00 - 19:55
화요일 11:00 -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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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휴관
휴관: 일요일, 공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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