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다
2016년 3월 5일 ~ 2016년 4월 1일
쉼_Acrylic on canvas_116.8×80.3cm_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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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말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는가 보다. 노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고 홍매화가 벙글었다는 소식이 남쪽에서 도착할 무렵, <공간 이다>에서는 그동안 연이어 보여주었던 사진 전시에서 벗어나 봄날 짧은 낮잠 속에서 만났던 꿈속 세계처럼 낯선 상상의 세계에서 유영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회화 작품을 초대하기로 하였다. 시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 절제되고 압축된 화면, 파스텔조의 색채, 느림과 여백의 미학, 순수 서정과 동화적 감성,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 등으로 호평받고 있는 서양화가 이일순의 작품이 전주에서 하남으로 올라오게 된 것도 그의 말대로 “꽃과 나무와 새가 있는 따뜻한 봄의 세상”을 그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이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통찰한 것처럼 “지난 1백여 년간 현대의 감수성을 장엄하게 장악”해 온 초현실주의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일순의 예술 세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를 연상시키는 이일순의 <초대> 연작은 그의 초현실주의적 방법론을 말해 주는 일종의 회화론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의 반역』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명제로 명명하기와 지시하기의 관계, 사물과 이미지의 관계, 회화의 허구적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이일순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선호한 인용의 방법으로 마그리트의 파이프를 끌어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에 물음표를 붙여 ‘Ceci n'est pas une pipe?’라는 텍스트를 써 넣었다. 또 그 파이프를 ‘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쓰인 마그리트의 책 페이지 바깥으로 끄집어내 놓았다. 마그리트에 대한 또 다른 ‘이미지의 반역’을 꾀하며 초현실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소격 효과(Alienation Effect)를 더욱 혁신시킨 초현실주의적 전략을 기획한 것이다.
이일순의 초현실주의적 전략은 먼저 작품 제목에서 드러난다. 꿈과 환상과 무의식의 세계에 심취했던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이일순이 명명한 <잠>, <은자(隱者)>, <여행>, <여행자> 등의 제목은 그가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 비밀스럽게 폐쇄된 자아의 내면 공간, 낯선 이국적 세계를 지향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또한 그의 오브제는 마트로시카 인형·삐에로·마술사, 풍향계·목마, 피아노·첼로, 의자·철봉·그네, 안경·모자·가방·우산 등으로, 이들 익숙한 사물들은 의미론적으로 연관이 없는 이질적인 모습으로 병치(juxtaposition)되어 초현실주의자들의 ‘낯설게하기(depaysement)’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가 <잠> 연작에서 반복하고 있는 대지 위에 놓인 피아노와 우산의 병치는 초현실주의자들이 모토로 삼은 시인 로트레아몽의 “재봉틀과 우산이 병원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아름다움”에 닿아 있다. 하얀 방석 위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 목련나무, 측백나무에 걸린 안경과 모자와 책, 목마를 탄 여행가방이나 비단잉어나 황도복숭아 등 ‘데카르트적 원근법주의(Cartesian Perspectivalism)’ 체제가 파괴된 자유로운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그의 데페이즈망 풍경들은 이성의 통제를 거부하고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창문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초현실적 모순형용에도 불구하고 이일순의 회화는 1920, 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의 그것과는 이례적이고 독자적인 방법론을 보여준다. 우선 그의 오브제는 우연히 발견된 오브제가 아니라 유년의 기억을 응시하며 소중히 키워 온 오브제들이다. 그의 이미지는 ‘자동기술법(Automatism)’에 의한 무질서한 충동적 이미지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세심하게 배치해 놓은 질서를 지닌 정적 이미지들이다. 또한 이일순의 언어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시적 실험이었던 미치광이의 절규, 말장난, 의도된 오독, 불안정한 문법 등에서 벗어난 절제된 감성의 언어이자 정교하게 다듬어진 침묵이다. 그리하여 이일순의 작품은 조각나고 부서진 세계의 파편으로서의 콜라주가 아니라 함께 회복해야 할 세계에 대한 조각맞추기로서의 콜라주가 된다. 확실히 <쉼>에서 보듯, 새들이 보금자리를 찾고 ‘여행자’가 먼 길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은 푸른 숲과 그 숲속에 조화롭게 서 있는 나무들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세계의 원형, 그 근원이 무엇인지를 ‘여행자’와 함께 조용히 사색하게 해 준다.
그리하여 이일순의 초현실적 이미지에서는 시각적 활력을 위해 상상력을 극대화하려는 여느 초현실주의자들과는 다른 회화적 비전이 발견된다. 그것은 그가 상상이라는 이름을 빌려 우리가 지향해야 할 파라다이스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만발한 복사꽃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 주는 밤의 무릉도원을 평화롭게 노니는 흰 양들(<잠>), 측백나무를 감고 또아리를 튼 초록뱀(<숲에서>),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 서서 대지에 웅크린 인간을 지켜보며 위로해 주는 표범(<위로> 연작) 등 이일순이 반복해서 초점화시키는 자연과 생물 혹은 인간과 동물이 교감하는 세계는 강자와 약자가 소멸된 세계이자 이성과 문명에서 벗어난 세계이다.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낙원이며, 그가 강조한 것처럼 “소외된 생명과의 공존의 본능”으로 회복해야 할 세계이다. 이일순은 초현실이라는 가장 생생한 현실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가 그가 포착하여 정지시켜 놓은 파라다이스, 그 신화적 세계를 체험하게 하면서 자신의 회화를 더욱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동안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 있었던 이일순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천 개의 바람> 등 몇 점의 작품을 남겼다. 풍향을 타지 않았던, 메리 포핀스(Mary Poppins)의 우산처럼 동화적이기만 했던 이일순의 우산 하나가 ‘천 개의 바람’의 세기에 기울다가 바다로 추락했듯, 그의 시각도 현실 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듯하다. 아무래도 그의 작품 세계가 바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그의 작업은 현실을 직접 말하는 방법을 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마그리트가 지적한 바와 같이 “모호한 이미지에도 명확한 이미지만큼이나 필수적이고 완벽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상상의 가장 강력한 힘은 현실을 창조하는 데 있다. 상상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주는 이일순의 파라다이스, 그것은 그가 말한 “슬픔과 부조리가 없는 세상”이자 각박한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복원해야만 하는 세상일 것이다. / 김혜원

여행_Acrylic on canvas_지름 40cm_2015

초대_Acrylic on canvas_51×51cm_2013

초대_Acrylic on canvas_51×51cm_2014

잠_Acrylic on canvas_75×75cm_2000
출처 -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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