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
2020년 10월 13일 ~ 2020년 11월 14일
이정식의 세 번째 개인전 《이정식》은 전시 제목으로 작가의 이름을 사용한다. 대개 작가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회고전 혹은 전시 제목이 없는 경우 대체 제목으로써 작가 이름을 제목에 사용한다. 이 전시는 2015년부터 작업을 시작한 작가의 때 이른 회고전도 아니고, 그렇다고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한 것도 아니다.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이정식’에 관한 전시이다. 삶에서 반복되는, 의미 없어(nothing) 보이는 일상적인 활동의 차원에서 질병 당사자의 주관적 경험을 담았던 첫 번째 개인전과 ‘무명’으로 살아가는 감염인의 경험을 공유하였던 두 번째 개인전을 거쳐 세 번째 개인전에서 작가는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다만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당사자의 시점에서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품마다 자기 자신을 변주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이정식11>은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여러 라인 중 악세사리 라인 넘버가 11인 것에 착안하여 11개의 작가 두상을 제작한 작품이다. 작가는 자신의 실존적 삶을 미술로 재현하는 상황과 미술계에서 자신이 소비되는 방식을 고민한다. 정체성에 관한 작업은 그가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때로는 단편적인 이해에 그치기도 했다. <이정식11>은 표면적으로 소비되는 자신의 존재를 빈 기표로 내세운다. 전시 공간 어디에서든 시선을 느낄 수 있는 이 작품은 전시의 마지막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며 전시에서 일구어낸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투영하여 볼 수 있을 것이다.
<오, 미키>는 가족, 친구, 사회로부터 받은 차별과 배제의 경험과 집 비밀번호를 잊어버린 경험을 교차시킨 짧은 소설을 바탕으로 한 2채널 영상 작품이다. 작품에서 소설은 불분명한 대상에게 말을 건네듯 내레이션으로 흐르며 검은 색 원피스를 입은 한 인물의 얼굴과 신체, 동작을 천천히 포착한다. 두 개의 모니터로 분열된 몸은 자기 자신이자 동시에 타자이며, 화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청자이며, 내레이션의 주인공 미키이면서도 미키가 아닌 이원적 존재로 등장한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단일한 몸은 배제되고 분열된 몸이 관객의 몸을 경유하여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김무명>은 작가는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출판물 『김무명』을 기반으로 제작한 영상 작품이다. 책 『김무명』은 인터뷰 당사자가 아닌 작가와 네 명의 배우들에 의해 낭독되며, HIV/AIDS 감염 사실을 알게 된 후의 고립감, 관계의 재정립에 관한 고민과 불안함이 담겨 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설치작업 <김무명>이 천으로 가려진 긴 복도 끝에 사진과 텍스트를 설치하여 개별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만나게 설치되었다면, 영상 <김무명>에서는 공간에서 인물들이 서로 교차되며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흐르듯이 전달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감염인의 경험을 글로 매개한 후 다시 사물이나 다른 인물로 가시화한다. 남웅 비평가는 작가가 이렇듯 사물과 타인에 페르소나를 부여하는 이유가 사회적 소수자가 당사자의 얼굴을 가시화할 수 없음에 대한 시각화라고 지적한다.
이정식은 사회적 호명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의 이름을 변주한다. 이러한 변주는 이정식의 작업 형식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작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 작업의 기반이 되는 텍스트를 쓴 후 이를 출판,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제작한다. 동일한 내용은 작품 형식에 따라 다시 가공되면서 각 형식들이 포착하지 못한/않는 내용이 발견되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가 창출되기도 한다. 작가는 주체의 외부에서 타의적으로 발생하는 호명과 호명에 의한 낙인을 전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호명의 실패를 요청한다. 이는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가시화되지 않기를 요구하는 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정치적 차별에 대한 저항처럼 보인다. 결국 《이정식》전은 ‘이정식’에 대한 전시이지만 ‘이정식’의 전시이기를 거부한다. 작가는 단일하고 평면적인 정체성의 규정을 거부하고 주체의 타자되기, 타자의 주체되기를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을 흔들고 교차시키며 나아간다.

<김무명>, 단채널 영상, 30min 51sec, 2020.
<김무명>, 단채널 영상, 30min 51sec, 2020.
<오, 미키>, 2채널 영상, 16min 47sec, 2020.
참여작가: 이정식
기획: 유은순(d/p기획지원프로그램09 선정)
코디네이터: 권정현
그래픽 디자인: 이경민
공간 디자인: 최조훈
장비설치: 올 미디어
주최: d/p
주관: 새서울기획, 소환사
후원: 우리들의낙원상가, 한국메세나협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문화재단
출처: d/p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2:00 - 19:00
수요일 12:00 - 19:00
목요일 12:00 - 19:00
금요일 12:00 - 19:00
토요일 12:00 - 19:00
일요일 12:00 - 19:00
휴관: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