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익갤러리
2019년 11월 6일 ~ 2019년 11월 26일
이정은, 평화로운 서가, 130x162cm, 장지에 채색, 2019
나는 무엇을 그릴까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반찬거리를 사는 길에 만나는 햇과일, 꽃시장에서 마주치는 제철의 꽃들, 산책 중 발끝에 채이는 솔방울, 여러 빛깔과 모양의 화병, 많은 이들의 생각과 삶이 담긴 크고 작은 책 등.., 그리고 싶은 것은 일상 속 내 손과 눈이 닿는 곳마다 존재하고 이를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늘 충만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그릴까 고민하지 않는다. 알맞은 농도의 아교포수와 물감을 겹칠해 나가고 대상에 맞는 붓을 골라 그 모양새를 찬찬히 좇다보면 화려한 문양의 화병, 나른한 고양이, 흐드러진 여름철 화훼, 여러 서적의 다양한 표정 등이 조금씩 모습을 갖춘다. 특별히 정해 놓은 방식 없이 대상이 잘 드러나도록 그저 붓질을 쌓아 나간다.
나만의 공간에서 오롯이 그리기에 집중하는 것은 일상에서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고, 복잡하고 어수선한 걱정거리나 문제에서 잠시 놓여나게 한다. 또한 삶 가운데 주어진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충전해 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그리기의 의미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무르익는 가을날, 혼자 차곡차곡 모아 놓은 일상의 흔적들을 꺼내 펼쳐 놓는다.
그리고 붓을 든다. 나의 삶 속에서 다정하게 늘 함께 하며 내가 들인 시간과 정성만큼, 자신의 모양새를 드러내주는 ‘그림’은 내게 가장 정직하고 반듯한 친구다.
출처: 이화익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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