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19년 12월 4일 ~ 2019년 1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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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에 있어 책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존재해왔다. 책이란 우리에게 의심할 바 없는 지식의 상징이며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가치를 지닌다. 종이와 잉크 등의 특별하지 않은 물질들로 구성되어있지만 그것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란 무궁무진한 것이다. 이주연에게 책은 익숙한 일상의 오브제(Objet)이면서도 시공간이 축적된 무한한 상징물이다. 책에는 상품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이 있으며 책 안의 줄거리가 지닌 시간, 그리고 누군가 책을 읽을 때 페이지의 넘김에 따른 실제의 시간이 병행하며 흘러간다. 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숙한 풍경들은 작가에 의해 포착되고 현재형이 되어 작품으로써 재탄생한다. 복합적인 재질의 바탕 위에 재봉틀을 이용한 자유로운 바늘땀들은 어느덧 이렇게 켜켜이 중첩된 시간 사이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것이다.
이주연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혹은 무너질 듯 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책이 가진 구조적 특징을 바탕으로 새로운 풍경을 구축한다. 화면 안에서 쌓여져 있거나 나열되어 있는 책들의 집합은 낱권이 가질 수 없는 시각적인 긴장감을 더한다. 또한 글씨라는 책의 자연스러운 구성요소를 모두 지움으로써 단어로 인한 특정 사상이 개입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물론 책이 놓여있는 상황이나 배경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도 무시된다. 어떠한 추측도 할 수 없는 화면 안에서 검은 색의 실선으로 포개진 책의 형상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가는 책이 가진 본래의 기능이나 물질성을 떠나 드로잉이 만들어낸 선적인 실루엣만 남김으로써 순수한 조형성, 그 자체에 더 비중을 두고자 한다.
작가는 머신 스티치(Machine stitch)를 이용한 드로잉으로 책의 형태를 옮기는 과정을 선택하고 책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해방시킨다. 텍스트를 배제하고 질감을 이질화시킴으로써 낯선 사물로서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작가에게 알게 모르게 수집된 책들은 곧 자기 자신의 역사가 내민 증거이며 삶의 반영이다. 실로 겹겹이 이루어진 책들의 집약 속에는 상호작용 속에서 체험된 많은 시공간의 구조들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드로잉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는 중첩된 시간성은 책이 가진 다중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작가는 이를 고정된 본인의 시각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상을 통해 보는 이들 저마다의 책이 가진 이미지를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다.
출처: 갤러리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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