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립미술관
2016년 10월 20일 ~ 2017년 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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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하며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의 시대에, 그가 거쳐 갔던 ‘시공간’을 따라 전시가 전개된다. 상대적으로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부산·제주도 피란시기의 작품이 첫 전시실에 전시되며, 전쟁 직후 최고 절정기 작품을 남겼던 통영 시대, 가족을 그리워하며 수많은 편지와 가족그림을 남긴 서울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궁핍과 절망 속에서 정신적인 고통에 휩싸였던 대구-왜관-서울(정릉) 시대의 작품들이 순차적으로 4개의 전시장에 전시된다.
이중섭은 서양의 기초 위에 동양의 미학을 실현시킨 화가였다. 정확한 해부학적 이해와 엄밀한 데생 실력을 갈고 닦은 기초 위에 한국 고유의 미의식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서예와 같은 일필휘지의 필력이 유화의 붓자국에 드러나고, 분청사기와 같은 겹쳐진 재료의 은은한 효과가 작품의 표면에 묻어나온다. 순수한 어린이와 같은 장난스러운 ‘해학’이 있는가 하면, 자유롭고 유려한 선조(線彫)의 아름다움에서 일종의 ‘격조’가 풍겨 나온다. 스스로 말했듯이 ‘정직한 화공’, ‘민족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이중섭의 신념이 작품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
작가소개
이중섭(1916~56)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의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나 평양, 정주, 도쿄에서 학업을 쌓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화가 활동을 시작했고, 함경남도 원산으로 돌아온 후 해방을 맞았다. 한국전쟁으로 제주도, 부산 등지에서 피란생활을 했고, 전쟁 직후에는 통영, 서울, 대구 등지를 전전하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다가 1956년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식민지, 전쟁, 분단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면서도 이중섭은 끈질기게 ‘예술가’로서의 삶을 고집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서슴없이 그렸고, 한없이 암울한 현실을 자조하는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가난한 피란시절에도 가족과 행복한 시절을 보내며 순진무구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가하면, 전쟁 후에는 강렬한 의지와 자신감으로 힘찬 황소 작품들을 쏟아내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표현에 충실한 ‘정직한 화공’이 되고자 했고, 한국의 전통미감이 발현된 ‘민족의 화가’가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진 후 사기로 인한 빚에 시달렸고, 경제적 생활고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 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내야 했다. 결국 쓸쓸하고 애잔한 작품들을 뒤로 한 채 홀로 세상을 떠났다.

이중섭, <벚꽃 위의 새> 1954년, 종이에 유채, 49 x 31.3cm

이중섭, <황소> 1953~54년, 종이에 유채, 32.5 x 49.5cm

이중섭, <길 떠나는 가족> 1954년, 종이에 유채, 29.5 x 64.5cm

이중섭, <선착장을 내려다 본 풍경> 1953년, 종이에 유채, 40.9 x 28.2cm

이중섭, <이중섭이 아내에게 쓴 편지> 1954년 11월경
홈페이지
출처 - 이중섭, 백년의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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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0:00 - 18:00
수요일 10:00 - 18:00
목요일 10:00 - 18:00
금요일 10:00 - 18:00
토요일 10:00 - 18:00
일요일 10:00 - 18:00
휴관: 월요일
관람료 개인 성인 : 7,000원 초·중·고교생 : 4,000원 단체(10인이상) 성인 : 6,000원 초·중·고교생 :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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