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화랑 을지로
2024년 1월 12일 ~ 2024년 1월 27일
여름의 연못 앞에 서서 문득 겨울 연못을 그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대화보다는 편지처럼, 눈앞에 없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는 듯이.
잘린 가지들이 목을 내민 채 멈춰 있는 겨울 연못은 을씨년스럽고 고즈넉하다. 지난해의 연꽃은 모두 사라졌다. 땅속에는 이듬해의 꽃이 잠들어 있을 것이다. 앞선 세대의 흔적과 다음 세대의 기약 사이를 가로지른 채 수면水面은 쉼없이 흘러가는 하늘의 색을 비춘다. 떠나간 것과 아직 오지 않은 것, 지나가고 있는 것으로 가득한 풍경이다. 나는 읽을 수 없는 글을 필사筆寫하듯 가지의 모양을 옮긴다. 자간과 행간을 헤아리듯 수면의 색을 채워간다.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묵묵부답의 세계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더듬어 찾으려 한다.
참여작가: 임재형
출처: 상업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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