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2026년 4월 1일 ~ 2026년 5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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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에 앞서, 산책의 시간이 있었다. 산책은 자신을 낯설게 만드는 방황이고, 이내 자연스러운 위치를 찾아가게 되는 일이다. 임지민 작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횡단하는 일이기도 했다. 너무 소중했기에 그대로 묻어 두었던 기억을 하나 하나 다시 꺼내어 보는 일도 그에게는 일종의 산책이었다. 자신처럼 작가였던 아버지의 풍경 사진 앨범은 당신의 작업을 위한 여행의 기록을 담고 있었다. 종종 동행하곤 했던 그 여정은 선명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공유된 기억인 동시에 흐릿한 기억은 그에게 상상과 창작의 근원이 될 수 있었고, 그때로부터 길어 올린 것들 위에 지금의 생각을 덧입혀 작업하게 되었다. 이는 기록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그대로가 아닌 왜곡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거를 현재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동시에, 사진 앨범 바깥에서는 세계를 몸으로 감각하는 산책이 이어졌다. 그는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멀리 떠나는 거창한 움직임 대신, 멀지 않은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1 작업실과 멀지 않은 산책길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낯선 감각이 올라오고, 스스로가 어색한 주변인처럼 느껴졌다. 아마 오랜만의 방황이었을 것이다. 지금껏 그에게는 그리고자 하는 것을 미리 작게 스케치해 보며 생각을 정리하는 신중한 태도가 익숙했다. 반면 이번 산책은 무엇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에 대한 두려움 너머로 더 큰 가능성을 열어두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공간 안에서의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 중에 멀리서 혹은 가까이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때로는 물이라는 거울을 통해, 다양한 시점으로 자유로이 이동하며 보기를 시도하게 되었다. 애써 계획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발현되는 감각에 집중하며, 빨라진 호흡과 자유로운 붓질로 그것을 오롯이 담아내었다. 이렇듯 새로이 체득한 속도감 있는 호흡은 두 줄로 펼쳐진 드로잉 가운데 서서히 자취를 드러내고, 전시 공간의 두 벽을 채우는 대형 작업에서 여과 없이 발휘되며 소란을 일으킨다.
이전과는 다른 행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작업의 시작점이었던 아버지와의 기억은 여전히 중요한 구심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긴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지만, 망망대해에서 빠져나오려던 그는 오히려 몇 번이나 다시 깊은 바다로 들어가게 되었다.2 오랫동안 덮어 두었던 앨범까지 꺼내어 펼쳐 보며,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택했다. 그러니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 파도 위에 올라선 듯, 누군가 나아갈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는 기분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 지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3 어쩌면 아버지는 그의 삶 가운데 언제든 꺼내어 볼 수 있는 한 권의 책으로 함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길어 올린 작업은 곧 슬픔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닌, 그때를 지금도 살아 있는 낯선 순간으로 만드는 매개로 존재한다고 감히 적어본다.
공간에 펼쳐진 숱한 드로잉은 모두 저마다의 장면을 간직한 것으로 하나 하나 살펴볼 구석이 있다. 작은 드로잉과 회화의 소재는 많은 경우 부모님의 앨범으로부터 발췌한 것이지만, 일부 요소는 상상으로 재구성된 풍경이다. 또한 작가 자신의 몸으로 거리를 거닐며 만난 풍경도 이와 구분 없이 함께 놓여 있다. 어느 순간 둘 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서로 충돌하는 시공간이, 오래된 습관과 새로운 충동이 줄다리기 끝에 점차 합의점을 찾으며 어우러진다. 이어지는 장면들 가운데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고, 때때로 타인과 나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을 본다. 그러면 불현듯 숲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투명한 자동차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김명진 사루비아 큐레이터
참여작가: 임지민 Jimin LIM
큐레이팅: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진행 및 글: 김명진
그래픽 디자인: 조형석
촬영: CJY ARTS STUDIO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주체
출처: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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