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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9일 ~ 2023년 11월 26일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ne
여덟 번째 이야기 <조세랑: 세 걸음, 낮은 이마>
작가: 조세랑
푸른 눈의 한 스님이 순천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하는 여정을 담은 영상을 본 적 있다. 세 걸음 걷고 두 무릎과 팔, 이마를 차례로 땅에 대며 3개월간 길을 걸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간절한 기도 끝에 얻은 답이라 했다. '왜' 라는 질문에 답하겠다고 하며 그는 다시 세 걸음 걷고 몸을 낮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런 행위가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묻는 이들 앞에서 그는 그저 마음이 일으킨 것을 행동으로 일치시킬 뿐이었다. 때로는 전쟁을 일으키는 그 영리함이 어쩌면 한사람 한사람의 지극히 어리석은 행동으로 극복될 수 있을지 모른다며. 그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는 하나의 존재가 변화시킨 건 나를 포함한 누군가의 마음 이었을지 모른다.
어떤 티벳인들은 라싸까지의 오체투지 순례가 일생의 소원이라 한다. 나는 종교가 곧 삶인 이국의 문화가 신기하면서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고행이 안타깝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동시에 깊은 곳으로부터 알수 없는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 삶의 이전, 혹은 이후라도 언젠가 나도 저 길을 걷고 있었던 것 같은 아련한 그리움 일까. 그들의 걸음이 개인의 구원이나 구도에 앞서 이 세상 모든 존재를 향한 간절한 기도임을 알았을 때에는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이 세계가 거대한 하나의 몸이라면 저들이 걷는 발걸음을 따라 간신히 붉은 피가 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상하며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쩌면 우리 모두 언젠가 저 길을 한번씩 걸음으로써 끊임없이 조각나는 이 세계가 다시 한번 연결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부모님 집에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등불이 있다. 베란다에는 늘 맑은 물 한 그릇이 놓여 있고, 방방마다 성냥과 초, 사탕과 동전, 돌, 건전지, 계피, 비누, 꽃과 그림, 거울, 책, 비누, 복주머니, 북어, 구슬, 나침반,.. 무언가를 의미하는 물건들로 가득하다. 엄마라는 세계의 법과 질서 속에서 정념의 시공간이 펼쳐진다. 잠자리 베개 방향 하나도 함부로 정하지 않는 엄마는 50년째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모신다. 나라는 세계에서는 가부장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내재화해온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나 알 수 없는 논리로 집안에 쌓여가는 물건들을 보는 일이 어렵고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돌탑이 무너지면 돌을 주워올리는 마음처럼 그 물건들을 소중히 여긴다. 지금 나의 안녕이 누군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일 수 있기에 나 또한 세상 모든 존재의 안녕을 빈다.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떼어내고, 다시 붙여 연결하는 일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종종 생각한다. 치열한 사회에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효용가치가 적은 일을 하겠다는 건 내가 가진 대부분의 창의력을 끌어 모아 작업을 계속 할 수 있는 삶을 창조하는데 쓴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삶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마음과 행위를 일치시키는 그 순간들로부터 자기를 감각하고 존재를 생생하게 체험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들과 연결된 나를 상상하며 그 모두를 위하는 마음으로 오랜 시간 그리고 떼어내고 이어붙이는 작업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용(無用)의 시간들이 어딘가에 가 닿아 함께 흐르길 기대한다.
조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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