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 이주헌
2018년 5월 4일 ~ 2018년 5월 26일
장고운의 ‘가까운 풍경’
화가들은 망막에 맺힌 인상과 실재의 단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한다. 한 획 붓질이 더해질 때마다 완전히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낼 때 이들은 앙상하고 딱딱한 관념을 고발한다. 변화무쌍한 감각에 원한을 품는 대신 이들은 ‘가령 아가위꽃이나 어떤 성당을 바라봄으로써 우리 마음속에 파인 조그만 도랑’을 파고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상과 마음속까지 연장된 실재의 꼬투리를 찾아가는 이들의 여정 덕에 우리는 푸루스트의 말대로 ‘오직 하나의 세계, 곧 우리 자신의 세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늘어나가는 서로 다른 세계를 갖게 된다.’
장고운의 여정은 ‘가까운 풍경’이라 부를 만하다. 적막할 정도로 고요한 한때, 평범한 일상 공간을 응시하는 풍경 작업이 많다. 오래전 그가 방문의 윗부분을 조감한 그림이 이상하게도 기억에 선연하다. 의표를 찌르는 시점과 구성도 인상적이었지만 어쩌면, 눈길 가지 않는 외로운 사각에 감정을 이입했기 때문이리라. 2011년 이전의 작업은 정돈된 붓질로 공간에 깃든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후의 작업은 다양한 조형 기호에 대한 모색이 두드러진다. 분절된 캔버스로 그림이 놓이는 공간 전체에 개입하는 방식도 그 중 하나다. 종이와 아크릴로 흘러내림의 효과를 내거나 흰색을 자유자재로 사용함으로써, 여간한 테크니션이 아니면 대결하기 어려운 밤풍경에서 심리적 공감을 거두었다.
장고운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철학적 태도는 ‘꽃그림을 그린 꽃그림’ 연작이나 미묘한 톤의 변화와 중성적인 색감으로 표현된 풍경 곳곳에서 그리기와 지우기의 긴장으로 흔적을 남겨왔다. 하지만 이번 근작에서 회화적 회의와 유보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 대신 풍성한 감각의 세계를 마주하는 활력과 자신감을 발견하게 된다. 두터운 캔버스에 덧칠을 거듭한 채색이 진동하며 다시 배어나오는 듯하다. 마른 물감 칠이되 습기와 온기가 돈다. 피가 도는 것이다. 난만히 넘실거리는 황매산 철쭉 바다 풍경 앞에서 봄이 여실한 줄 안다. / 강상훈, 스페이스 오뉴월 공동대표
출처 : 스페이스오뉴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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