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2022년 9월 28일 ~ 2022년 10월 15일
종종 작업에 몰두하다가 잠시 붓을 내려놓는 내 모습을 반사된 유리창 속에서 목격한다. 구름의 순간을 포착하려고 하면 흩어지기 마련인 것처럼 창문의 나를 마주했을 때면 골똘히 하던 생각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바라본 유리창은 나를 밖에서 안으로 격리시킨 접점임과 동시에 그림과의 거리를 인지하게 해주는 거울이다. 이렇게 창문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이고, 밖의 감각을 안으로 끌어오게 하는 통로로 이를 작업의 기반(basis)으로 환기시킨다.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작업실의 창문으로 건너편 아파트의 수많은 창문과 빛이 보인다. 그러나 바깥이 안보다 어두울 때는 내부를 비춘다. 장마철에는 밖에 이슬이 맺히고 겨울엔 안에 이슬이 맺힌다. 이렇게 유리창이 허락한 바깥을 보면서 유리창 너머의 밖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나의 루틴이 되었다. 매일같이 달라지는 안과 밖의 미세한 틈(경계)들은 축축한 공기가 내려앉을 때나 빗방울이 지나간 후에는 확연히 창문과의 거리 즉, 안과 밖의 차이를 다시금 감각하게 된다. 이런 날일 때면 외부에서 내부로 유입되는 습한 공기는 캔버스 내부에도 자리를 잡는다. 창문에 고여진 습기는 누구의 것일까. 나를 비롯해 채워진 내부와 밖의 여러 요인들이 충돌되며 이루어진 것인가. 아니, 뒤엉킨 것인가. 어쩌면 그것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내-외부의 부딪힘에 대한 일종의 증거 현상이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창문은 가장 중립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까.
유리창은 유리창 스스로를 기준점으로 내-외부 상호작용의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막이자 경계이다. 오로지 내-외부 상호작용의 결과만을 보여주는 중립체로서 역할을 하는 유리창은 격렬한 상호작용일수록 경계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온도와 습기를 통과시키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시각적으로만 통과시키는 막이기도 하다.
창문 하나로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내가 회화를 대하는 태도와 밀접하다. 겹겹이 쌓인 여러 창들을 지나야 비로소 밖을 볼 수 있듯이, 반복되는 루틴을 비춰내는 레이어들을 띄어놓은 하나의 창으로써 회화를 구현한다. 창문 너머로 맺힌 물방울은 하나의 창(막)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며 투과하여 중첩된 이미지로 나에게 도달한다. ‘파생’과 ‘생략’을 동시에 수행하는 나의 그리기는 평면이라는 매체의 조건 위에서 습함이라는 촉각적 감각을 머금기를 시도한다. 또한, 어떠한 풍경이나 사물을 뚜렷하게 나타내지 않고, 여러 회화적 실험들을 거쳐 나온 이미지들은 하나의 일렁이는 화면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일렁이는 화면들은 붓질의 방향과 크기가 일정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물감의 두께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회화의 물질성이 가능케 하는 여러 변주 안에서 애매한 간극을 나타낸다.
오늘날 어떠한 일들을 하나의 #(해시태그)로 상정하는 것처럼 내가 제목에 수치를 기록하는 것은 그와 유사점을 갖는다. 그중에서 정도를 의미하는 %는 포함하는 바가 방대하다. 주어진 조건이나 환경에서 오는 감각의 수치, 시선에서의 확대/축소 등 밖의 요소들이 회화의 물질성과 함께 파생된 화면과의 동질적인 거리감은 구분 지을 수 없지만 비슷하거나 가장 적절한 수치를 포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존의 규칙과 구조를 해체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긴장과 조화에서의 ‘적당한’, ‘균형’이라는 회화의 또 다른 규칙과 질서를 성립해 나간다. 추상회화에서 작가가 생각하는 ‘적당함’의 감각과 다의적 상황에서 인지함을 바탕으로 거리를 두며 ‘균형’을 이루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완성되지 않은 각들, 완벽의 모순, 불명확하고 비정형적인 형태들을 이용해 여러 레이어들이 서로 겹쳐 보이거나 지지하면서 새로운 화면을 조합해내고, 감각적 요소들이 동원되어 응집되어 있는 한 덩어리의 회화로 형성된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나타나는 회화는 구축된 그들만의 질서가 변모하는 과정으로 회화라는 매체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한다.
희미하고 축축함의 시각적 형상을 띄는 이번 전시 《흙-빛 창문 Terra-color Window》는 단순히 정지된 캔버스가 아닌 안과 밖의 경계에서 거리를 두면서 관찰하는 것들의 상태나 상황 속 찰나의 감각을 전달하고자 한다.
글: 장윤정
작가 소개
장윤정은 개인이 성장기부터 자연스럽게 겪어온 규율화된 루틴에서 온 속박감을 회화에 대입한 일탈행위로서, 회화를 다루는 태도로 재구성한다. 기존 회화의 구조 안에서 이질적인 요소들의 충돌을 실험한다. 미완성적인 요소들과 형태로 각자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새로 생성해내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일종의 규칙과 파편들의 조화에 의해 회화를 구성한다. 단체전 ≪soft-morphic≫(2022, 플레이스막2, 서울), ≪추출방식≫(2021, 토포하우스, 서울), ≪제5막: 눈 너머 장면들≫(2021, 서리풀 청년아트갤러리, 서울), ≪Aphorism:美化≫(2019,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를 비롯해, 개인전 ≪혹 what if≫(2021, 학고재 아트센터, 서울), ≪#씹던 껌≫(2021, 천안문화재단 서북구청 갤러리, 천안) 등을 선보였다.
참여작가:장윤정
도움: 최정규
디자인: 배하경
기획: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장윤정
출처: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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