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미술관
2023년 6월 22일 ~ 2023년 7월 2일
중후한 흑연 광택에서 떠오르는 감정들
반이정 (미술평론가 · 아팅 디렉터)
3차원 실물을 2차원 화면 위에 허구적으로 옮기는 기교의 연대기를 미술의 역사라고 할 때, 실물의 표면 질감을 고스란히 본뜨는 특이한 재현 기교는 동서양 모두 오랜 기원을 지녔다.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탁본으로 불리는 기술은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나 그림을 베껴내는 일종의 손쉬운 복사법에 가까웠고 역사는 중국 당唐대(618~90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양에서 프로타주frottage로 알려진 기법은, 대상 가리지 않고 표면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 등으로 문질러 대상의 외형이 고스란히 떠오르게 하는 조형 방법으로, 현대미술사에서 우연적 효과에 비중을 뒀던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 중 하나로 설명된다. 하지만 프로타주는 동서고금의 모든 유년 세대에겐 부지불식간에 체득되는 시각 유희로 기억된다. 대상을 똑같이 옮길 재간이 없는 거의 모든 아이에게 그저 문지르는 것만으로 대상이 종이 위에 떠오르는 체험은 전에 없는 만족감을 안겼다. 포괄적으로 프로타주의 가능성은 대개 동전이나 나뭇잎처럼 작은 대상에 한정되었고, 그 유희는 유년기에 묶여있기 마련이다.
대상의 중량이 최소 1톤을 넘는 자동차를 본 뜬 정명국의 프로타주 작업은 2000년 전후부터 시작됐다. 초반에는 바퀴와 휠, A필러가 포함된 앞 도어처럼, 차의 부분을 네모진 종이에 흑연 프로타주로 옮기다가 점차 차의 측면으로 확장해 차의 외형을 볼 만한 규모로 발전했고, 이후 차의 앞면 측면 후면을 각각 나눠 차의 3차원을 2차원으로 부분적으로 나눠 출품하는데 이르렀다. 대상의 표면을 본뜨는 기법이라는 차원에 더해, 정명국이 선택한 자동차가 대개 연식이 오래되어 지금은 단종 되어 과거의 기억을 품은 차종인 점, 그리고 차주와 차 사이의 유대감을 표상하고, 나아가 용도를 상실한 차를 향한 차주의 추모의 감정을 담아온 점에선 데스마스크death mask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중략
참여작가: 정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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