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센터
2018년 2월 2일 ~ 2018년 3월 4일
정재규, ‹경주 (Gyeongju)›, 2011, Photo, wood installation, variable dimen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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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성의 느림: 정재규의 작품세계
장-루이 푸아트뱅 (미술평론가/소설가)
정재규는 사진작가이다. 아니 ‘조형사진’ 작가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중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바 우선 자율적인 기호체계로서의 회화 언어를 생각하고 이어서 비대상적인 기호체계를 통해서 현실의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조형적 사고를 배태한 유럽의 큰 흐름 - 특히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큐비즘,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등 - 을 아주 깊이 있게 연구했다. 그는 잠시 회화작업을 시도하다가 사진의 힘에 사로잡혔다. 사진작업 초기에는 그가 지시적이고 자료적인 차원에서 사진을 사용했다면 1991년부터는 ‘조형사진’ 작가로서 입지를 다진다. 이때 정재규에게 있어서의 사진이란 실재에 대한 프랙탈적인 시각을 작품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가시적인 것의 근본적 해체라고 할 수 있는 ‘자르기 기법’(découpage)을 통해서 그는 순수한 조형적인 접근 방식에 따라 실재를 재구성하는 가능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정재규의 예술적 독창성은 ‘이면(裏面, l’envers)’이라는 핵심적 개념과 사진 이미지를 5~10mm의 폭으로 가늘고 길게 ‘자르는 행위(découpage)’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생트 빅투아르 산의 뒷면을 촬영한 것은 우리의 습관과 식별력을 활용한 상대적 행위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려는, 즉 ‘또 다른 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사진들이 아무런 효과도, 특별한 미학적 추구도 없이 50x75cm의 크기로 인화되었다는 그 자체는 분명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정재규는 가시적인 것의 진부한 모습과 사진 이미지의 지시적 즉물성을 동시에 과감하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체계적인 기법으로 사진 이미지들을 일정한 폭으로 길게 자름으로써 그는 사진이 강요하는 현실 인식에 대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피하는 동시에 가시적인 것을 순수한 조형적인 영역으로 투사시킨다. 정재규는 사진 이미지 자르기가 ‘이면’, 즉 이미지들의 ‘이면’, 현실의 ‘이면’, 세계의 ‘이면’, 지각의 ‘이면’을 향해서 열린 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구축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제는 순수 조형적인 방법으로 이미지를 재구성해야 한다.
사진 촬영에 드는 시간과 비교하여, 사진을 자르고 잘라진 이미지들을 올짜기하여 시각의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무한한 시간이 필요하다. 정재규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환기시켜 주는 것은 이 무한히 느린 시간으로서, 마치 맹점처럼, 잊혀졌지만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 ‘시간의 힘’이다. 그는 균형에 대한 갈망과 지혜의 필요성을 결합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조형 언어뿐만 아니라 보편성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형태에 도달하게 된다.
2005년부터 정재규의 작업은 이미지와의 관계에서 변화를 갖는다. 그는 더 이상 사진 이미지들을 사용하지 않고 대신 화집 속의 복제 이미지들을 직접 자른다. 그것들은 초상, 회화 및 작가 자신들의 복제 이미지들로서, 작가는 이를 포장지에 붙이거나 늘 해오는 방식대로 잘라서 올짜기 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레디 메이드(ready made)’의 이론적 접근과 예술의 보편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호들의 자유, 기호들의 보편성, 기호들의 조형성이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임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누구나 사진작가인 이 시대에 정재규는 누구나 ‘조형작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이제 이미지의 ‘이면’에 있다. 이미지 속에서만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이미지의 포화 상태가 치명적이기는커녕, 새로운 자유의 근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재규는 보여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현의 힘에 대한 확신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여 이 자유에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서 우상 파괴주의적인 제스처로 이미지를 자르고 해체하며, 동시에 가장 엄숙한 제스처로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복합적이며 눈부신 장면을 재구성하여, 이미지의 위장 마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가시성은 현실의 복제성 너머를 볼 수 있어야만 간파할 수 있으며, 또한 이것이 이미지들이 숨기고 있는 것이고 누구나 갈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정재규의 멋진 작품들이 우리에게 말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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