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예술공간
2024년 3월 6일 ~ 2024년 4월 5일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영어를 할 줄 알았다면, 2차 세계 대전의 결과와 그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난 겨울에 거대 언어 모델 기반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ChatGPT)가 그 첫 열풍을 일으켰을 때, 나는 그 성능의 출중함에 대한 놀라움 못지 않게 우려 또한 감출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인류사에서 한 세대가 그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한 힘과 조우하게 될 때 그 힘에 대한 비판적 접근의 부족은 필연적으로 그 세대와 이후 세대들의 고통과 후회를 생성시켰기 때문이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은 지금의 기후 위기를 일으킨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이며,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는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의 역사를 촉발시켰고,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그 역사의 가장 무서운 변곡점을 형성하였다. 그렇기에 과학사가 그 발전을 고통스러운 영감으로 삼은 인문학사 및 예술사와 늘 변증법적 발전을 함께 해온 것은 인류가 지닌 지능적 정체성인 지성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 인간적 한계의 공존에 의한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과학 밖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변증법의 역사가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로 정치사를 들 수 있다. 왕정과 민주주의의 사이에는 다양한 과도기적 물결들이 있었고, 세상의 일부 지역과 문화권에서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혈연 중심의 왕정이 붕괴된다 하여도 그 붕괴를 주도했거나 붕괴 과정에서 자신의 리더쉽 또는 카리스마 등으로 득세한 자가 독재 정권을 설립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있었다. 이는 표면적으로 보면 그 개인의 출중한 능력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처럼 보이지만, 좀 더 총제적으로 보면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역학이 작용하여 일어나는 일임을 근대 이후의 사회과학이 밝혀냈다. 즉 독재자 개인의 역량이 지닌 호소력이 대중에게 정치적 중력장으로 인식되는 역학도 분명 있으나, 왕정과 독재라는 시스템에, 즉 그 정치의 구조적 문화에만 익숙하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민주적 의사 결정과 같은 새로운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대중의 세계관이라는 역학이 여전히 유효할 때에만 전자는 정치적 권력으로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왕정 시대에 한 군주가 정치를 어질게 실천하지 못하면 상당수의 백성들이 ‘왕정이 아닌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라는 성찰을 하기보다는 ‘이 왕이 속히 물러나고 다음 왕은 정치를 잘 했으면 좋겠다’라는,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비판이 아닌 인물만을 대상으로 한 미시적 비판을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인 챗GPT와 이미지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인 달리(DALL•E) 등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의 득세와 급류를 보며, 과학사와 정치/사회사에 대한 위와 같은 고민을 해온 동시에 그에 대한 예술사의 작용-반작용 및 그 미래의 가능성들을 고민해온 나는 《무솔리니 팟캐스트》라는 기획을 실천해야 하겠다는 당위성에 도달하였다. 자국 및 인접 국가들에게만 자기 권력의 부당한 정당성을 화려한 자국어의 구사 능력을 기반으로 호소한 과거의 파시스트들에게 만일 현대의 팟캐스트와 같은 초국경적 소통 플랫폼, 그리고 당대 연합군의 핵심적 세력이었던 미국과 영국의 언어인 영어 또한 화려하게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더라면 전쟁의 결과, 그리고 그 이후의 세계정치사 및 식민주의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만일 무솔리니나 히틀러와 같은 인물들이 인간이 아니라 첨단 과학의 산물인 ‘인공 인간’이었다면, 그래서 초인적 학습 능력과 정보 처리 능력, 그리고 정밀한 수학적 연역 논증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었다면, 프랜시스 베이컨이 지적한 4대 우상 이론 가운데 하나인 ‘극장의 우상’으로서 그들은 대중과 어떤 권력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즉 팟캐스트라는 기술, 영어라는 국제공용어 또는 구글 번역기 등의 인공지능 번역기와 같은 더욱 강력한 언어 기술, 그리고 사이보그로서 지닌 초인간적 정보 습득/처리/논증 능력의 기술을 지녔다면, 그렇지 않았던 시대에도 엄청난 세계적 파급력을 지녔던 파시즘은 어떻게 진화했을까.
이 기획문의 첫 문장은 이러한 고민을 한 줄로 요약하여 내가 내 자신에게, 그리고 이 전시의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 이 기획의 구체적 구상이 시작된 2023년 8월은 2차 세계 대전 종식의 78주년을 기념한 동시에 그 여러 결과 가운데 하나였던 한국의 독립을 기념한 시기였고, 한반도의 역대 최악의 여름 홍수 및 폭염과 하와이에서의 산불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와 문화재 소실 등 기후 위기라는 전쟁의 역대 최악의 여름 전투를 치룬 시기이기도 했으며, 오펜하이머의 삶을 조명하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 영화가 개봉한 시기인 동시에 극장 밖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대만-미국 갈등, 그리고 한반도의 남북 관계 악화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핵무기 사용에 대한 우려가 커진 시기이기도 했다. 올해에도 인류의 이러한 투쟁과 과제들이 명시적으로 진행되고 논의되는 가운데, 이 기획은 그 문제들과 상술한대로 동일한 과학사와 정치사의 흐름에서 공존하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덜 명시적 논제인 ‘생성형 인공지능의 파시즘적 부작용 가능성’에 아마도예술공간의 조명들을 비추고자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황선우 동영상만 맹목적으로 시청한다면 시청자의 수영 능력은 얼마나 향상될까. 물 속에 직접 들어가야만 수영을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정치적 의사 결정, 학술 논문의 작성, 연인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의 작문, 그리고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은 예술 작품의 아이디어 구상과 창작은 고성능의 기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기계처럼 정밀하지는 않더라도 반복적 시행착오를 통해 능동적으로 스스로 할 때 인간의 자아가 그 성숙과 비판적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아니기에 그 어떠한 인간보다도 맹신하기 쉬운 존재를 실제로 맹신하고, 그 과도한 의존 때문에 자아가 묘목 수준 이상으로 성장하지 못하거나 퇴화한다면, 그래서 인류의 거시적 정체성 자체가 퇴화한다면, 이 새로운 기계와 앞으로의 새로운 인류 사이의 관계는 역대 그 어떤 파시즘보다도 해체가 난해할 비민주적 권력관계의 태동을 초래할 것임이 지나친 억측일 수 있을까.
이에 이러한 시국을 응시하고 있는 시각예술 전시기획자인 나는 첫째, 언어 기반의 정보를 습득하고 처리하는 기계의 본질에 대해 초언어적 영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는, 즉 작가의 원래 작업 의도와 무관하게 감상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런 영감의 제공 가능성이 있는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를, 그리고 둘째, 전시 공간을 단순히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기획자의 기획 의도를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감상해보는 기회의 장소로 활용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로 하여금 기계와 자신의 관계에 대한 좀 더 심도 있는 성찰을 시도할 수 있는 동시에 기계-인간 권력 관계의 해체와 재건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오프라인 플랫폼으로써 재구성하는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는 ‘전시 기획이라는 개념 자체 또한 새롭게 기획할 수 있을까’라는 내 오랜 고민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 재현의 노력이기도 하는데, 즉 전시를 단순히 ‘훌륭한 작품들의 구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에 순응하는 것을 넘어 감상자의 관람 및 그 이후의 삶에 어떤 유의미한 기획적 손길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개념으로 확장하는 시도이고, 《무솔리니 팟캐스트》는 그 주제를 고려할 때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기획이 절실히 요구된 전시이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이 오래된 정치적 이념을 재생산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탄생시킨 이 전시가 관객에게 인류의 기술적, 정치적, 그리고 예술적 실천에 대한 새로운 영감과 통찰을 제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글: 안재우 기획자
기획자 소개
안재우(1977-) 기획자는 사회, 문화 현상의 주류적 경향을 분석적,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고, 큐레이터 외에도 인권이나 환경 영역에서 활동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이후 기획자로서 기획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기획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관객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을 염두에 두는 전시 방법론을 모색한다. 한편으로 디지털 기술, 챗GPT, 생성형 인공지능 등 기술 발전이 인간에게 미친 부정성과 긍정성, 그 길항 관계에도 주목하고, 작가의 작품을 통해 이러한 사유들이 발현되는 지점에도 관심이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문학사(영어영문학-사회학 복수전공)를 취득한 뒤 서울대학교에서 이학사 (수리과학부:수학과)를 취득하였다. 스웨덴 우메오(Umeå) 대학교 건축학부 초빙교수와 경기도교육청 《꿈의 대학》 미디어학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KBS 라디오와 Arirang 라디오에서 각각 문화평론가와 환경활동가로 고정출연 중이다. 최근에 기획한 전시로는 라킴 작가와 협업하여 참여한 《제10회 아마도애뉴얼날레_목하진행중》(아마도예술공간, 2023), 서해영-정나영 2인전 《우리가 왜 친해졌을까》(누하동 259, 2023 | 협력 기획), 박효빈-정수 2인전 《투명한 몰락의 밤》(갤러리 호호, 2023), 남민오 개인전 《초기준적 특질들》(트라아트, 2022), 장규돈 개인전 《심홍 연대기》(RASA, 2022), 그리고 박그림 개인전 《호로》(스튜디오 콘크리트, 2022) 등이 있으며, 2021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한국관 참여 작가이기도 하다.
기획: 안재우 (제11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선정 큐레이터)
참여작가: 김정인, 남민오, 안준, 정나영, 정아사란, 최연우, HJH(황호진)
부대행사: 3월 9일(토) 오후 3시 퍼포먼스
주최/주관: 아마도예술공간
후원: ㈜ 넵스테크놀러지
출처: 아마도예술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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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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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관: 월요일, 6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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