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위주 류가헌
2017년 1월 10일 ~ 2017년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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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을 든 광부가 오르막길을 오른다. 막장으로 향하는 인차에 몸을 맡긴다. 인차는 쇳소리를 울리며 내달린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오로지 이마 위 안전등뿐이다. 분진 섞인 검은 땀이 온몸에 흐른다. 막장의 시커먼 어둠을 등지고 나온 광부를 맞이하는 것은 또 다른 어둠이다. 밤이 된 것이다. 몸에 들러붙은 검정 탄가루를 씻어 내린 후 삼겹살에 소주병을 기울인다.... 이십년 동안 끈질기게 광부들의 삶을 좇았던 사진가 박병문의 사진이다.
사진가의 아버지도 광부였다. 기억 속에 희미해져가는 광부 아버지와 장성 탄광촌의 풍경들이, 카메라를 들자 선명해졌다. 광부들의 그림자마다 아버지가 어른거렸다.
한 때 찬란하고 풍요롭던 탄광촌은 이제 쇠락하고 기울어 그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이 살고 있었고, 지하 수천 미터 갱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광부들을 따라 들어간 막장에서 박병문은 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아버지의 시간들과 마주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니 사진을 허투루 찍을 수가 없었다.”는 말처럼 그는 아침부터 밤까지 탄광과 막장 안의 모든 시간들을 촘촘히 기록했다. 분진이 날려 눈앞이 부옇게 가려졌지만, 그의 카메라 렌즈를 가리진 못했다.
그렇게 탄광과 광부들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 <아버지의 삶>은 2016년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수여하는 상인 제6회 온빛사진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숱한 광부의 삶에 대한 작업은 ‘대중적 주목을 받지 못하더라도 의미 있는 스토리를 발굴, 사진으로 기록하여 사회적 소통과 공감을 이루고자 한다’는 온빛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매년 온빛상 수상작에 대한 전시 지원을 이어오고 갤러리 류가헌이 새로 이전 개관한 청운동에서도 온빛과의 인연을 이어간다. 2017년 1월 10일부터 박병문 사진전 <아버지의 삶>을 전시함으로써, 그동안 다큐멘터리 사진에 보여 온 애정을 지속해가는 것이다.
전시작은 총 40여 점이며, 지금 이 순간도 몇 년 후면 폐광이 예견된 탄광에서 광부들의 지워지지 않는 마지막 흔적들을 기록하고 있는 박병문의 새로운 작업 일부가 함께 선보여질 예정이다.
작업노트
어린 시절 탄광촌에서 살면서 보고 느끼고 들었던 수많은 기억들이 뇌리에 그대로 보존 되어 있다. 여기 저기 흩어진 석탄 부스러기들이 냇물과 섞여서 거무내가 되어 흐르던 모습, 삼삼오오 모여 출근하고 퇴근하는 광부들의 모습이 어렴풋하다.
검은 얼굴에 하얀 이를 보이시며 퇴근하시는 아버지 손에는 가끔 괴탄이 들려 있었고, 그 괴탄으로 불을 지펴 저희 5남매의 든든하고 따끈한 버팀목으로 계셨다. 가끔 이중교위에 “까시랑카”가 지날 때면 간간이 떨어지는 석탄 부스러기들을 주우러 나갔던 어릴 적 기억과 뒷마당 검은 땅 위에서 술래잡기 하던 그 개구쟁이 시절, 비가 오면 검은 탄들이 흘러 내려 골목길은 질퍽질퍽해서 늘 검은 신발이 되었던 기억을 되짚으며 구석구석을 바람처럼 누비며 다녔었다.
숨소리도 벅찬 낮 시간은 거대한 기계소리와 사람 사는 소리로 왁자지껄 하지만 숨을 죽인 밤이 되면 탄광촌은 또 다른 불빛들이 차지하게 되고, 하얀 가로등이 주인이 되고 사물은 조연이 되어 그저 주시할 뿐이었다. 검은 사람들로 검은 도시가 번창하여 인심 또한 넉넉했던 탄광촌은 석탄 합리화 정책이후로 쇠퇴하여 많은 사람들이 탄광촌을 떠났고, 하나 둘 폐업하는 탄광으로 인하여 그 잔해들은 시간을 거꾸로 당기고 있었다.
지하의 검은 세상, 땀방울조차도 검게 빛나는 그 검은 공간에서 가족의 생계를 두 어께위에 짊어지고 사셨던 광부 1세대 아버지. 30년 전에 광부를 퇴직하신 아버지, 검게 얼룩진 옷으로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채웠던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 카메라에 차곡차곡 담았다.
습한 막장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맺는 그들만의 삶을 20년간 사진으로 모질게 담아 왔었다. 막장사고가 나면 모두가 가슴 졸이며 서로를 위로 해 주고 다독였다. 피넷골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흥복사에는 막장 사고로 돌아가신 광부들의 극락왕생과 안위를 위해 광부가족들이 자주 찾고 있는 절이다. 흰 눈이 덮이고 연탄불에 된장국이 끓으면 황금색 보자기에 도시락을 싸주며 무사히 귀가하기를 출근하는 광부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졸이는 것이 광부 동네의 아침 일상이었다. 빙판이 된 출근길에 흔들거리는 도시락을 들고 가족의 무게까지 짊어진 광부의 어께는, 너무나도 버거워 보였다.
우리나라 탄광산업의 원동력이었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 광부들, 그들이 일궈낸 희망으로 산업 전사로 기억되고 있는 점에서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긴 세월 강한 지열로 인해 비 오듯 흐르는 땀과 어둡고 습한 막장에서의 작업으로 인해 남은 건 숨을 조여 오는 진폐의 고통 뿐 이였다. 앞으로 몇 년 후면 폐광이 예견된 탄광, 그 폐광의 중심에서 광부들의 지워지지 않는 마지막 흔적들을 기록하고 촬영할 예정이다.
이 땅에 아름답지 않은 아버지는 없다고 했다. 광부 1세대들의 노고를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 이다.
박병문 Park Byungmoon
박병문은 강원도 태백 출생으로, 어린 시절 광부였던 아버지를 통해 기억하는 광부들의 삶을 태백 철암지역을 중심으로 20년간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다. 탄광촌에서 자라면서 광부로 정년퇴임한 아버지의 흔적과 기억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2010년 제24회 ‘강원도사진대전’ 대상과 2013년 제1회 ‘최민식사진상’ 특별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아버지는 광부였다”(경인미술관, 서울), 2015년 “검은 땅 우금(于今)에 서다”(갤러리 브레송, 서울), 2016년 “아버지의 그늘”(갤러리 브레송, 서울) 등의 개인전과 기획전을 연 바 있으며, 같은 이름의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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