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
2001년 9월 28일 ~ 2001년 11월 18일
호암미술관은 조선후기(17세기후반∼19세기)에 제작된 불교조각, 능묘조각, 토속신상 등을 한자리에 모아, 조각의 다양한 발전양상을 살펴보고 시대적 특징을 찾아보는 전시를 개최한다. 1999년 새천년을 기념하기 위한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전시에서 조선후기 조각의 일면을 선보였던 적이 있었지만, 조선후기 조각만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면서도 그림이나 도자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조각에 눈을 돌려 새롭게 조명한다는 의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조선후기는 실학이 일어나 실제에 바탕을 둔 우리의 것을 찾고자 하는 풍조가 전 사회를 지배한 시기였다. 부의 축적이 늘어나면서 문화의 향유층도 사대부계층에서 보다 넓고 다양한 계층으로 확대되었는데, 새로이 부를 축적한 이들은 사대부들의 기호를 선망하면서도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새로운 미감을 창조하였다. 조선후기 사회가 생동감있고 낙천적일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은, 각 계층에서 내뿜는 다양한 문화적 욕구와 실현도 커다란 요인이었으리라 추측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철학, 음악, 문학 등 모든 방면에서 새롭고 신선한 모습들이 나타나는데, 미술에서도 이같은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품들이 각 부분에서 만들어졌다.
그림에서는 우리나라의 산수를 독특한 필치로 그린 진경산수가 일세를 풍미하였으며, 그림의 주제에서도 일반 서민의 삶을 그려낸 풍속화가 이때 탄생하고 유행하게 되며, 민화의 등장도 빼놓을 수 없다. 도자기도 형태가 다양해지며, 향유층도 확대되어 민화문양이 나타나는 등 다양한 계층의 미감(미감)이 반영되기 시작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표출한 목가구와 화려한 문양의 화각공예품도 만들어졌다.
조각에 있어서도 조선후기는 새로운 변화와 다양성의 시기였다. 사찰의 불상이나, 능묘의 석인·석수들이 주류를 이루던 조선전기까지의 조각과는 달리, 조선후기에는 상여 장식의 꼭두조각이나 분묘의 벅수, 각종 토속신상 등 다양한 종류의 조각들이 제작되었으며, 사찰에서도 나한상, 동자상, 동물상 등 경궤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러운 미감의 표출이 가능한 조각품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전대에 비해 보다 인간적인 조각으로 변하였으며, 희노애락의 감정표현도 좀 더 확대된 모습을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전시는 간결하고 단순함 속에 스며있는 생동감과 낙천성, 대담한 생략과 과감한 변형을 통한 익살 등등 조선후기 조각에서 다양하게 표출된 조형성과 미감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불교조각품 가운데서도 나한상이나 동자상 그리고 동물상 등 작자의 개성이 좀더 잘 표출될 있는 조각품으로 구성하였으며, 능묘조각에 있어서도 정형적인 틀에 얽매어 있는 석인과 석수를 제외하고 자유분방하고 원시적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는 벅수를 위주로 선택하였다.
삼차원의 공간 속에서 구체적 물질로 구현된 입체로서, 비례와 양감·질감 등의 구성체인 조각이, 조선후기라는 역동적인 시간을 만나 어떻게 반응하고 변화되었는지, 조선후기조각전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불감, 조선 18세기
불감과 불상 모두 나무로 제작되었고, 불상은 불감 안에 착탈이 가능하도록 놓여져 있다. 불감은 네 개의 여의두 모양의 다리를 둔 원판의 대좌 위에 올려져 있는데, 불상이 안치되는 공간인 반구형 불감 몸체와 두 짝의 1/4구형 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위 원추형에서 위쪽이 잘려진 형태인 절두원추형의 불감이다. 불감의 몸체와 두 개의 문은 각각 두 개씩의 경첩으로 연결되어 여닫게 만들어져 있다. 두 짝의 문을 닫으면 전체가 구형을 이루게 되며, 정면에는 자물쇠 장치가 되어 있다. 불상은 상현좌 위에 결가부좌한 좌불상으로, 불상과 대좌는 하나의 나무로 조각되었고, 두 손은 별도로 만들어져 팔에 삽입되어 있다. 불상 밑면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나무판으로 복장 구멍을 막아 두었다. 불감의 양쪽 문 안쪽으로는 위에 두 군데, 아래에 한 군데 씩 접착제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화상을 붙였던 흔적으로 추측된다. 불상은 조선후기 좌불상의 전형적인 형태를 갖추고 있다. 얼굴은 정방형에 가깝고, 머리는 나발이며, 육계는 둥글넙적하여 머리와 구별되지 않는다. 정상에는 둥근 모양의 계주가 솟아 있고, 육계와 머리의 경계면에는 반달형으로 된 별도의 계주가 장식되어 있다. 옷은 오른쪽 상반부를 가려주는 복견의(복견의)를 안에 입었고, 오른쪽 어깨를 살짝 가린 통견(통견)의 대의(대의)를 밖에 입었다. 아래에는 주름모양의 장식을 한 승기지의 옷단이 드러나 있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시대 이래 여래상의 일반적인 착의법(착의법)으로, 부분적으로는 변형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왼쪽어깨에서 것넹겄 모양의 주름이 거의 사라진 것도 그중의 하나이다. 머리도 앞으로 약간 내밀었으나, 전시대의 불상에서처럼 아래로 숙이지는 않았고 정면을 향하고 있다. 앙련과 복련이 연접된 대좌의 연꽃 사이사이로 대의자락이 흘러들어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있는 상현좌도 조선후기 불상에서 보기 힘든 것이다.

꽃살문, 조선 17-18세기
꽃조각으로 살을 삼아 울거미를 채운 창호이다. 원래 모두 네 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번 전시에는 세 짝만 출품되었다. 네 짝 모두 괴석 위로 피어오른 모란꽃과 가지 사이사이에 앉아 있는 새들이 조각되어 있다. 모란꽃은 모두 활짝 핀 모습이지만, 여러 방향에서 본 모란꽃의 다양한 모습을 각기 묘사하고 있다. 옆에서 보아 잎 하나하나가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한 것이 있는가 하면, 위에서 보아 입체감은 없지만 전체의 둥근 모양이 잘 보이도록 한 것도 있다. 각각의 꽃살문은 울거미 안의 꽃살을 모두 세 개의 판을 잇대어 전체 판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는데, 넓은 판재를 사용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뒤틀림을 방지하고 부분적인 보수를 용이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잇대어 만든 판재 전체를 투각하여 배경이 되는 바탕면을 떼어버리고, 모란과 새 그리고 바위 만을 남겨두었다. 남겨진 주요부분은 다시 양각, 음각, 선조를 통하여 사실감과 장식성을 높여 주었으며, 채색을 베풀어 마무리하였다. 특히 바위부분은 옻칠을 한 후 돌가루를 붙여, 표면질감을 바위와 흡사하게 보이도록 처리하였다. 화조도의 구도를 그대로 차용하여 꽃나무와 바위·새 등을 정형적으로 배치하였고, 사실감있는 조각과 채색으로 화려하고 장식성 풍부한 꽃살문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였다.

나한좌상, 조선 17-19세기
불교조각은 각종 경궤와 인습에 의지하기 때문에 작가의 조형의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완벽한 인격체로서 경궤에 의한 제한이 많은 불보살상과 달리, 나한상은 경궤에 의한 제한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작가의 조형의지나 감정이 좀더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조상이다. 현존하는 많은 나한상을 보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희노애락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파안대소를 하고 있는 상도 있고 엄숙하게 토론하는 상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무심히 명상에 잠겨 있는 상도 있다. 진리 혹은 인체에 대한 자유스러운 해석의 여지가 나한상에는 어느 정도 열려 있었기 대문일 것이다.
이 나한상은 20㎝ 가량의 작은 나한상으로 나한전에 봉안되었던 오백나한상의 하나로 추정된다. 결가부좌하고 두 손은 모아 선정인을 짓고 눈은 반쯤 감아 선정에 든 승려의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오른쪽 어깨에 대의 자락의 일부를 걸쳐두었으며, 가슴에는 군의를 묶은 끈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는 복제는 조선후기 조각상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목조순검꼭두, 조선 19세기말-20세기초
19세기말 좌우 포청(포청)이 경무청(경무청)으로 바뀌면서 포졸은 순검(순검)으로 바뀌었다. 그에 따라 복제도 모두 양식으로 바뀌었는데, 머리엔 챙이 달린 모자를 썼고, 단추가 달린 옷을 입었으며, 폭이 좁은 바지와 구두를 착용하게 되었다. 이 꼭두는 당시 순검의 모습을 본 따 만든 것으로, 옷과 모자의 남색은 모두 박락되어 버렸다.

조선 17-18세기, 사자형법고대
사찰에서 쓰는 법고를 받치는 좌대이다. 지금은 하부의 사자받침과 간주목만이 남아 있지만, 원래는 간주목 위에 연엽을 받침삼아 북이 놓여져 있었을 것이다. 좌대는 한 마리의 포효하는 사자로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사자좌를 갖고 있는 법고 또는 업경은 전각 안 주존불이 안치된 수미단의 좌우에 대칭으로 서도록 배치된다. (도 17)의 법고대와 같이 서로 중앙을 향해 마주 서서 머리는 직각으로 돌려 전각의 전면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자처럼 얼굴을 왼쪽으로 돌린 경우는 불전 주존불의 왼쪽에 배치된 법고이다. 정면을 향하여 직각으로 돌린 얼굴에는 귀가 양옆으로 길게 늘어져 있고, 부릅뜬 두 눈이 툭 불거져 있으며, 입은 크게 벌려 으르렁거리고 있다. 턱밑에서는 네 줄기 수염이 힘차게 뻗어나와 있고, 양쪽의 뺨에서 나온 두 줄기의 수염은 과감하게도 축 늘어진 두 귀를 휘감고 있다. 정면으로 돌린 얼굴과 몸체 사이에는 길게 늘어진 귀와 턱과 뺨에서 나온 수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자칫 밋밋하게 남겨질 수 있었던 목부분의 공간감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짧고 두꺼운 네 발은 힘차게 땅을 딛고 서 있는 안정된 느낌을 주기에 족하다. 뒷발 뒤쪽으로 솟아오른 서기어린 털은 날렵하고 역동적으로 뒤로 쪽 뻗은 꼬리와 다리 사이의 빈 공간을 보완해 주면서 전체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턱, 뺨, 뒷발 그리고 꼬리에 뻗쳐오른 갈기와 털은 끝부분이 둥글게 말려있는데, 군데군데에 배치하여 줌으로써 전체에 통일감을 주고 있다. 사자의 등에는 배에까지 늘어지도록 긴 안장을 올려두고, 안장의 위에는 연엽형의 얇은 받침을 두었으며, 법고대의 간주는 이 위에 올려져 있다. 이같은 연엽형으로 얇은 받침으로 삼는 것은 석비의 귀부 위에 놓이는 연엽형 받침이나, 장명등 옥개의 연엽형들과 동일한 모티프이다.

조선 17-18세기, 사지받침촛대
사자 좌대에 원통형의 용조각 촛대가 올려져 있는 것으로, 사자형 좌대와 대나무 마디 모양의 촛대받침 기둥이 하나의 나무로 만들어졌고, 용조각 촛대는 별도의 나무로 만들어져 받침 위에 삽입되어 있다. 좌대의 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장난스럽게 뜨고 있는데, 양쪽의 사자는 마주보는 모습이 아니라 한 방향을 향하고 있어 이채롭다.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머리는 정면을 향해 직각으로 꺽어 천연덕스럽게 앞을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황색 바탕에 붉은 반점이 있고, 다른 하나는 청색바탕에 남색 반점이 찍혀 있다.
사자의 등에는 연꽃 받침이 양각되어 있고, 그 위에 대나무 줄기를 모방한 받침대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그 끝에 얇고 둥근 모양의 촛대받침이 놓여 있다. 두 촛대는 모두 같은 크기의 원통형으로 아래 위에 앙련대와 복련대가 돌려져 있으며, 맨 위에는 여의두문이 양각되어 있다. 아래 위의 앙복련대 사이의 가운데 부분에는 용이 촛대를 휘감고 있는데, 청색사자 위의 청룡과 황룡이 어울린 촛대에는 구름 속에서 날아다니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황색사자 위의 황룡이 조각된 촛대에는 연꽃·연잎 등이 뒤엉킨 연못 속에서 역동적으로 휘감긴 모습이 조각되어 차이를 보인다.
사자, 용 등은 모두 불교미술품에 많이 등장하는 불교적인 모티프로서 이 촛대는 절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생각된다.

소통, 조선 17-19세기
소통이란 불교의식을 할 때 다 읽고 난 발원문이나 소문(소문)을 넣어두는 통이다. 보통 불전 가운데 위치하는 불단의 좌우에 둔다. 이 소통은 통도사에 전래되어 오는 것으로, 아름다운 색채와 조각으로 조선후기 소통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소통은 아래의 받침부분과 위의 통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아래 장방형의 나무판 위에 세 마리의 사자가 앉아 있는데, 이들이 앞발을 들어 소통을 들고 있는 것이다. 통은 대나무 줄기를 본 뜬 네 개의 기둥 사이에 아름다운 무늬가 조각된 나무판으로 막은 것으로, 아래에는 연봉과 연잎으로 장식된 난간에 둘러싸여 있다. 소통 속에는 긴 나무막대기가 가운데 꽂혀 있어 소문을 꽂게 되어 있다. 원래 위에는 뚜껑이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멸실되었다.
받침의 사자는 모두 세 마리로, 앞쪽을 향해 앉아 있는 두 마리는 앞쪽의 한 발로 소통을 받치고 있으며, 뒤쪽의 한 마리는 앞발 두 개로 받치고 있다. 기본적인 착상이나 구조는 신라·고려시대의 사자석등·석탑의 그것과 동일하다. 사자는 작은 체구에 의도적인 축소와 과장으로 친근하고 익살스러우며 귀여운 느낌이 나도록 하였으며, 장인의 자유분방하고 낙천적인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 소통의 몸체부분은 앞뒤면이 각각 세부분으로 나뉘어졌다. 앞면은 위로부터 구름 속에서 노니는 용, 모란꽃, 연꽃이 차례로 조각되어 있으며, 뒷면은 봉황, 꽃, 연꽃의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모두 투조에 가까운 고부조로서 적색, 녹색, 백색 등으로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상형좌대, 조선 17-18세기
코끼리를 좌대의 받침으로 삼고, 코끼리의 등 위에 장방형의 좌대를 올려두었는데, 좌대 위의 존상은 멸실되었다. 코끼리 조각은 나무를 재료로 조각한 후 채색하여 마무리 하였는데, 엉덩이 부분은 나무로 조각을 한 후, 일부 장식은 흙으로 다시 도드라지게 양각하고 표면을 마포(마포)로 바른 후 채색하였다. 앞의 두 발은 앞으로 뻗고 뒤의 두 발은 반 쯤 구부려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앉아 있으며, 머리는 오른쪽으로 돌려 코를 오른쪽으로 강하게 틀어 힘차면서도 장난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석가삼존상에서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은 석가여래의 오른쪽과 왼쪽에서 각각 코끼리와 사자를 탄 모습으로 협시하게 되는데, 코끼리 좌대는 중앙으로 몸을 향하고 머리는 직각으로 돌려 정면을 바라보게 된다. 즉 몸은 측면을 보여주게 되고 머리는 정면을 보여주게 되며, 여기에 보현보살이 정면을 향하여 앉게 되는 것이다.
출처 : 로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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