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빈칸
2023년 12월 26일 ~ 2023년 12월 28일
# 낯설거나 익숙한
삶의 시작, 태어나는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의 시점으로 보면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관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저 너머의 반대편,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아이가 노인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시점으로 이동하면 이 세계는 철저하게 묶인 운명론적 세계관이 만들어진다. 어느 곳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세계는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작품이 제작될 때, 밑작업을 한 하얀 캔버스와 완성된 작품 사이에는 과정의 시간이 자리한다. 상상하거나 구상한 세계를 화면에 온전히 담기 위해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된다. 손과 눈은 생각과 매체의 온전한 만남을 위해 과정에 시간에서 끊임없이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이와 같은 과정의 시간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더불어 시간의 물리적인 한계 안에 있는 우리 인간의 몸, 정신, 감각의 ‘넘나들기’를 시도한다.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예술가들은 서로의 낯선 움직임과 시선을 포용하고 밀어내면서 내재되어 있는 시간과 공간의 틀을 허물고 변화의 전환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서로 반대편에 있는 낯섦과 익숙함이 교차하는 조금은 다른 체험과 경험의 여정이다.
# 수축과 이완
근래 들어 날씨가 변해가는 절기, 계절의 이미지와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 우리의 몸은 계절에 따라 수축과 이완을 오가면서 날씨, 온도, 그리고 습도에 반응한다. 하지만, 최근 우리 몸에 새겨진 오래된 반응의 패턴이 무너지고 있다. 영상과 영하의 온도는 맥락이 없는 편차를 만들어내고 공기를 유영하는 수증기는 한 겨울에도 장마철과 같은 비를 내리게 한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급격하게 진행되는 온난화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부쩍 바이러스에 약해지고 있고 전보다 다른 공기를 접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위축된 몸과 정신을 마주해야 한다. 그렇기에 불안과 강박은 더욱 알 수 없는 곳에서부터 자라나게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4인의 창작자들은 여러 층위에 흩어져 있는 감각의 단서들을 모아 교집합의 공간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영역에서 시선과 소리, 촉감과 냄새 등의 결합과 해체를 실험하면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이는 경계를 무너트리는 동시에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는 제6의 감각(오감을 초월한 감각)을 만들어내고 발현하게 한다. 시에서 주로 사용되는 공감각일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 묶인 오감에서 벗어나는 탈감각의 세계일 수도 있다.
# 시공간의 초월
초월은 결국 내재된 감각의 변곡점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시간의 반복에 따라 일정한 한계를 느낀다. 물리적인 공간을 초월할 수 없기에 일정한 면적과 부피 안에서 활동할 수 있다. 무한히 반복되는 패턴의 감옥에 우리의 몸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루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 패턴의 기호들은 수많은 곳에 흔적을 남긴다. 아침, 점심, 저녁, 그리고 1부터 12까지의 숫자로 표기된 시계, 안방과 거실, 그리고 욕실의 용도 등이 그렇다. 편의와 효율을 위해 만들어진 이 수치와 좌표의 감옥에서 우리는 늘 초월을 꿈꾸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창작자 4인은 몸이라는 공통의 오브제를 공간에 편입하고(이유채), 바탕과 배경이 되는 소리를 통해 공간의 낯선 문(송유담)을 만들어낸다. 더불어 자신의 몸을 통해 잠재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너머의 움직임을 보여주고(송민선), 피부에 맞닿는 이불을 통해 느껴지는 나른함은 즉흥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이들은 사각지대처럼 우리가 지나쳤던 가까운 일상에서 초월의 문을 찾고, 자신의 피부를 감싸고 있는 환경에 작은 파문을 만들어낸다. 이불, 별자리, 멜로디, 몸짓. 이들의 작업은 독립성 짙은 개인의 작업에서 출발했지만, 전시공간에서 서로가 서로의 배경과 연결점이 되면서 층층이 겹치는 시간선을 만들어낸다. 각자의 말과 특유의 감각이 서로의 레이어로 스며들어 하나의 초월적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경계, 몸과 공간의 경계,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선은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상의 벽이다. 이 벽은 때때로 시간과 공간의 한정된 부피를 좁히며 우리의 내면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들 4인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초월은 벽을 허무는 물리적인 영역의 확장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밀도 높은 너머의 시공간을 향해 나아간다. 뛰어넘거나 극복하는 차원의 초월이 아닌 고요하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드넓은 가능성의 초월이다. 때때로 겪을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와 한정된 시간의 감옥은 무한에 대한 욕망과 전진보다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작용을 지각하는 것에서 열린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기획: 송민선, 전다빈
참여작가: 송민선, 전다빈, 이유채, 송유담
글: 박소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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