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도스
2019년 9월 4일 ~ 2019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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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헝클어짐
김치현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최방실의 작품은 원초적 쾌를 불러일으킨다. 물질을 다른 물질의 표면에 칠하기로 결심한 순간 손끝이 닿는 표면의 질감은 행위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예술 행위의 주도권을 휘두르며 작가는 그 기원적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쾌의 무아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즐기고 있었으며 이 자각의 순간에도 계속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는 언뜻 예술에 대한 모호하고 흔한 고찰일 수 있지만 현대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에게 던지는 날카로운 물음이기도 하다. 환경-도시라는 경계선이 뚜렷한 공간에서 제각기 움직이는 우리에게 그 행위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에 잃어버린 이제는 목록조차 만들 수 없는 것들을 의식하게 해주는 환기로도 볼 수 있다.
최방실은 자신의 작업을 놀이라고 부른다. 작가는 선을 긋고 형상을 그리는 창작 행위 자체를 유희한다. 각각의 표면을 채우고 있는 조형은 불규칙적이면서도 어느 순간 반복된다. 그리고 동시에 저마다의 뚜렷한 성질을 구분한다. 마치 승부가 한창인 체스판을 보듯 관객들은 개별 패널의 서로 다른 역할과 방향성을 느낀다. 패널들은 서로 명확한 그리드로 구분되어 있지만 각 패널을 채우고 있는 유동성은 경계선을 뛰어넘으며 전체적으로는 경기를 관전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처럼 보는 이의 시선을 리드미컬하게 유도한다.
목재의 표면에 흡수된 잉크의 번짐과 결을 타고 흐르며 갈라지는 선의 형태는 질감이 주는 따뜻한 색감으로 인해 마치 동굴에 그려진 벽화를 보는 듯하다. 그 유동성을 따라가다 보면 차갑고 매끄러운 거울의 표면을 파도에서 튀겨진 파편처럼 뒤덮은 물질의 요철을 느낄 수 있다. 관객의 시선은 건조한 나무의 표면에 흘려진 잉크와 함께 흡수되고 거울에 비친 주변 사물의 형상과 함께 뒤섞인 후 작품으로 인해 인지하지 못한 자신의 형태를 향해 반사된다. 칸을 따라 계속해서 작품을 시선으로 더듬어가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작품의 생경한 촉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작가의 행위에서 비롯된 작품을 촉각으로 느끼며 작가와 관객은 원초적 쾌라는 매듭으로 연결된다.
최방실의 작업은 번짐과 흐름, 뿌려짐 같은 효과를 그저 우연에서만 기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효과를 차갑도록 정교하게 제어하고 계산적으로 재배치함으로 질서와 혼돈에 힘을 적절히 배분하고 공존시킨다. 이러한 양면성과 반전들은 사각형의 경계선마저 유기적으로 느껴지게 하며 동시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잉크의 불규칙한 유동성도 박제시킨다. 병과 튜브에 담겨진 채 형태를 지니지 못했던 액체는 흐르고 뿌려지다 결국 말라붙어 물질성을 잃고 작품이 지닌 형상의 일부로 고정되며 기록된다. 이러한 매체의 본질은 앞서 이야기한 우리가 계속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는 작가의 질문과 맞아 떨어진다. 그렇게 각각의 물질을 작품으로 승화 시키며 행위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원초적 쾌-놀이를 넘어서 의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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