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1년 1월 26일 ~ 2021년 5월 9일
박래현(1920-1976)은 20세기 한국화단에 선구적 자취를 남긴 여성 미술가로서, 판화와 태피스트리를 넘나들며 기존 동양화의 관습을 타파해 나갔다. 하지만 오십 대에 갑자기 타계한 뒤 그의 예술은 점차 잊혔고 오랫동안 운보 김기창의 아내로서만 기억되었다.
박래현은 여성 미술가가 드물던 시절에 육아와 가사에 쫓기면서도 예술가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예술의 소재를 찾고, 가사 노동에서 요구되는 수공(手工)을 응용해 작품의 표현 기법을 확장시켰으며, 여성, 어머니,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을 토대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완성하였다.
이번 전시는 여성에게 요구된 역할을 수용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종국에는 성공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한 우향(雨鄕) 박래현의 삶과 예술을 소개한다. 청각 장애를 가진 남편 김기창을 위한 영어·한국어·구어(口語)의 삼중통역자이자, 회화·태피스트리·판화의 삼중통역을 시도했던 예술가 박래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1부 한국화의 ‘현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박래현은 일본에 건너가서 일본화를 배웠다. 유학을 마치고 해방을 맞이한 박래현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는 일본화의 자취를 지우고, 관념적인 전통회화를 답습하지 않으며, ‘현대’에 어울리는 ‘한국화’를 창작하는 것이었다.
박래현은 1950년대 한국에 유입되는 서양화의 물결을 참고하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고민하며 새로운 도전을 거듭했다. 1956년에 《제8회 대한미협전》에서 <이른 아침>으로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에서 <노점>으로 연이어 대통령상을 타면서 화단의 정상에 선 박래현은 화가로서 독자적인 기반을 마련하였다.
2부 여성과 ‘생활’
박래현은 가사에 쫓겨 작품 제작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지 번민했다. 그는 남편과 작업실을 나누어 쓰고 부족한 시간을 아껴 작품을 제작했으며, 부부전과 백양회 회원전을 중심으로 의욕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화가로서 명성을 얻고 여성들이 선망하는 대상이 될수록 세간은 그를 ‘김기창의 아내’, ‘김기창과 같은 길을 가는 부인’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박래현은 가사의 굴레와 김기창의 그늘에 갇히지 않고 생활 속에서 예술의 주제와 재료, 기법을 찾아내며 새로운 동양화를 탐구했다.
3부 세계 여행과 ‘추상’
1960년에 박래현은 해방 후 처음으로 해외를 방문했다. 대만, 홍콩, 일본을 돌면서 추상화의 물결을 확인한 뒤 본격적으로 추상화 제작에 몰두했다. 그리고 세계무대로 눈을 돌렸다. 1964년과 1965년에 미국 순회 부부전을 열고, 미국, 유럽, 아프리카를 돌면서 서구 미술과 세계 문명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해외 박물관의 고대 유물에서 수공의 아름다움과 토속적인 멋을 발견하였고, 찬란한 황금빛 유물과 전통 가면을 재해석해 구불거리는 황색 띠로 가득 찬 새로운 추상화를 탄생시켰다.
4부 판화와 ‘기술’
1967년에 박래현은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하고 미국을 방문했다. 그리고 1974년까지 뉴욕에 체류하며 태피스트리와 판화를 연구했다. 그는 동판화의 기법을 하나씩 익히며 표현 방법을 확대해 나갔고, 정교한 기술을 모두 익힌 뒤 다시 기술로부터 자유로워진 작품을 선보였다. 귀국 후에는 동양화에 판화 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지만, 그의 실험은 갑작스러운 병마로 인해 중단되고 말았다.
출처: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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