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
2026년 4월 8일 ~ 2026년 4월 30일
영화를 볼 때 ‘여기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저것은 무엇인가?’ 하는 따위의 실존적 물음을 가질 때가 있다. 이번 기획전은 그런 종류의 여행이다. 이 낯선 감각을 만들어내는 영화들의 결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긴 러닝타임 끝에 도달하는 영역이 그러하고, 논리로 이해되지 않은 채 우리의 지각을 흔들어 놓는 이미지들이 그러하다. 이번 기획전은 후자(지각의 전도)에 방점을 찍은 하나의 여정이다. 우리가 떠나는 이 새로운 영역은 대체로 흉폭하게 우리를 밀어 넣을 것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을 낯선 세계로 데려가는 매체였다. 때로 그 세계는 제국주의적 시선이 투영된 착취의 역사이기도 했으나, ‘낯선 곳’은 언제나 인간을 강력하게 매혹하는 대상이었다.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들이 현실 너머 미지의 공간과 개념들을 가시화했다면, 어떤 영화들은 타인의 삶과 문화를 엿보여주고 때로는 전쟁과 폭력, 환각과 공포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감각의 영역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번 기획전 <트립 시네마: 물질, 접속, 조립>은 그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직접 가보지 못한, 가봤더라도 쉽게 말로 옮기기 어려운, 혹은 너무 위험해서 서둘러 떠나온 영역을 탐구하는 작품들을 상영한다.
여정의 출발점은 1960년대다. 반문화의 확산 속에서 약물은 낯선 감각으로 들어가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로 여겨졌다. 약물을 통해 새로운 의식을 발견하고 ‘새로운 인간’을 제안하려 했던 거창한 목표는 국가나 자본의 탄압으로 실패한 듯 보이지만, 이때 경험하는 황홀 또는 환각의 영역은 종종 인간을 붕괴시키고 착란 증상을 일으킨다. 어떤 점에서 파국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이번 기획전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섹션인 ‘물질’은 외부의 어떤 것들이 내면으로 침투하여 지각의 착란을 만들어내고, 또 동시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영화들이다. 로저 코먼의 <환각특급>은 사이키델릭 감각과 형식이 자아내는 생생한 에너지를 스크린에 담아낸 대표적인 출발점이다. 다음 작품은 <환각특급>에 출연했던 피터 폰다, 데니스 호퍼, 각본가로 참여했던 잭 니콜슨이 멋들어진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미국을 가로지르는 <이지 라이더>이다. 이 작품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대표작이며, 베트남전쟁과 정치적 암살 등으로 환멸과 불안을 겪던 미국 반문화 세대의 정서를 길 위의 이미지로 압축해 낸 작품이다. 또, 감각적 과잉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홀리 마운틴>, 헌터 S. 톰슨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하여 광기의 라스베가스 그리고 미국을 조롱하는 테리 길리엄의 <라스베가스의 공포와 혐오>, 전쟁과 약물로 인한 악몽을 담아낸 에이드리언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 캉딩 레이(Kangding Ray)의 육중한 전자음과 모래바람, 이동의 피로가 맞물리며 트랜스 상태로 우리를 이끄는 올리베르 라셰의 <시라트>, 마지막으로 1976년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대마초의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제작했으나 그 내용이 형식과 불화하는 문화영화 <대마초의 해독>을 상영한다.
두 번째 섹션인 ‘접속’은 인간이 미디어와 결합해 미디어의 신호와 작용과 동화되는 인물들이 등장 또 인간의 조건, 윤리들을 질문하는 작품들이다. 대체로 바디 호러 장르의 영화들이다. 가교역할을 하는 작품은 켄 레셀의 <상태 개조>다. <상태 개조>는 젊은 윌리엄 하트가 환각을 만들어내는 물질을 주입하고 탱크 안에 들어가 인류의 기원을 탐구하는 작품으로 켄 러셀의 ‘지킬 앤 하이드’다.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비디오드롬>과 <엑시스텐즈>는 미디어를 단순한 도구, 또는 신체의 확장이 아닌 몸과 의식을 변형시켜 그 본성 자체를 위협하고 붕괴시키는 영화들이다. 캐서린 비글로우의 <스트레인지 데이즈>는 타인의 기억, 경험을 상품처럼 유통하는 세계를 통해 접속의 윤리를 파고든다. 그리고, 츠카모토 신야의 <철남 1>은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더스트리얼 그로테스크 그 자체다. 마지막으로 <코야니스카시>는 지금이야 익숙한 기법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생경한 기법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만든 최면적인 작품으로 기계가 이끄는 방식의 몰입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마지막 섹션인 ‘조립’은 외부도 현실도 실재도 흐릿하다. 앞선 섹션들에게 신체를 중심에 두고 변화에 집중했다면 이 단계에서 주도권은 스크린 그 자체다. 즉 영화 자체가 표면으로 감각을 만들고 재배열한다. 이 섹션에서 중요한 것은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일들이 아니다. 대체로 내러티브보다 형식이 전면에 드러나며 접속과 달리 외부 현실을 지시하는 선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반면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세계는 평평한 듯 참 매혹적이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물질’에도 적합한 작품이지만 이번 기획전에서는 빛과 추상적 패턴을 통해 관객을 장악하고 영화를 지각하는 틀을 재구성하려는 야심에 방점을 두었다. 또, 집단적 무의식과 기술이 결합하여 현실 자체가 어떻게 무화되는지 보여준 사토시 곤 감독의 <파프리카>, 과장된 합성 이미지로 그자체로 평평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워쇼스키의 <스피드 레이서>, 죽은 자의 시점을 따라 유영하듯 도쿄를 떠다니는 가스파 노에의 <엔터 더 보이드>, 라스베이거스라는 매혹의 공간을 인공적인 유기물로 구축하는 캠프 미학의 폴 버호벤의 <쇼걸>, 네온 색감과 스크릴렉스의 음악, 그리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루프로 청춘이 얼마나 쉽게 휘발되는지를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낸 하모니 코린의 <스프링 브레이커스>, 마지막으로 복수를 감행하는 한 남자의 분노를 80년대 헤비메탈 앨범 커버와 같은 초현실적 비주얼로 형상화한 파노스 코스마토스의 <맨디>까지 상영한다.
지금의 관객들, 아니 ‘나’의 하루를 돌아보자. 집으로 돌아가 숏폼 영상을 넘기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 재생과 추천 알고리즘에 몸을 맡기며, X의 온갖 자극적인 영상들의 진위를 그록(Grok)에게 되묻는다. 이미 우리가 지각하고 접하는 것들에 대한 신뢰는 흔들리고 매 번 재조정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트립 시네마>는 환각을 재현하는 영화들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를 흔들고 다른 것과 접속시키고 새로이 배열해 가는 과정을 경험케 한다. 이때 겪게 되는 낯설고 기괴한 감각들은, 도리어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혼란스러운 환경을 반추하게 만들 것이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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