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곡미술관
2026년 4월 3일 ~ 2026년 7월 26일
«파리 보이지 않는 파리 Paris Unseen» 전은 수 세기에 걸쳐 시간과 기억이 축적된 도시, 파리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역사적 건축물과 풍부한 문화유산, 예술적 전통을 지닌 파리는 오랫동안 세계인의 상상력 속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 왔으며, 오늘날에도 새로운 사유와 창조적 가능성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도시이다.
사진의 역사 또한 이러한 도시의 변화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1826년 조제프 니세포르 니엡스 (Joseph Nicéphore Niépce, 1765–1833)가 빛을 이용해 이미지를 고정하는 데 성공하고, 1839년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 1787–1851)가 다게레오타입을 발명하면서 사진은 도시의 풍경과 삶을 기록하는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이후 약 2세기에 걸쳐 사진은 기술과 감각의 변화 속에서 그 표현 방식과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다.
이번 전시는 관광 도시로 소비되어 온 파리를 넘어, 파리의 또 다른 모습을 조망한다. 사진, 영상, 설치, 사운드를 통해 ‘그랑 파리(Grand Paris)’ 도시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삶의 양식과 변화의 양상을 살핀다. 과거의 흔적과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속에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나란히 맞닿으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전시에는 테스트 프린트를 바탕으로 서울에서 제작된 디지털 프린트와 작가가 직접 제작한 빈티지 프린트가 함께 소개된다. 이러한 공존은 사진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적 객체로 존재하는 매체임을 환기한다.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시아노타입(cyanotype), 은염 인화(gelatin silver print)등 다양한 전통 인화 기법은 오늘날에도 작가들의 실험 속에서 활용되며, 빛과 화학 반응, 그리고 물질의 흔적이 결합되는 사진의 촉각적·물질적 차원을 드러낸다. 또한 일부 작품은 에디션 없이 제작된 단일 작품으로, 사진이 하나의 고유한 예술 작품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오늘날 사진은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기반 이미지 생성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코드와 알고리즘을 통해 생성되는 이미지는 단순한 현실의 재현을 넘어, 데이터와 지각, 상상이 교차하는 새로운 창작의 영역을 연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진은 전통 인화의 물질적 경험과 동시대 기술 환경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매체로 이해될 수 있다.
파리는 이제 끊임없이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현재의 도시로 새롭게 인식된다. 전시에는 3명의 한국 작가를 포함하여, 다양한 국적의 작가 51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의 시간과 일상의 풍경을 탐구하며, 하나의 도시를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이 공존하는 장을 펼친다. 우리는 익숙한 풍경 너머에 숨겨진 또 다른 파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경험이 교차하는 도시, 곧 보이지 않는 파리(Paris Unseen)이다.
더 나아가 이 전시는 파리라는 타자적 시선을 통해 서울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초고속 성장과 도시 확장, 중심과 주변의 격차라는 조건 속에서 서울과 그랑 파리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맞닿아 있다. 따라서 이번 전시는 파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서울을 비추는 전시로 읽힐 수 있다.
(이수균, 성곡미술관 부관장)
1839년 어느 날 아침,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 1787–1851)는 오늘날 최초의 파리 사진으로 알려진 이미지를 촬영했다. 막 공개된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기술로 기록된 이 사진에는 당시 가장 번화했던 불바르 뒤 탕플 거리가 담겨 있지만, 긴 노출 시간으로 인해 움직임은 모두 사라지고 구두를 닦기 위해 잠시 멈춰 선 한 인물만이 남아 있다. 도시는 정지된 듯, 거의 유령과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이미지는 사진이 도시를 기록하는 새로운 시각적 언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의 ‘창밖 풍경’을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진은 오스만 이전의 파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당시 도시는 아직 도시 규제나 토지 투기, 정치적 격변의 영향을 본격적으로 받기 이전의 상태에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의 모습은 대규모 파괴보다는, 루이 필리프(Louis-Philippe d’Orléans, 1773-1850) 치하에서 랑뷔토 백작(Claude-Philibert Barthelot de Rambuteau, 1781–1869)과 제2제정기의 오스만 남작(Georges-Eugèe Haussmann, 1809–1891)의 도시 계획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 결과,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석조 외관이 이어지는 비교적 균질한 도시 경관이 만들어졌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파리를 특징짓는 시각적 질서를 이룬다.
이러한 도시 풍경은 오스만과 나폴레옹 3세(Charles-Louis Napolén Bonaparte, 1808-1873)가 구상한 도시적 이상 속에 고정된 듯 보이며, 부유하고 자신감 넘치던 부르주아(Bourgeois) 사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을 매혹시키는 것도 바로 이 이미지이다. 베네치아나 빈처럼,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사회의 흔적이 도시의 외형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리는 로마나 베네치아, 프라하와 달리 혁명 이전의 도시 구조가 두드러지게 남아 있는 도시가 아니다. 19세기 이전 건축물은 전체의 약 9%에 불과하며, 중심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오스만식 도시 모델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인식하는 파리는 이러한 균질한 경관, 즉 오페라와 에투알을 중심으로 한 도시 이미지에 기반한다.
한편, 실제의 파리는 이미 이 역사적 중심을 넘어 크게 확장되었다. 관광객들이 주로 접하는 파리는 여전히 이상화된 이미지에 머물러 있지만,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 바깥의 또 다른 도시이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할 때 마주하게 되는 풍경, 즉 ‘영광의 30년’ 시기에 형성된 도시의 확장된 모습은 경제 성장과 함께 구축된 대도시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시각적 평범함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였다.
20세기 말, 파리는 새로운 건축적 상징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퐁피두 센터와 루브르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은 이제 도시 풍경 속에 자리 잡은 현대성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의 많은 지역은 여전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선 속에서 보여지는 파리는 많은 사진가들의 작업 속에서 드러난다. 이름 없는 파사드와 조용한 거리, 주변부의 쓸쓸한 풍경, 임시 거처와 버려진 공간들은 도시의 현실과 불안정한 삶의 흔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때로는 작은 디테일 하나가 장면의 긴장을 드러내기도 한다.
보다 시적이고 상상적인 방식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작업도 있다. 이미지 위에 겹쳐진 텍스트, 반사된 하늘의 단편, 혹은 하얗게 가려진 쇼윈도우는 도시를 낯설고 시적인 장면으로 전환시킨다. 또 다른 작가들은 도시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예컨대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바라보던 이들이 드러낸 호기심과 불안, 그리고 매혹이 교차하는 순간과 같은 장면이다.
때로 이 도시는 또 다른 빛을 드러낸다. 튈르리 정원에서 일하는 정원사들, 퐁피두 센터 주변의 강렬한 색채, 혹은 불로뉴 숲의 평온한 풍경은 또 다른 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퍼 문화(La Sape)의 화려한 의상, 바가텔 공원의 황금빛 가을, 루브르의 기하학적 풍경, 그리고 에펠탑 기념품의 이미지는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의 순간을 드러낸다.
(알랭 사약, 퐁피두센터 전 사진부장)
기획: 성곡미술관 × 알랭 사약(전 퐁피두센터 사진부장)
참여 작가: 마리안 알팡, 카미유 에메, 장-크리스토프 발로, 프랑수아-마리 바니에, 가브리엘레 바실리코, 토마 부아뱅, 아들린 보마르, 프랑수아-자비에 부샤르, 모하메드 부루이사, 브로드벡 & 드 바르뷔아, 루이-폴 카롱, 스테판 쿠튀리에, 티보 퀴세, 베르나르 데캉, 가브리엘 데플랑크, 파트리치아 디 피오레, 톰 드라오스, 마르탱 도르주발, 베로니크 엘레나, 그레구아르 엘루아, 엘거 에서, 장-미셸 포케, 알랭 플레셰, 피에르 드 프누아유, 마이클 케나, 김미현, 보그단 코노프카, 구본창, 안나 말라그리다, 조프루아 마티외, 코린 메르카디에, 베르트랑 뫼니에, 사라 문, 보두앵 무앙다, 낸시 윌슨-파직, 마틴 파, 베르나르 플로쉬, 마리옹 푸시에, 조르주 루스, 자클린 살몽, 알렉산드라 세라노 & 시몽 포셰, 안-리즈 쇠스, 스미스, 성지연, 자오 쑨, 레베카 토파키안, 파트릭 투른뵈프, 파올로 벤투라, 기욤 쥘리
출처: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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