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가변크기
2019년 10월 31일 ~ 2019년 11월 14일
눈-빛이 일렁이는 곳
안성은(미디어 비평, 큐레이터)
“우리는 누구나 어떠한 순간 위에 있다.”
-작가 노트
한영백은 일상의 단면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스트릿 스냅 사진을 찍는다. ‘순간선(순간을 마주하고 기록하는 시선)’이라는 작가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영백에게 길 위의 순간을 기록하는 일과 그 시선에 대한 생각은 오랜 주제이다. 작가가 몰두한 일상의 파편화된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개인전 《길 위의 순간선(불타는 카메라)》에서는 그가 유학 후 구직을 위해 도쿄에 머물렀던 지난 2017년 촬영한 사진들 중 일부를 소개한다. 붉은 빛으로 얼룩진 23장의 사진은 촬영 시에는 미처 몰랐던 카메라 고장으로 빛이 새어 들어가 노광 된 필름에 담긴 도쿄의 풍경들이다. 필름이 빛에 노출되면 흔히 ‘필름이 탔다’고 말하는데 전시 명의 부제인 ‘불타는 카메라’는 여기서 착안하여 붙여졌다.
작고 휴대가 용이한 필름 카메라 ‘후지 티아라 II’를 들고 거리로 나선 작가는 도시의 장면들을 기록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에 관한 기록을 이어왔다. 지하철에서 잠이 든 아이와 노인,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사람이 가득한 거리,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람들의 표정 같은 것들. 고감도 필름으로 기록되어 입자가 거칠고 노이즈 범위가 넓은 사진 속 거리 곳곳에 불꽃이 인다. 사진의 면을 따라 겹쳐진 붉은 빛은 때론 비처럼, 바람처럼 거리에 피어오른다. 평면 위로 얹힌 붉은 빛에 휩싸여, 오늘의 광경은 어제와 같지 않다. 채도가 높고 노란빛이 강하게 도는 코닥 울트라맥스 400이 쓰인 이 사진들은 저해상도 특유의 색 면이 잘게 분절된 표현이 강조되어 입자가 굵은 점묘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는 카메라를 통해 객관적 대상을 포착하지만, 그 결과물은 그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관념적 대상이 된다. 여기에 사용한 카메라의 선예도나 해상력, 필름 고유의 색채와 감도 등이 더해지면 또 다른 심미적 필터가 씌워진다. 이는 조형성과 의미화의 과정에 개입되는 주된 요소로 작용하여 표현과 해석의 차이를 낳는다.
한영백의 고장 난 카메라가 부여한 우연적 효과는 일상과 포착 사이에 반쯤 스며든 레이어로 존재하며, 우리를 둘러싼 일상 풍경에 대한 인상적 피드백으로 기능한다. 스트릿 스냅 사진은 솔직한 표현 방식이다. 연출되지 않은 비 계획성, 그리고 순간 포착하지 않으면 사라질 한시적 장면을 기록한다. 스냅 사진을 관람하는 즐거움 중 하나는 정지된 순간으로 기록되었으나 거리 속 사람들의 모습은 다음 동작을 예견하게 하는 움직임이 함께 담겨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진 속 공간에 시간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동적-정적 특성을 함께 가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읽힌다.
일상의 단면이란 때론 비일상적 풍경에 가까워서 익숙함과 동시에 낯설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거기에 사진의 힘이 있다. 이어 ‘불타는 카메라’는 거리와 풍경이 한 사람의 시선에 의해 어떤 겹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들여다보게 한다. 층층의 시선, 눈-빛으로 일렁이는 그 길을, 고요히 들여다 보길 바란다.
출처: 공간 가변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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