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아트스페이스
2016년 2월 16일 ~ 2016년 2월 22일
Still from Island, 2015, HD video, sound, 28 minutes 35 seconds
타자를 본다는 것, 그 의미에 관하여...
허경란 작가가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는 작업은 섬(island)이라는 주제로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을 한 독특한 영상 작업이다. 영상에는 국토 최남단의 섬 마라도에서의 일상 풍경과 삶의 모습이 주로 담겨있는데, 작가는 이를 빠른 화면 전환보다는 긴 호흡의 영상과 심도 깊은 촬영 기법을 사용하여 특정 지점을 부각시키지 않고 눈에 보이는 상황 전체를 차분하게 읽어가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영상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곳에 보이는 평범한 일상들 사이에서 하나 둘 궁금한 부분들을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영상 가운데는 관광객 사이로 흰 개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누워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관광객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동안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가 버리고 텅 빈 공간이 되자 개 한 마리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떠들썩한 관광객들이 오가는 동안에 꿈쩍도 않고 누워있었던 것을 보면 그 개는 어딘가 아프거나 극도로 피곤하여 기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후 계속되는 영상을 보면 비가 오는 벌판에서 혹은 관광객들이 오가는 길에서 홀로 돌아다니고 있는 이 흰 개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상황에서는 이 개가 어디서 온 것인지? 먹이는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영상의 일부에는 이 개가 집에서 기르는 다른 개들로부터 쫓겨나기도 하고 다른 개들로부터 공격 당하기도 하는 장면도 보인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털 사이로 다른 개에 의해 물린 자국이 보이거나, 집에 사는 다른 개들이 고기로 맛있게 먹이를 먹는 장면이 교차되어 보게 될 즈음에는 그 흰 개에 대한 궁금증은 점차 안타까움으로 바뀌게 됨을 느끼게 된다.
이 영상물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이나 다른 대상들 역시 흰 개의 경우처럼 무심코 보게 되는 섬의 일상적 모습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흰 개의 경우처럼 긴 호흡 아래 깊은 눈으로 이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는 그러한 시각 방식 혹은 태도를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영상을 보다 보면 현대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일상에서의 습관처럼 욕망을 따라 보고 싶은 것에만 쉽게, 그리고 너무나 자주 눈을 돌려 사물이나 대상을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든다. 만일 주위의 대상들을 습관처럼 흘려 보내지 않고 이 영상물을 담아낸 카메라의 눈처럼 좀 더 긴 호흡으로 유심히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일상 가운데에서도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좀 더 깊이 주위를 바라보게 된다면 내 주위에도 역시 이러한 의문스러운 점들이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해 생각을 시작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면 이처럼 의문스러운 점들을 자세히 보게 된다는 것은 순차적으로 계속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일이 동반되는 일정한 사유적 흐름의 프로세스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가 될 것임을 깨닫게 된다. 즉 보는 행위는 보는 대상과 관계하는 행위이며 사회적 윤리적 행위를 촉발시키는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허경란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 관련하여 그의 작업에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철학적 관점을 일정부분 인용하고 있음을 밝힌바 있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윤리적 책임에 대한 시각이 그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눈으로 타자를 보는 행위 자체는 타자를 향한 책임에 대해 각성하는 순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카메라의 앵글로 대신하게 되는 관찰자의 초월적 위치를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것은 관찰자의 윤리적 위치에 대해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시각예술에 있어서 본다는 행위는 작업의 가장 근원적인 토대가 된다. 작가는 이 근원적 행위를 윤리철학적 수준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태도로 작업에 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 의하면 이 작업을 하였던 시기에 세월호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하고 희생당한 이들을 매체를 통해 보았을 때의 미묘한 내적 변화는 일정하게 이번 작업을 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인간이 타자와 관계한다는 것, 세계 속에서 본다는 것에 대한 심층적 의미를 향해 질문하는 방식의 작업을 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는 말이다. 눈으로 보는 행위는 안구를 통해 타자를 대면하는 것이고 접촉하는 행위이다. 물론 관찰자와 피관찰자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 즉 공간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결국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주체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이미 전제하고 있다는 것이며 우리는 그 사이의 거리를 공간이라고 부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도록 만든다. 이때 타자를 보는 행위는 주체가 타자 발견하고 만나는 행위이며 이를 다시 말하면 거리를 뛰어넘어 안구 속 망막이라는 피부 면을 통해 타자를 접촉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주체가 타자를 본다는 것, 만난다는 것은 레비나스의 사유방식에 의하면 타자의 얼굴을 보는 행위이며 ‘나’를 통해서가 아닌 ‘너’를 통해서 진정한 주체를 발견하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고통 받는 타자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나의 피부 안으로 들어온 타자의 고통을 감각하고 이를 발견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말이다. 허경란 작가는 이러한 방식으로 섬(island)이라는 지리적, 심리적 위치를 배경으로 하여 타자를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 그의 작업을 통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라고.., “왜 당신은 여기 있나요?”라고.., 그리고 “당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고... 아마도 허경란 작가에게 있어서 그의 시각 안으로 들어온 타자라는 존재는 세월호 사건을 경험하면서 그만큼 더 강렬하게 고통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로 인해 국토의 최남단 마라도라는 섬 안의 작은 사건, 작은 존재들마저 섬세하게 작가의 망막 안으로 들어왔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상 속에 보이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 부는 광경으로부터 풀벌레 소리까지도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왜냐하면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작업의 맥락처럼 타자의 작은 외침과 고통은 어쩌면 바로 나의 그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Still from Island, 2015, HD video, sound, 28 minutes 35 seconds

Still from Island, 2015, HD video, sound, 28 minutes 35 seconds

Still from Island, 2015, HD video, sound, 28 minutes 35 seconds
출처 - 사이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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