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지구p
2017년 9월 23일 ~ 2017년 10월 21일
황문성 개인전 : 경계-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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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tescape, escape>
김소라
경계 탐험. 황문성 작가의 작업은 이른바 ‘경계’에 대한 탐험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를 전공했지만 이후 오랜 기간 사진기자로 활동한 작가의 작업에는 회화적 요소와 사진적 요소가 공존한다. 하나의 작품 안에 사진 이미지와 손으로 그린 이미지가 함께 있다. 때로는 하나의 전시장에 회화작품과 사진작품이 병치되어 있으면서 서로 대조되거나 공명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회화와 사진은 현상적으로는 닮은 구석이 많지만 내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이질적인 매체다. 작가는 이 이질적인 두 요소가 함께 어우러지는 지대, 그 경계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에 대해 실험하고 탐구한다.
경계란 서로 다른 것들이 접하고 있는 지대다. 그러나 경계는 지도의 국경선처럼 명확한 실선으로 표시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굳이 선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단지 차이를 인식하는 관념적 기준선일 뿐이다. 게다가 경계를 주변부나 자투리라고 여기는 관점은 중심이라는 허상적인 기준에 빗대어 기존의 틀과 가치를 유지하려는 태도다. 실제로 상대편에 가까워질수록 구별하기 위한 기준이 흐려지는 것은 맞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경계는 구획하는 선이 아니라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공간적 지대인 것이다. 여기서 사건이란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거나 흡수하면서 일어나는 상호교류다. 그렇게 해서 경계는 새로운 것으로의 가능성을 잠재하는 지대가 된다. 결국 황문성 작가가 경계에 서있다는 말은 기존의 틀을 문제화하면서 새로운 차원을 탐구하는 길 위에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사진이 원래의 기능에 머물지 않고 계속 확장되면서, 그 자체로 기술과 예술의 혼종적 특성을 품은 매체가 된지 오래다. 사진가들이 회화성을 적극 도입하기도 하고 미술가들이 사진을 주요한 매체로 활용하기도 한다. 오늘날 비엔날레나 현대미술 전시에서 사진으로 된 작품들을 보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황문성의 작업이 보여주는 독자적인 특징은 회화와 사진을 직접적으로 병치하거나 접목시키는 데에 있다. 이러한 실험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해체적 작업이다. 사진과 회화의 고유한 정체성이 흐려져 그 둘을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회화와 사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이러한 매체적 혼용은 작가의 작업과정에 ‘비결정성’이라는 특성이 내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비결정성은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완성된 작품이 표면적으로 드러내는 시각적 특성이기도 하다. 언뜻 보기에 화면이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주로 자연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풍경 전체를 조망하기보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한 순간에 드러나는 우연적인 장면이다. 결과적으로 화면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을 포착하고 있는지 규정하기 어려워 추상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렇듯 화면을 비결정적으로 만드는 방식은 황문성 작가의 작품 대부분을 관통하는 특성이다. 작가가 주로 눈이나 모래 같은 흩어지기 쉬운 소재와 재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특성을 더욱 강화하는 요소다.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들, 눈 위에 비친 그림자들, 미묘한 모양으로 녹아 퍼지거나 얼어붙은 눈 입자들… 황문선의 작품들은 마치 새하얀 화선지 위에 먹물이 스며들면서 남기는 섬세한 흔적들처럼 자연스럽고 고요하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언제나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그 기다림 끝에 포착되는 순간은 온전히 대상의 객관적인 사실도 아니고 온전히 작가의 주관적 의도도 아니다. 그것은 그 둘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새로운 순간이며 세계다. 원래의 색도 형상도 흩어져 사라진 새하얀 풍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흰색풍경(Whitescape)’은 일종의 ‘탈주’(escape)다. 우선은 자연이 베푸는 우연적인 시혜와 조우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작위적인 의도를 버리는 탈주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명확하고 규정적인 것으로부터 그렇지 않은 것으로, 영원불변한 것으로부터 순간적인 것으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풍경화(Landscape)라는 장르 자체가 이러한 탈주를 통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풍경화는 비교적 사실적인 그림이지만, 역사화나 종교화 같은 전통적인 장르에 비해 서사적 내러티브로부터 자유롭다. 황문선의 작업은 풍경화의 이러한 탈주적 성격을 더욱 심화시킨다. 그런 점에서 ‘흰색’은 탈주의 상징이다. 꼭 흰색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곧 사라질지도 모를 모래의 우연한 흔적들을 포함하여 작가의 모든 작품이 ‘흰색풍경’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황문선 작가의 작품들이 단순히 도피를 통해 완전히 흩어져 사라져버리려는 비관적 세계관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기다리고 포착하기를 반복하는 작가의 끊임없는 시도는 어떤 본질적인 차원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 그러한 점을 내비치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옹골차게 형상화된 돌이나 문득 등장하는 한 마리의 새, 그리고 손의 흔적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일필(一筆)의 붓놀림 등을 통해 암시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유동적인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풍경 속에 홀연히 등장해서 그 우연적인 순간이 어떤 본질이나 진실을 담지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작가가 추구하는 본질은 전통적인 의미의 본질과는 다르다. 초월적으로 불변하는 보편적인 본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본질인가? 그것은 사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언어로 포착하는 순간 그 본질은 또 다시 흩어져버릴지도 모른다. 작가의 ‘흰색풍경(Whitescape)’이 ‘탈주’(escape)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순간들이 발산하는 파편적인 본질이며, 그러한 순간들을 경험하는 개별적 진실 같은 것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일찍이 하이데거가 이러한 진실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삶의 와중에 슬며시 열리며 다가오는 ‘사건으로서의 진실’ 말이다. 결국 황문성 작가가 경계에 서서 행한 탐험은 이처럼 어느 순간 열리면서 드러나는, 그러한 진실을 향한 기다림이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통해서 관람자들이 그 기다림의 시간들을 느끼게 되길 기대한다.
작가노트
사진을 찍는 것은 형태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다.
직관으로 보고 자연에서 찰나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채취하는 일이다.
겨울나무는 눈이 오는 날을 기다렸다. 우연히 만나게 된 몇 그루의 자작나무에 눈이 내리는 장면을 찍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순 회색의 마티에르가 있는 것처럼 촬영되었다. 그때의 눈의 온도와 눈 입자의 크기, 바람의 세기 등 자연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래서 이후 그 장면을 다시 촬영하기 위해 눈이 올 때마다 노력했다.
그러나 그 장면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 장면은 당시 나의 마음의 상태와 자연의 상태가 조우하게 된 기회였음을 뒤 늦게 깨달았다. 이렇듯 나의 사진에서 보이는 느낌, 밀도, 여백 같은 것은 내 머릿속으로 계획하지만 그건 조건을 만족할 때 만나지는 것이 아닌 우연히 보여지는 자연히, 우주적 느낌이 나에게 전해져 오는 것이다.
‘베푼다. 시혜적이다.’ 라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것도 찰나적으로 잠깐, 자연이라는 외부에서의 문제를 작가가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것을 건드린다면 그것은 오염시키는 일이다.
어 느 때, 도구를 가지고 눈에 자국을 내거나 쓸어서 만들어 보려고 했다. 그 작위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 낸 행위는 자연스러움을 깨는 것임을 깨달았다. 작품은 나와 자연의 간극을 좁혀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비워 자연과 조우하는 길. 조형이 완벽한(작가가 생각하는) 순간을 맞닥뜨릴 수가 있을까?
그 순간을 작가는 원하지만 그 만남은 나를 비워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는 일이며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찾지 않으면 만나지지 않으며, 나서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길이다. 그 길에서 만나 순간 급랭시켜 보관하였다가 보관된 이미지를 숙성시켜 다시 보는 일이다.
여하튼 나의 그림과 자연이 그려낸 이미지가 결합할 때 어떻게 보여질 것인가가 나의 관심이었다.
나는 나의 이미지가 나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머릿 속으로는 그리지만 화면에 보여지는 형태는 퇴락된 시멘트 벽에 비가 내려 보이는 얼룩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보이는 형태이길 바란다. 자연에서 채취한 우연한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통해 무작위로 그려낸 이미지가 결합될 때 그 경계에서 어떤 조형언어가 새로이 만들어지고 상상되는가? 가나의 관심이다. 이러한 생각의 바탕 위에서 그려진 회화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석회를 화면에 바르고 먹을 떨어트린 후 순간적으로 흩트릴 때 보이는 무작위한 느낌과 질서있는 돌의 형태가 만날 때, 모래를 발라 흔적을 남기고 돌의 형태가 드러날 때 화면에서 어떤 상상이 생길까? 가 관심이다.
거기서 혹 침묵의 소리, 고요함이 배여져 나오지 않을까? 가 내 조형의 도정이다.
출처 : 예술지구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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