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 xx
2017년 9월 16일 ~ 2017년 10월 2일
청동기 이후 가부장제의 발전에 따라 이원화된 남녀의 역할은 신화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왔고, 헤라클레스 같은 남성 영웅이 용이나 뱀으로 형상화된 여성적 괴물들을 살해하고 권력을 쟁취하는 패턴의 이야기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뱀이나 새 그리고 이들이 결합된 용은 본래 하늘과 땅의 물을 상징하며 구석기나 신석기와 같은 초기 농경사회에서는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무한한 생명력과 초월적 능력을 의미했었다. 이것이 가부장제가 발달한 후대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열등함을 상징하는 부정적 기제로 왜곡되어, 인간의 신체와 부분적으로 결합한 세이렌, 히드라, 메두사 같은 괴물들로 변형되었던 것이다.
전시 <선영, 미영, 미영>은 작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비롯해 여전한 미소지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여성들을 고대 신화 속 괴물들과 연결하는 드로잉 프로젝트이다. 통계에 의하면 75년생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여성 이름은 미영, 은영, 현정 등이었다. 이러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찾아 프로젝트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고 여성으로서 겪어온 저마다의 이야기를 신화 속 괴물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가부장제의 오랜 역사 속에서 덧씌워진 여성혐오의 이미지를 다시 비틀어보고자 한다.
작가노트
이번 전시 <선영, 미영, 미영>은 선영, 미영과 같이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고대 신화 속 괴물로 표현한 드로잉들과 그녀들의 꿈(수면) 이야기를 수집한 영상을 선보인다.
그림 속 등장하는 괴물들은 뱀, 새 등이 여성과 결합한 형상인데, <사라진 여신들의 역사, 위대한 어머니 여신 /장영란 /살림>이라는 책을 보면 본래 이 동물들은 고대 창세 여신의 무한한 능력을 상징하는 귀한 존재들이었다고 한다. 물과 출산이 중요했던 고대 농경사회에서 뱀과 새는 각기 땅과 하늘의 물을 상징했다. 하지만 수렵과 유목생활로 변화하고, 철을 다루게 되면서 여신의 입지는 줄어갔고, 남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뱀과 새는 히드라, 세이렌 같은 악마적 이미지로 변형되어 동서양 곳곳에서 헤라클레스 같은 남성 영웅들에 의해 처단, 살해당하는 패턴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재생산 되어왔다.
선영이나 미영 같은 이름은 나의 세대에게 익숙하다. 나는 이들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으며 그들은 내 언니나 동생 혹은 친구들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그러한 이름을 가진 여성들을 SNS에서 모집하였고, 꼭 그런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 프로젝트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을 포함시켰다. 일단 확정이 되면 그리기 적당한 이미지를 찾기 위해, 그녀들의 페이스북 사진첩을 뒤지는데 이 과정에서 좋아하는 음식, 자주 가는 장소, 함께 있는 사람 등 그들의 삶을 엿보게 된다. 또 이들 중 다섯 명은 작업실이나 단골 카페 등 그녀들에게 편안한 장소에서 직접 만나 꿈 이야기를 들었다. 기억나는 꿈 중에 여성으로서의 기억이 담긴 꿈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나의 요청에 그녀들은 어머니, 초경, 동성 친구들, 따돌림, 쫓아오는 남자들, 범선을 파괴하는 이무기가 등장하는 생생한 무의식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이야기들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이 서로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지난 몇 달 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다른 여성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그의 삶의 반경에 방문하고, 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으로 그려내는 일련의 과정은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과정이었고, 어릴 적 친구를 사귀었던 과정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평범한 이름을 가진 여자들이 들려주었던 꿈속은 고통스럽고, 무서웠지만 꿈속에서 그녀들의 내적 자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괴물 이무기의 수하들로 좀비같이 달려드는 병사들을 향해 돌을 던질 때, 선영은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요 정도면 내가 해볼 만하겠다. 우리가 물리칠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이었다고 했다.
완성한 그림을 메신저로 보내주면 그녀들은 즐거워하였고, 개중에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지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나 하체가 뱀인 괴물로 그려진 자신들의 모습에서 그녀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꼈다고 했다. 나 역시 작업 과정 속에서 쾌를 느꼈다. 어릴 적 잽싸게 “반사!”라고 외치면 상대가 나를 때리지 못하거나, 나를 때린 만큼의 배수로 되맞는 게임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놀던 식으로 오래된 혐오를 비틀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선영의 말대로 어쩌면 물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무서워서 벌벌 떠는 게 아니라 해볼 만하다는 호기로 즐겁게 그렸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만난 그녀들의 용기와 우정을 세상에 힘껏 반사하려 한다. / 흑표범
흑표범
흑표범은 서울에서 거주하며 퍼포먼스 및 드로잉 등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4년부터 공간 해방을 운영했지만, 현재는 장소가 사라진 상태이다.
오프닝
2017년 9월 16일(토) 6pm
꿈투사 워크숍 프로그램 (8명 선착순, 사전신청 필수)
꿈투사 워크숍 프로그램'이란?
동시대 여성들의 꿈속을 함께 투사해보는 꿈 워크숍으로, 동시대 여성들의 무의식을 함께 이야기해보는 자리. 사전 신청자를 모집해 참여자의 꿈(수면)이야기를 추상 드로잉으로 투사해본다.
사전 신청하기 http://cafe.naver.com/mullaeartspace
출처 : 문래예술공장
* 아트바바에 등록된 모든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운영시간
월요일 휴관
화요일 11:00 - 18:00
수요일 11:00 - 18:00
목요일 11:00 - 18:00
금요일 11:00 - 18:00
토요일 11:00 - 18:00
일요일 11:00 - 18:00
휴관: 월요일
모든 프로그램은 주최측의 사정으로 변경될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확인하시기바랍니다